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수록 콘돔은 잘 팔린다” 경기 침체에 유행하는 속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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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이 많이 팔린다거나 불황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등의 경제와 관련된 속설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불황으로 소비 위축이 지속되면서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속설들은 당신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갈 터.
그렇다면 이런 속설들은 얼마나 진실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아무도 모른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꼭 맞는다고도 틀렸다고도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서로 상충되는 결론이 각각 노벨상을 받는 유일한 학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제학은 이상한 학문’이라거나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구나.’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은 애초에 모순된 학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경제 현실이 하나의 분명한 확답을 내놓기엔 워낙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경제 속설들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실은 바로 그것이 진실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가 보통 사람들 때문은 아닌데, 아무리 경제 관련 속설을 접한다고 해도 경제 전체가 호전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소식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 침체가 점점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이런저런 경제 속설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며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슬라이드를 넘기며, 그런 속설들 속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자.

| 지표가 꺾이면 치마는 길어진다 헴라인 지수
192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는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와 경기 변동 간의 상관관계를 주장하며 ‘헴라인 지수’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경기가 호황일 때 여성들은 고급 실크 스타킹을 드러내기 위해 짧은 스커트를 입고, 불황기에는 비싼 스타킹을 구매하기 어려워 긴 스커트가 유행하게 된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테일러는 스커트 길이를 하나의 경제 지표로 삼았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이 본격화되자, 여성들의 치마 길이는 거의 바닥을 쓸 정도로 길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70년, 세계적으로 석유파동이라는 경제 위기를 겪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과감한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불황기로 평가받는 1997년, 2001년, 2003년에도 미니스커트는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불황기에 우울한 정서를 벗어나기 위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보다 파격적인 패션이 선호되며, 업계 또한 새로운 유행을 통해 소비 심리를 자극하려는 전략을 취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커트 길이와 경기의 상관관계를 일정한 방향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헴라인 지수는 흥미로운 가설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경기 흐름을 일관되게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울듯 하다.



| 지갑은 얇아지고, 굽은 높아지고 하이힐 지수
하이힐의 굽 높이 또한 경기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로 거론되곤 한다. 이른바 ‘하이힐 효과’는 경제 위기 시 여성들의 하이힐 굽이 높아지고, 경제가 회복되면 굽 높이가 낮아진다는 속설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여성 하이힐의 평균 굽 높이는 17.78cm에 달했으나, 이듬해인 2010년에는 12.7cm로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경기 침체 시 여성들이 보다 돋보이기 위한 외적 치장에 집중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타인보다 앞서 기회를 잡기 위해 자기 과시적인 표현을 택하는 심리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 역시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2010년대 이후부터 여성들이 점차 편안하고 실용적인 복장을 선호하며, 경기와 무관하게 하이힐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이힐 효과’는 과거 특정 시대의 소비 심리를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의미는 가질 수 있을지언정, 오늘날에는 그 설명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셈이다.


| 립스틱이라도 사야지 립스틱 효과
경기 침체기에 립스틱과 같은 소소한 화장품의 매출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일컬어 ‘립스틱 효과’라 부른다. 소득이 감소한 여성들이 고가의 의류나 액세서리 대신, 저가이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화려한 립스틱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 현상의 배경이 설명된 되는데, 이는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가 9·11 테러 직후 미국의 경기 침체 상황에서 소비 전반이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립스틱 판매가 급증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대중화된 개념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자연스러운 색조보다 붉은색, 와인색 등 보다 강렬한 색상의 립스틱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불황일수록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통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립스틱이 불황기에만 유독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립스틱의 판매는 경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특히 당시에는 화려한 색상이 유행함에 따라 판매가 더욱 활발해진 측면도 있다. 뿐만 아니라 립스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화장품이 전반적으로 매출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화장품 업계에서는 ‘립스틱 효과’보다 ‘파운데이션 효과’라는 표현이 보다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경기 침체기에도 소비자들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는 특정 품목을 넘어 화장품 전반에 나타나는 소비 행태로 확장되고 있다. 때문에 립스틱에 국한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 빌딩이 완공될 때, 주가는 폭삭 주저앉는다 발기 지수
불경기일수록,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에 거품이 많을수록 마천루가 '발기한다'는 속설이 있다. 여기서 ‘발기’란 음란한 의미가 아닌, 고층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를 일컬어 ‘발기 지수’라고 부르며, 경제 거품이 클수록 초고층 빌딩을 세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또한 커진다는 해석이다. 물론 본래는 농담 삼아 만들어진 표현이지만, 이 흥미로운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역사적으로 초고층 빌딩의 완공은 종종 경제 위기와 묘한 시점적 일치를 보여준다. 1970년대 완공된 세계무역센터와 시어스 타워는 곧바로 오일 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뉴욕시는 1975년 파산 위기에 몰렸다. 또한, 일본에서는 도쿄도청(1991년 완공)과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1993년 완공)가 잇달아 들어선 뒤, 버블 붕괴와 함께 장기 불황이 시작되었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전에 완공되었고,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한가운데서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2010년 완공 직후 두바이가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도 이어진다. 2016년 완공된 상하이 타워는 저조한 임대율과 과도한 부채, 부실시공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국의 롯데월드타워 역시 2015년 건설 중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이후 미래 사업 부진과 2024년 유동성 위기로 인해 담보 자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저주’를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주목할 점은, 초고층 빌딩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많은 국가와 기업이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미국이, 이후에는 동아시아의 신흥 공업국과 중동의 산유국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이 마천루를 세운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도 이만큼 성장했다"는 외침, 즉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러한 건축은 반드시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과도한 자존심의 산물이기도 했다.
초고층 건물의 건설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기에, 대개 통화 정책이 느슨해지고 시중에 유동성이 넘칠 때 시작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공사가 완료될 즈음이면 경제는 이미 과열의 정점에 도달해 있고, 그로 인해 형성된 거품은 결국 꺼질 수밖에 없다.


| 불황일수록 콘돔은 잘 팔린다
불황일수록 콘돔이 많이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외출을 줄이고 연인이나 배우자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속설은 과연 사실일까? 어느 신문 기사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조사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불경기가 본격화된 2008년 하반기 당시에 콘돔 판매량이 상반기보다 19퍼센트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수치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당 조사는 전국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운 일부 약국과 편의점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며, 조사 기간 역시 연말연시가 포함된 짧은 구간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조사 방식이나 결과 모두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당시 경제 상황은 콘돔 판매량이 급증할 만큼 심각하게 악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즘 경제가 어렵다더라”는 식의 막연한 인식만 있을 뿐, 구체적인 경기 지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은, 불황일수록 콘돔 판매가 증가한다는 속설에 대해 대부분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답한다고.



| 묻고 더블로 가
"난세에는 영웅을, 불황에는 로또를 기다린다"는 말처럼, 경제 불황이 닥치면 복권이나 도박과 같은 사행 산업이 활기를 띤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복권, 추첨, 경품뿐 아니라 카지노, 경륜, 경정, 경마 등도 모두 사행성 산업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업종은 일반적으로 불황기에 더 잘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실제로 강원랜드와 같은 카지노 업체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꾸준한 실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반되는 주장도 존재한다. 경기 지표와 한국마사회의 영업 실적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불황기에 경마 수입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모순되는 연구 결과는, 사행 산업이 불황에 강하다는 통설에 일관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 보인다.
Editor / 김성욱(@wookk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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