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종은 별종을 낳는다”. 팀 버튼의 막내딸 <웬즈데이>

8월,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가 시즌 2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미국 만화 <아담스 패밀리>를 원안으로 하며, 만화 속 딸 ‘웬즈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런 대화가 되는 게 맞아?”라는 생각이 드는 블랙 코미디와 어둡고 기괴해 보이지만 내면에 숨은 순수함. 만국 공통의 감정인 사춘기 청소년의 고민과 성장.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독특하고 조금은 이상한 스토리들과 세계관까지. 이것들이 모두 뒤엉킨 작품은 정말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2022년, 시즌 1이 첫 공개 당시 전 세계의 반응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공감조차 안 될 것 같은 감정선과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까지 시리즈의 구성과 전체적 분위기가 완벽하게 들어 맞았으며, 어둡지만, 독특하고 주체적인 캐릭터와 힙한 분위기, 그리고 10대들의 관심사의 공감대 일치까지 젠지 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역시 작품의 제작과 연출을 맡은 ‘팀 버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혼자여서 특별했던 소년>

작은 것들이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우화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다뤄온 팀 버튼. 그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팀 버튼은 1985년,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아이였다. 아니 남들보다 특별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내성적이며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그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가 가장 좋아하던 일은 동네에 있는 공동 묘지에서 그림을 그리며 혼자 노는 것이었다. 버뱅크의 강한 햇빛과 그 좋은 날씨에도 어두컴컴한 곳에서 놀았다는 것 자체가 참 유별나게 느껴지지만, 그곳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던 팀 버튼은 그때부터 ‘특별한’ 아이였다.

그렇게 그의 유년시절의 경험은 죽음과 같이 잊혀지고 어두워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팀 버튼만의 긍정적이고 특별한 생각을 갖게 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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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디즈니가 만든 ‘캘리포니아 예술 학교 (칼아트)’에 입학했고, 디즈니에도 입사했지만 그의 괴기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는 디즈니가 가진 정체성과 너무나 맞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디즈니에서 나와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1985년,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당시 인기 있는 아동쇼 진행자였던 폴 루벤스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피위의 대모험>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팀 버튼만의 B급 블랙 코미디와 컬트적 소재들을 버무려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곧바로 유령부부와 인간 퇴치사 비틀쥬스의 이야기인 <비틀쥬스>를 감독해 전 세계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알린다. 그 후, <배트맨>, <가위손>, <에드 우드>, <화성침공>, <찰리와 초콜릿 공장>, <빅 피쉬> 등의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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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만의 세계>

그가 <빅 피쉬>나 <에드 우드>처럼 감동적이고 눈물나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한 작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잘 만든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구석과 바깥에 서 있는 자들과 그들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달 방식을 위해 그는 고전 공포와 표현주의의 왜곡된 미감을 선택했다. 또한 스톱모션 기법을 통해, 그의 첫 번째 스톱모션 단편 작품인 <빈센트>에서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 신부>까지 독특한 질감과 정체성을 선보였다. 분명 춤추고 움직이는 생명체와 사물이지만, 어딘가 생명이 빠져나간 듯한 창백함. 그리고 또 죽은 듯 잠잠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숨쉬는 강렬한 열정과 꿈까지 그의 미학은 특별하다.

또한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다. <가위손>에 등장한 ‘에드워드 시저핸즈’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에 등장한 ‘잭 스켈링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 모두 주인공들이지만 멀리서 그들을 관찰하는 우리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은 다소 답답하고 어린 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나사 빠지고 바보 같아 보이는 정체성을 팀 버튼이 매듭짓는 방식은 항상 꿈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꿈과 현실을 끝없이 넘나들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다소 차갑기도 한 그의 세계는 그러나 결국 우리에게 희망을 주려 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프랑켄위니>가 그러하듯 그의 이야기에서 결말은 가족, 사랑, 그리고 다시 꾸는 꿈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영화의 전개는 다소 아프고 우울할지라도 결국 끝내 우리는 웃으며 새로운 꿈을 꿀 것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그의 작품에 담겨있다. 외롭고 어두웠던 나날들을 보내왔지만 결국 다시 꿈꾸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행복을 주는 팀 버튼의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우리를 대표하는, 아담스 패밀리>

이처럼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이자, 괴짜 감독인 팀 버튼은 왜 <웬즈데이>를 만들게 되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웬즈데이의 원안인<아담스 패밀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담스 패밀리>는 1938년 미국 신문 <뉴요커>의 한 컷 만화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엄청난 인기를 끌어 TV 시리즈,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점점 확장해나가며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아담스 패밀리에는 ‘프랑켄슈타인 혹은 뱀파이어 가족 버전’처럼도 어둡고 기괴해 보이는 가족이 등장한다. 사실 이 가족은 조금은 죽음과 살육이라는 특별한 취향을 가졌을 뿐 사실 그들이 인간을 살육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끼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너무나 따뜻한 존재들이었으며, 오히려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아담스 패밀리의 정체성은 ‘아담스 패밀리’라는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게 역할을 한다. 아담스 패밀리는 당시 미국에 팽배했던 이민자나 유색인종, 발달장애인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즉, 한 가족으로 대표되는 소수자의 은유와 미국 중산층의 위선, 그리고 그들에게 이뤄지는 사회의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행태들이 이들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시대는 점점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해갔다. 그러나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순과 위선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담스 패밀리라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수요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소수자의 정체성과 같은 이 작품의 가치를 가장 잘 공유하고, 대중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독특한 사람’ 아니, ‘특별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가 바로 팀 버튼이다.


<웬즈데이와 팀 버튼>

팀 버튼에게 <아담스 패밀리>는 ‘아웃사이더’라는 자화상을 겹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담스 패밀리는 팀 버튼의 수많은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가족이 나오며, 또 특유의 다크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 적응하고 살아갈 것이라는 꿈, 더 나아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까지. 이 모든 것들이 팀 버튼의 세계와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팀 버튼 역시 아담스 패밀리에 관심이 많았고, 해당 작품의 실사 영화나 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릴 때마다 연출을 맡을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것들이 성사되지 못했고, 2022년이 되어서야 그 만남이 이루어졌다.

팀 버튼의 <웬즈데이>가 가진 가장 큰 차별점은, 늘 ‘한 가족’ 전체를 무대로 삼던 아담스 패밀리 세계에서 과감히 프레임을 좁혀 장녀 ‘웬즈데이 아담스’ 한 사람에게 초점을 고정했다는 데 있다. 가족 단합의 가치보다 한 개인의 내면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사춘기 소녀가 겪는 혼란과 변화를 더 세밀하게 기록하려는 선택이다. 그 중심에는 감독의 자전적 공명이 있다. 팀 버튼은 인터뷰에서 “웬즈데이는 내 어린 시절과 닮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동일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그는 익숙하고 너무나 공통적 가치로 이미 널리 퍼진 ‘가족의 초상’을 잠시 뒤로 미루고, 자신과 닮은 한 인물의 초상화를 정밀하게 다시 그려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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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팀 버튼의 캐릭터론을 다시 불러오면, ‘웬즈데이’는 그의 필모그래피 속 세계와 캐릭터들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에드워드처럼 겉과 속의 간극을 숨기지 않고, 잭 스켈링턴(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처럼 실패를 통과해 정체성을 갱신하며, 빅터(프랑켄위니)처럼 애착의 윤리를 끝까지 붙들고, 때로는 비틀쥬스의 숨은 광기와 냉소를 장착한다. 결국 <웬즈데이>는 한 소녀의 성장담이자, 팀 버튼 세계의 여러 갈래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교차로이며 결국 운명적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던 도착지이다.

웬즈데이 (제나 오르테가 扮) 이름은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울적하다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라는 영미권 자장가에서 따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세상 모든 일에 울적함을 넘어서 굉장히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다. 그래서 시즌 1이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그런 웬즈데이가 뱀파이어, 늑대인간, 세이렌 등 소외된 별종들이 모인 기숙학교 ‘네버모어 아카데미’로 전학 가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 웬즈데이의 이야기이다.

작품에서 즐길 지점은 다양하다. 고딕 양식의 건물, 기괴하고 어두운 디자인, 손만 잘려 돌아다니는 ‘씽’이나 다양한 크리처들도 등장한다. 또한 그의 오래된 페르소나 ‘대니 엘프먼’의 음악도 느낄 수 있으며, 웬즈데이의 어둡지만 화려한 의상, 제나 오르테가의 무표정한 연기 속 감정과 숨은 에너지, 그리고 엄청난 춤 실력까지 볼 수 있다. 특히 8월, 공개된 시즌 2는 시즌 1이 남긴 가족의 변화와 네버모어의 권력 교체를 본격 수습하며, 시즌 1에서 해결되지 못한 위험을 해결할 것이다. 명품 배우 스티브 부세미가 새 교장 ‘배리 도트’로 합류했고, 레이디 가가 역시 카메오로 출연할 예정이다. 또한 로맨스는 줄고, 호러적 요소가 증가하여 전보다는 조금 더 깊고 어두운 진짜 팀 버튼 스타일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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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수요일>

“가장 흥미로운 식물은 그늘에서 자라지.” 시즌 1의 이 대사와 함께 글을 마친다. 이는 기숙사 '오필리아 홀'의 사감이자 웬즈데이를 아끼던 교사 ‘마릴린 손힐’의 대사인데, 해당 배역을 맡은 ‘크리스티나 리치’는 아담스 패밀리 실사 영화에서 ‘웬즈데이’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이 대사를 다시 듣는다면 마치 웬즈데이가 웬즈데이  자신에게, 그리고 ‘비정상, 별종’이라고 불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것처럼 들린다.

대개 진짜 괴물은 ‘정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다. 하지만, 괴물처럼 보이지만, 우리 앞에 나타나 작은 인사를 건네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 외롭고 순수하며 용기내고 싶은 또 다른 우리들일 것이다. 그래서 팀 버튼과 웬즈데이는 자신들의 가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점점 꿈꾸고 나아간다. 그래서 우리 역시 꿈꾸고, 또 꿈꾸며 또 한 번 ‘수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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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배서진(@seoj_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