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칵테일 ‘다이키리’가 지닌 태도
다이키리
쿠바 동부의 해안 지역 “다이키리(Daiquiri)”에서 태어난 칵테일이자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칵테일로 잘 알려진 다이키리(Daiquiri). 그 기원은 19세기 말, 쿠바에 체류하던 미국인 광산 기술자 제닝스 콕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운 기후 속에서 럼을 그대로 마시기엔 거칠었던 환경에서 그는 라임과 설탕을 섞어 보다 마시기 쉬운 형태를 만들었다. 이 선택은 세련된 미식적 발명이라기보다, 환경과 조건에 맞춘 현실적인 판단에 가까웠다. 다이키리는 그렇게 ‘필요’에서 출발한 술이다.

<다이키리의 레시피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다이키리의 레시피는 그리 대단한 스킬이나 재료를 요하지 않는다. 딱 세가지. 화이트 럼, 라임 주스, 설탕이 전부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허술함이 아니라 오히려 엄격한 기준을 전제로 한다. 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과하면 전체의 균형은 즉각 무너진다. 그래서 다이키리는 바텐더에게 기술을 과시하는 술이 아니라, 기본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술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점은 다이키리에 ‘정답’이라 부를 수 있는 고정된 수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율은 존재하지만, 라임의 산도는 계절과 산지에 따라 달라지고 럼의 캐릭터 역시 브랜드마다 다르다. 하물며 라임이 없다면 다른 과일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다이키리의 레시피는 규칙이라기보다 기준에 가깝다. 바텐더는 매번 재료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날의 균형을 다시 맞춘다. 같은 이름의 술이지만 매번 동일한 맛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다.
<때문에 다이키리는 공간의 술이 된다>
새로운 도시, 처음 방문한 바에서 다이키리를 주문하는 일은 그 장소와 바텐더가 가진 감각을 가늠해보는 행위에 가깝다. 어떤 곳에서는 산미가 먼저 다가오고, 다른 곳에서는 럼의 무게감이 앞선다. 그 차이는 실수라기보다 해석의 차이다.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를 받아들이며, 공간과 사람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다이키리는 하나의 태도를 제시한다.
기준은 분명하지만 결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그 차이를 실패가 아닌 설렘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다이키리는 늘 같은 맛을 요구하지 않기에, 변화 자체를 자연스럽게 포함한다.



서문에서 이야기했듯 이 술이 문화적 상징으로 확장된 데에는 단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영향이 크다. 그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아바나의 바 엘 플로리디타의 단골이었고, 이곳에서 다이키리를 반복해 주문했다. 다만 그의 선택은 일반적인 레시피와 달랐다. 설탕을 빼고 럼의 양을 늘리며, 라임에 자몽 주스를 더한 이 변형은 ‘헤밍웨이 다이키리’ 혹은 ‘파파 도블레’로 불린다.
이 선택은 단순한 개인 취향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단맛을 덜어내고 핵심을 강조한 이 레시피는 그의 글쓰기 방식과 닮아 있다. 짧고 단단한 문장,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낸 서술,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 문체. 다이키리는 그의 미학이 술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된 사례처럼 읽힌다. 과잉을 제거하고 남은 요소들의 균형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이 칵테일은 하나의 미학적 태도를 상징한다.
<새로운 해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다이키리>
연초가 되면 우리는 리셋을 결심하며 새 다이어리를 사고, 목표를 세워 더 나은 한 해를 설계하려 한다. 그러나 해마다 계획은 늘어나고, 그만큼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하나의 실패가 전체를 무너뜨리는 구조 속에서 의욕은 빠르게 소진된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기준을 지나치게 고정해두는 방식에 있다.
삶의 목표와 기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환경과 관계, 새로운 문제 앞에서 이전과 같은 비율을 고집하는 일은 오히려 불균형을 만든다. 기준이 변했다는 것은 새로운 조건을 만났다는 뜻이며, 그에 맞는 비율을 다시 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준의 변화 앞에서 자기연민에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기준에 맞는 유연함을 갖는 일이 중요해진다.


<다이키리와 같은 마음이라면>
다이키리의 레시피는 이 지점에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수치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에 맞는 비율이다. 오늘의 라임이 유난히 시면 설탕을 늘리고, 럼의 존재감이 강하면 산미를 보강한다. 균형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맞추는 이 과정에는 실패라는 개념이 없다. 다만 유연한 조정이 있을 뿐이다.
이 변화는 다이키리 레시피와 닮아 있다. 다이키리는 정확한 수치를 반복해 재현하는 술이 아니다. 재료의 상태에 따라 비율을 조정하고, 그날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과정 자체가 레시피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매번 같은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 안에서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가다. 다이키리는 완성보다 지속을 전제로 한 술에 가깝다.

새로움을 과시하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며,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조. 다이키리는 그런 방식으로 새해를 시작하자는 제안처럼 읽힌다. 다이키리가 한 세기를 넘어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다른 조건 속에서도 다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마주한 올 한해 역시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ditor / 정세원(@312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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