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들 뒤에서 펼쳐진 사운드의 여정: E.HEH ‘Behind Closed Doors’

닫힌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작은 떨림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취향과 감정, 오래 눌러 담아둔 흔적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의 소리로 모일 때, 그 진심은 조용하지만 선명한 힘을 갖는다. E.HEH의 음악은 그렇게 태어났다. 네 사람이 각자의 세계에서 가져온 결들이 겹치며 만들어낸 밀도,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각.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어떤 분위기. 이번 앨범은 그 흐름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기록이다.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지점에서 겹쳐질 때

E.HEH(이해)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신인의 얼굴을 한 베테랑’이라는 점이다. 네 명의 멤버는 각자 다른 무대에서 긴 시간을 보낸 음악가들이다. 인디 팝, 재즈·퓨전, R&B·힙합 프로듀싱, 그리고 세션으로 쌓아온 감각까지. 이질적인 네 개의 음악적 언어가 한 팀으로 모였고, 그 조합은 예상보다 훨씬 단단한 밀도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데뷔 1년 차라는 타이틀로 설명될 수 없는 태도와 깊이를 이미 갖고 있다.

E.HEH(이해) [behind closed doors] / ⓒyoutube

정규 앨범 Behind Closed Doors는 말 그대로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난 긴 호흡의 기록이다. 각자의 고집, 불호, 지켜야 할 선들까지 모두 드러낸 채 서로의 세계를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쳤다. 슈게이징·드림팝·베드룸팝 등 다양한 결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기보다는, 겹쳐지는 지점에서 새로운 잔향을 만들며 앨범의 톤을 결정한다. 이 음악은 타협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뿌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동기화된 결과에 가깝다. 이건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음악가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의 제작이다.

E.HEH는 대중적 정답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것들, 타협할 수 없는 취향, 스스로를 구성하는 뿌리 같은 감각들을 음악의 중심에 둔다. 그 태도는 이들이 사운드를 구축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슈게이징의 탁한 음색과 드림팝의 몽환적인 잔향, 베드룸팝의 사적인 온도가 겹쳐지며 만들어지는 층위들. 그 구조는 계산보다는 직감에 가깝고, 공식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형태를 따른다. 결국 그들이 만든 세계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보다, 네 개의 서로 다른 결이 겹쳐지며 빚어낸 자연스러운 조화로서 존재한다.

‘신인’이라는 설명으로만 묶어둘 수 없는 음악적 밀도를 갖춰 음악 씬 안에서도 드물게 등장하는 "이미 완성도가 있는 신인", "중고 신입"이다. 이들의 사운드는 무겁지 않은데 깊고, 과장되지 않았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갖는다. 쉽게 귀를 사로잡으려는 태도 대신, 오래 남는 잔향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한 팀이다.

Behind Closed Doors는 네 사람이 오랜 시간 각자의 방에서 키워온 세계들이 처음으로 공유되는 순간을 담아낸 앨범이다. 닫힌 문 뒤에서 갈고 닦아온 생각과 취향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순간, 이들이 어떤 장면을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문이 열린 만큼, 이들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될지는 결국 듣는 우리의 귀와 경험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확장은, 아마도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앞으로의 씬에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