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스며든 소리들” 시대별 앰비언트 명반 5선

특별한 기승전결이나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가 없는 음악장르가 있다. 그저 배경소음처럼, 희미한 소리가 지속되는 음악, 바로 앰비언트다. 아방가르드한 록으로 인기를 끌었던 영국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의 초창기 멤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어느날 병상에 누워있다가 우연히 희미하게 틀어져 있던 LP를 듣고 앰비언트를 착안했다. 그 작은 소리는 기존의 음악처럼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놓인 가구처럼, 또는 창틀에 부딪히는 빗소리처럼 일상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었다. 이노는 이후 ‘Discreet Music(눈에 띄지 않는 음악)’, ’Ambient 1: Music For Airports(앰비언트 1: 공항을 위한 음악)’ 이라는 앨범을 냈다. 제목이 말해주듯 특별한 존재감 없이, 공간의 일부로서 존재하기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고, 이것은 후대에 앰비언트의 시초라 불리게 됐다.

이노가 뿌리를 내린 앰비언트는 현대의 많은 장르와 융화되며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IDM이나 슈게이징, 드림팝 처럼 몽환적인 색채나 꽉 찬 사운드를 강조하는 장르들은 물론, 영화음악이나 명상음악처럼 시각적, 공간적 분위기 형성을 위한 음악에도 단골로 사용된다. 존재하지 않는듯 존재하는 앰비언트의 미학은 미니멀리즘과 자연스러움이 강조되는 현대로 올 수록 더욱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여러 시대의 앰비언트 작품 5가지를 추천해보았다.


1. Harold Budd, Brian Eno <Ambient 2: The Plateaux of Mirror> (1980)

1970년대 중반에 브라이언 이노가 창시한 앰비언트의 가장 특징적인 사운드는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는 따듯한 신디사이저다. 이후 1978년, 그는 미니멀리즘으로 이름을 떨치던 피아니스트 해롤드 버드(Harold Budd)와 2개의 합작앨범을 내면서 앰비언트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를 한다. 그 중 두번째 앨범인 Ambient 2는 이런 두 사람의 색채가 아름답게 조화된 앨범이다.

이노가 마련하는 평온한 바다 같은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층위 위에,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는 해롤드 버드가 풍부한 화성과 섬세한 터치가 살아있는 연주를 선보인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걸로 이해됐었던 앰비언트가 멜로디를 만나면서 장르적 가능성을 넓히는 순간이다.

추천곡: The Plateaux of Mirror, An Arc of Doves

Harold Budd / Brian Eno - Ambient 2 (The Plateaux Of Mirror) - A3 - The Plateaux Of Mirror / ⓒYoutube

2. The Orb <Orbvs Terrarvm> (1995)

리듬의 요소가 없다시피한 앰비언트가 춤을 위한 장르인 하우스와 섞일 수 있을까? 영국 듀오 The Orb는 이 앨범을 통해 ‘그렇다’고 대답한다. ‘앰비언트 하우스’라는 장르의 창시자격인 그들은 이 앨범에서 공간감 있는 신스나 반복적인 기계 소리 같은 앰비언트의 특징적인 요소를 강한 드럼 위에 얹어놓는다.

평온한 분위기를 띠는 기존의 앰비언트 음악과는 다르게, 귀를 찌르는듯한 높은 주파수대의 샘플들도 과감히 사용한다. 그 결과, 앰비언트의 평온함과 몰입감을 유지하면서도 리듬이 살아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내적 댄스를 발산하고 싶은데 클럽에 가기 부담스럽다면 이 음반을 추천한다.

추천곡: Plateau, White River Junction

The Orb - White River Junction / ⓒYoutube

3. GAS <Pop> (2000)

<Pop>은 반복과 공간이라는 앰비언트 장르의 특징에 집착적일만큼 충실한 앨범이다. 공장 옆을 지나가면 들을 법한 기계 소리, 비온 뒤 숲 속에서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와 같은 일상의 소리들이 일정하게 반복되고, 그 위에 따듯하고 은은한 신스 역시 일정한 코드진행으로 계속 반복된다.

소리 표본을 채취한 녹음기 여러대를 틀어놓은듯한 이 앨범이 추구하는 고집스러운 반복은 환각적인 효과까지 준다. 시작, 중간, 끝이 있는 현실세계의 질서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 러닝타임이 아무리 흘러도 요소가 변하지 않는 이 음악을 듣고 위안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추천곡: Pop 1, Pop 4

Pop 4 · GAS / ⓒYoutube

4. Grouper <A I A: Alien Observer> (2011)

우리가 잠들면 꾸는 꿈에서는 모든 게 불명확하다. 건물과 공간은 그 형체가 흐릿하고, 잡힐 것 같은 모든 것은 끝끝내 우리 손을 벗어나고 만다. 그루퍼(Grouper)의 음악이 딱 그런 느낌이다. 건반을 연주하는 거 같기는 한데 음과 음 사이의 경계도 흐릿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꿈의 충실한 재현 같아서 매력적이다.

로파이한 전자 피아노와 신스가 악기구성의 전부인 이 앨범에 화려한 편곡이나 캐치한 사운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여백이 많다. 잠이 안 올때, 또는 선잠에서 깰 때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보컬이 있는 음반이다.|

추천곡: Vapor Trails, Come Softly - For Daniel D.

Vapor Trails / ⓒYoutube

5. Nala Sinephro <Space 1.8> (2021)

요즘의 앰비언트 장르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재즈 아티스트이다. 그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음악가 날라 시네프로(Nala Sinephro)다. 보통 재즈라 하면 리드미컬한 요소가 강조되어 드럼 위에 다양한 악기의 즉흥연주가 펼쳐지는데,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의 공간감 가득한 소리가 기반을 이루고 그 위에 색소폰, 드럼, 건반, 기타가 그 공간 속을 유영하듯 즉흥연주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런 전자음악적인 신디사이저와 어쿠스틱한 리얼악기들 사이를 시네프로가 직접 연주하는 하프가 매끄럽게 융화시킨다. 그 결과, 재즈 특유의 따듯함과 역동성이 모두 담겨있는 앰비언트 작품이 탄생했다.

추천곡: Space 1, Space 5

Space 5 · Nala Sinephro / ⓒYoutube








Editor / 육지민(@yookjiminz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