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죽었다.” 우리들이 외면한 진실과 베네통의 광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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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행복, 욕망과 환상만을 허용하는 광고들. 그 속에선 특정 모습을 강요하며, 틀에 박힌 아름다움을 유도한다. 광고가 부추기는 현대인의 취향과 행동, 그리고 삶의 태도는 마치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 것처럼 선전하는 상품을 구입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소비자를 설득시킨다. 물론 광고는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시키는 개념을 갖고 있지만 현대의 광고는 욕망을 조성하는 데에 치중하고, 주로 실질적인 메시지 하나 없는, 이미지 중심 주의의 광고가 대다수. 무해한 아름다움을 내세우며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온전한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보다 현실로부터 도피를 부추기는 광고, 이제는 지겹다.
그런 광고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광고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광고는 정말, 단지 소비를 자극하는 수단에 머물러야만 할까?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했던 브랜드가 있다.



<United Colors of Benetton>
이탈리아 트레비소 출신의 루치아노 베네통과 그의 형제·자매인 줄리아나, 질베르토, 카를로가 함께 설립한 이탈리아 브랜드. 비비드 한 컬러의 니트웨어와 유니섹스 디자인을 선보였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럽, 미국, 아시아 시장으로 나아갔다. 통통 튀는 색감을 선보이는 이탈리아 니트 브랜드에 불과했던 이들은 1982년, 광고 디렉터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와 손을 잡으며, 패션 광고계에 새로운 발돋움을 하게 된다.
이들의 협업이 독특했던 이유는 의류회사의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판매하고 있는 베네통의 제품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질병, 죽음, 사형제도 같은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러한 장면 속에도 베네통 브랜드의 로고만 남긴 채 전 세계인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불편한 진실과 함께한 토스카니의 광고들>

[Blanket(1990)]
하나로 뭉친 색을 뜻하는 ‘United Colors’. 서로 다른 색을 가졌지만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고자 한 브랜드 베네통. 이들의 브랜드명을 증명하는 듯, 1990년 광고 ‘Blanket’에서 서로 다른 인종의 서양인 레즈비언 부부가 자신들의 입양아인 동양인 아이를 담요로 안고 있는 사진을 게시한다. 우리가 이 광고를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 건 무엇일까. 허물없는 사랑과 생명? 옷 하나 없는 의류 광고에서 사랑과 생명을 되묻는 것, 베네통이 원했던 바일 지도.

[Condoms(1991)]
1991년 컬러 콘돔 캠페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젊은 세대를 휩쓸던 에이즈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광고는 단순한 시각적 자극을 넘어, 성적 건강과 안전을 위한 공공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이후 1997년 11월 베네통은 영국에서 ‘다양한 색상, 신뢰도 높은 콘돔’이라는 광고 문구로 그들의 콘돔을 출시했다. 이 콘돔은 호주 회사 Ansell과 라이선스 계약 하에 제조되었으며, 영국 약국과 베네통 매장에서 판매가 이루어졌다. 토스카니는 광고는 오늘날 가장 강력한 미디어라며, 단순히 상품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 현실을 직시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캠페인은 패션 브랜드가 공공보건 이슈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례적인 사례.

[Newborn baby(1991)]
탯줄도 끊지 않은 피붙이 태아, 활자로 봐도 느껴지는 잔혹한 이미지. 생명에 대한 찬가를 보낸 토스카니의 캠페인. 결국 모든 인간의 탄생엔 피, 탯줄, 그리고 울음, 이 세 가지로 시작된다고 말하며 인간의 보편성과 평등함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과도한 자극성과 겨우 세상 밖에 눈을 뜬 아이 앞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에 반감을 샀던 터. 이 광고는 베네통 역사상 가장 많이 검열당한 광고 중 하나로 손 꼽힌다.

[HIV Positive(1993)]
1990년대 초 젊은 남성 사망 원인 1위로 AIDS가 급부상하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극심해졌다. 토스카니는 베네통에서 재직 당시 HIV, 에이즈와 관련된 캠페인을 자주 진행해 왔지만, HIV Positive(양성) 도장이 찍힌 엉덩이 사진은 의도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갔다. AIDS 환자와 HIV 보균자에게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마치 축산물 등급 판정을 받은 모습과 흡사했고, 되려 동성애자 단체들이 자신들을 비인간화한다며 분노했다. 그러나 토스카니는 오히려 사회가 만들어낸 도장 찍기식 낙인 문화를 고발하는 풍자라고 설명했다. 예술과 윤리, 메시지와 표현 사이 모호한 경계를 묻는 기점이 된 광고 중 하나.




<Unhate, 우리 서로 증오하지 않아요>
2011년 1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오바마 미 대통령의 키스,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 위원장의 키스. 정치뿐일까.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이집트 이슬람 성직자 아흐메드 알타 예브의 키스까지, 불편한 관계의 각국 정상과 종교 권위자끼리 입맞춤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퍼졌다.
베네통은 프랑스 파리 베네통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이 세상, 증오는 결코 증오에 의해 사그라지지 않는다.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증오를 잠재울 수 있다.’라는 관용의 개념을 함축해 언헤이트 캠페인 론칭 행사를 열었다. 캠페인의 주요 테마는 사랑의 상징인 ‘키스’를 통해 서로 다른 신념, 문화, 사람, 입장 등에 대한 평화적인 이해를 고취시키고, 화해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 것. 초상권 침해 논란 속에서도, 이들의 키스는 단순한 합성 이미지가 아니었다. 갈등과 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에. 베네통은 유쾌한 상상으로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이미지들은 지금도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소음은 쉽지만, 진실은 어려워>
우리는 ‘주목’을 진실로 오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자극적인 이미지, 더 큰 소음이 곧 영향력이라 믿는다. 베네통의 광고는 종종 노이즈 마케팅이라 불렸지만, 그 불편한 노이즈엔 이유가 있었다. 생명, 죽음, 성, 질병, 인종, 광고가 외면하던 모든 현실을 들이밀며, 소비의 언어로 현실을 묻고 반문했다.
오늘날의 노이즈는 다르다. 비어 있고 한없이 가볍다. 본질 없는 충격과 조악한 패러디로 가득한 세계. 베네통의 이미지는 ‘보이는 것’보다 ‘보는 자의 태도’를 바꾸려 했다. 이건 패션 광고가 아니라 하나의 저항이었다. 모두가 침묵할 때, 그들은 소리쳤고, 죽음, 혐오, 낙인, 차별, 그 모든 것을 상품 뒤에 숨기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그런 질문이 다시 필요하다.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광고가 지겹다. 무해한 척하는 이미지, 그 안에 숨은 무수한 억압들. 침묵하는 시각 언어가 넘쳐나는 오늘, 우리는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주목할 거리들은 넘치고 메시지는 없어진 지금. 다시,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까.
Editor / 이정민(@jeongmlnl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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