안경에는 좌·우가 없다, 정치인이 사랑한 아이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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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도 고쳐 쓰고, 이미지도 고쳐 쓰고>
우리는 정책과 공약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만큼이나 유권자로부터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정계의 유명 인사들은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정책적 우위를 확보하거나, 기발한 캐치프레이즈와 유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신문과 텔레비전이 주요 매체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SNS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명 인사를 즉각적으로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직관적인 정보들이 빠르게 소비되고 전파되면서, 이미지 구축에 있어서 패션과 같은 요소가 탁월한 매개체로서 작용하고 있다. '블레임 룩' 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인물의 스타일조차 화제가 되는 '블레임 룩'은 이는 설령 그 인물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한들, 특정 인물의 성향이나 업적과 무관하게 패션 시그니처가 그 인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강력한 근거이다.
<넥타이 색만으로는>
단순히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웠던 걸까. 정계 인사들의 패션 역시 수많은 유권자의 인식 속에서 강력한 비언어적 요소로 자리 잡아 왔다. 그중에서도 정치권 인사들은 유독 명품 안경을 애용해 왔다. 안경을 착용한 정치인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커다란 프레임의 안경을 통해 최고 권력자로서의 무게감을 강조했다.
반면, 백범 '김구' 역시 둥근 안경을 통해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를 형성했고, 간디는 늘 착용하던 동그란 안경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더했다. 이처럼 안경은 단순한 시각 보조 도구를 넘어,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아이코닉 아이템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정계 인사들은 어떤 안경을 즐겨 착용했을까. 지금부터 그들과 함께했던 아이웨어를 알아보고자 한다.




한동훈 | 전 국민의힘 대표 | 올리버 골드스미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뒤부터, 줄곧 ‘한동훈 패션’이 검색 키워드에 오른 만큼, 그가 선택한 안경 역시 대중들로부터 큰 이목을 끌었다. 그의 출근길 패션에서 연일 관심을 모았던 안경은, 바로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유럽에서 선글라스 붐을 일으켜 선글라스의 시초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1926년 설립 후 지금까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브랜드인 만큼, 품질과 세공 역시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 전 대표가 착용한 모델은 ‘바이스 컨설(VICE CONSUL)’ 뿔테 안경인데, 가로로 긴 스퀘어 형태에 8mm 시트를 사용한 볼드한 쉐입의 뿔테로, 남성적인 무드가 잔뜩 담겨있는 안경이다.
때문에, 한동훈 전 대표가 유려한 핏의 수트와 함께 이 안경을 착용할 때면,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수많은 정계 인사들 사이에서 남다른 패션 센스로 입지를 다졌던 한동훈 전 대표. 많은 사람들이 한동훈 전 대표를 검은색 뿔테안경과 함께 떠올리는 것만 봐도, 그의 스타일에서 안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듯하다.



문재인 | 전 대통령 | 린드버그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신촌역 앞 안경점에서 직접 구매했다는 그의 안경은 재임 시절, ‘문템(문재인 대통령의 아이템)으로 범국민적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문 전 대통령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다. 그가 선택한 안경은 덴마크 브랜드 ‘린드버그(LINDBERG)’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 중 하나인, ‘모르텐(MORTEN)’ 모델이다. 모르텐 특유의 정제되고 미니멀한 디자인은 신뢰감을 더해주며, 이는 문 전 대통령의 부드러운 이미지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본인의 이미지와 린드버그가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문 전 대통령은 린드버그를 지독하게 아꼈다. 취임 후 수많은 기자간담회와 공식 석상에서 린드버그는 문 전 대통령과 함께였으며, 잠시 다른 안경으로 바꾼 적도 있었지만 그 기간은 두 달 남짓에 불과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사실, 린드버그를 사랑했던 정계 인사가 문 전 대통령만은 아니다. '안희정', '정진석', '홍준표', '권성동', '박영수', '송영길' 등 다양한 정계 인사들이 린드버그 안경을 애용했다.
재계 인사들도 빠질 수 없다. '정의선(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함영준(오뚜기 대표이사 회장)', '김택진(엔씨소프드 대표이사)' 등 여러 기업인이 린드버그를 선택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역시 임기 동안 줄곧 린드버그 안경을 착용했으니, 정재계 인사들에게 린드버그 열풍을 가히 실감할 수 있을 터.



기시다 후미오 | 전 일본 총리 | 린드버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역시 오랜 기간 ‘린드버그(LINDBERG)’ 안경을 애용해 온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가 선택한 모델 역시 브랜드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품. 그가 착용하는 린드버그 ‘스피릿(Spirit)’은 깔끔함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완벽한 미니멀리즘 감각을 선사하는 아이웨어다. 해당 모델은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전문적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인데, 이는 린드버그가 추구하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단 1.9g의 깃털 같은 초경량 무게로, 섬세함과 편안함을 완벽하게 조합한 무테 디자인을 실현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러한 린드버그의 스피릿을 꾸준히 착용하는 이유도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면서도 정제된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은, 그의 온화하고 균형 잡힌 정치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기시다 전 총리에게 린드버그는 단순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아니라, 착용하는 이의 철학과 이미지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어 주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 전 대통령 | 실루엣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착용한 안경 브랜드는 오스트리아 하우스 브랜드 ‘실루엣(Silhouette)’이다. 1964년 설립된 실루엣은 혁신적인 안경 제조를 목표로 하며, 제한 없는 형태와 컬러를 통해 개성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특히 접합 부위에 나사를 사용하지 않는 프레임리스 디자인이 특징. 실루엣은 삼성家(가)의 안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회장 역시 안경을 착용할 때는 항상 실루엣 제품을 선택해 왔다.
또한 정계 인사 중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실루엣을 착용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재임 초반에는 안경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지만, 임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안경과 함께하는 모습이 더욱 잦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차 그의 사진에서 자주 보이게 되는 안경의 품번은 ‘2825 60 6100’으로, 가벼운 착용감과 깔끔한 무테 디자인이 특징인 안경이다. 그는 해당 안경을 통해 강인한 정치적 인상에서 보다 세련되고 정제된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적합한 선택지가 될 수 있었던 안경이기도 했다.


박정희 | 전 대통령 | 란돌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선글라스를 가장 즐겨 착용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군인 출신답게, 공군 조종사 스타일의 ‘란돌프(Randolph)’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했는데, ‘란돌프(Randolph Engineering)’는 미군 육·해·공군에 공식 지급되는 선글라스를 제작하는 미국 브랜드이다. 파일럿 전용 선글라스로도 유명하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표현하기 좋은 디자인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자주 착용했다. '로버트 드 니로'와 '톰 크루즈', '조니 뎁' 등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착용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란돌프의 에비에이트 선글라스는 바이든 전 대통령이 방한 당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탁상 푯말도 함께 란돌프와 협업해 특별 제작된 모델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브랜드로도 익히 알려져 있는 브랜드이다. 미국에서는 란돌프를 외교적인 카드로도 사용할 만큼, 미국 내에서는 아이코닉한 존재이기도.


조지 W. 부시 | 전 미국 대통령 | 레이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인 정치인 가문에서 배출한 대통령의 이미지처럼 교과서와 같은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곤 했다. 그는 클래식한 미국 스타일을 상징하는 아이웨어 브랜드 ‘레이밴’ 그중에도 웨이페어러(Ray-Ban Wayfarer) 모델을 주로 착용하며 행동가적인 이미지와 결단력 있는 리더의 모습을 강조했다.
웨이페어러 모델은 1952년에 최초로 출시된 아이코닉한 선글라스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선글라스 디자인 중 하나이다. 출시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밥 딜런',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등 당대 아이콘과 같은 스타들이 착용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개성적인 디자인보다 클래식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디자인 덕분에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문화와 세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조 바이든 | 46대 미국 대통령 | 레이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군 복무 시절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스타일을 대표해 온 요소다. 2014년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도 셀카 대신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클로즈업한 사진을 올릴 정도였으니. 그가 선택한 브랜드는 다름 아닌 ‘레이밴(Ray-Ban)’. 그중에서도 ‘3025’ 모델이었다.
레이밴은 빛(Ray)을 차단한다(Ban)는 의미에서 유래했는데, 브랜드의 시작은 당시 공군이었던 존 머크리디 중장은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렌즈 개발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렌즈 제조업체 바슈롬은 6년간의 연구 끝에 레이밴을 탄생시킨 것.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까지, 전쟁 영웅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특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44년 필리핀 전투에서 레이밴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유명해지면서, ‘전쟁 영웅의 선글라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쟁 후에도, 1962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레이밴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불러일으켰고, 1986년 개봉한 <탑건(Top Gun)>에서 톰 크루즈가 맥아더 장군과 동일한 레이밴 에비에이터를 착용하며 이 모델은 ‘전투기 조종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레이밴은 단순히 아이웨어 브랜드를 넘어, 미국의 역사이자 상징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역시 레이밴을 대하는 태도는 대중들과 다르지 않았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고전적인 스타일의 레이밴을 애용하며 대통령의 품격과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레이밴 3217을 애용하며 쿨하고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클래식한 미국 스타일의 레이밴 웨이페어러를 주로 착용하며 리더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리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역시 임기 초반부터 후반까지, 그 명맥을 이어 레이밴 ‘3025’ 모델을 통해 미국을 그 자체를 상징하며, 리더의 위엄을 드러냈다.



카멀라 해리스 | 전 미국 부통령 | 마이키타
카멀라 해리스 전 미국 부통령은 독일 하이엔드 아이웨어 브랜드 ‘마이키타(MYKITA)’의 ‘라흐티(Lahti)’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하며, 현대적이고 세련되고 진취적인 여성의 정치적 이미지를 부각해 왔다. 마이키타는 ‘아이씨베를린(ic! berlin)’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모리츠 크루거가 독립하여 설립한 브랜드로, 수작업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혁신적인 제조 방식을 통해 차별화된 아이웨어를 선보이고 있다.
이 브랜드는 소재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얇은 메탈을 레이저 커팅하여 초경량성과 견고한 내구성을 동시에 구현했으며, 특히 나사가 풀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인 나선형 힌지 기술을 적용했다는 것이 특징. 마이키타의 디자인 철학은 기술적 솔루션이 반드시 미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해리스처럼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정치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Editor / 김성욱(@wookk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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