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를 먹고 태어난 괴물, <히피>
d
끊이지 않는 세계의 긴장 속에서 ‘평화’라는 말은 점점 더 무력하게 들린다. 이럴 때일수록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을 외쳤던 집단, ‘히피(hippie)’. 하지만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사랑과 평화로 포장된 그 문화는 과연 끝까지 아름다웠을까?
히피(hippie)는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반문화 운동 집단으로, 비폭력과 자연주의를 표방했다. 당시 미국은 경제성장과 동반된 부의 편재(偏在)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 상태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성과주의 사회의 지나친 보수화, 정부의 베트남 전쟁 개입으로 체제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내놓은 해답은 자유와 사랑. 기존의 사회질서를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 회귀를 주장했다.


<록을 품은 자유의 성지, 우드스톡>
당시 히피 문화가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이들이 내세운 반전(反戰)과 평화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 쾌락주의는 현대 문화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정신은 록 음악과 결합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제퍼슨 에어플레인, 지미 헨드릭스, 크림 등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이 히피 사상에 감화되었고, 음악은 그들의 큰 무기가 되었다. 심지어 비틀즈조차 히피 세대의 사조를 따랐던 것을 생각하면 말 다한 셈이다.


이들의 영향이 닿은 곳은 단순한 음악 사조뿐만 아니었는데,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우드스톡(Woodstock)’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록 페스티벌의 시초로, 1960년대 후반 히피 문화가 절정에 다다를 시기에 등장한다. 제1회 우드스톡의 입장객 수는 최소 30만 명 이상으로 입구를 부수고 들어간 사람이 너무 많아 현재까지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드스톡이 열린 사흘은 그야말로 ‘광란’의 파티였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공연을 즐기며, 쉴 새 없이 마약을 해댔다. 그곳은 난장이었지만, 동시에 록 음악을 품은 자유의 성지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with 히피>
당시의 히피가 자유와 평화를 표방했지만, 현대 사회의 시선에서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내세운 쾌락주의와 신비주의. 곧 마약과 집단 난교로 향하는 이 두 사상은 분명한 히피 문화의 암(暗)이었다. 특히 LSD와 마리화나를 빼놓을 수 없는데, "Turn On, Tune In, Drop Ou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약물 사용을 통한 정신 구조의 확장을 주장했다. 이때 생긴 단어가 바로 ‘trip’. 마약을 통한 정신세계의 탐험을 뜻하는 말로, 이 단어는 현재까지도 마약을 경험했다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이 어두운 이면을 담은 상징적인 작품이 바로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 영화는 1969년, ‘맨슨 패밀리’라는 이름의 히피 집단이 일으킨 끔찍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맨슨 패밀리는 브래드 피트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당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맨슨 패밀리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습격하여 그의 아내이자 유명 배우인 샤론 테이트를 포함한 5명을 난도질해 죽였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샤론 테이트는 태아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들은 그녀를 16번이나 찔러 살해한다. 세간에 충격을 준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훗날 히피의 몰락에 큰 원인이 된다.


<히피의 몰락, 맨슨 패밀리>
영원할 것 같던 자유와 평화의 외침에도 결국 그림자가 드리웠다. 찰스 맨슨이 극단적인 히피 집단의 교주로 군림하며, 어린 히피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맨슨 패밀리’라 불린 이들은 불법 약물 복용과 집단 난교, 살인을 일삼았다. 히피들의 ‘사랑’을 악용한 찰스 맨슨은 카리스마 있는 사이비 교주로 신격화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맨슨 패밀리는 15세에서 20세 사이의 청소년이 주를 이뤘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이 이토록 결집했던 이유는 히피의 ‘공동체 생활’이 큰 역할을 했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이가 많았던 맨슨 패밀리는 집보다 히피 공동체를 사랑한 것이다. 평화의 뒤에 숨어, 살인을 저지른 범죄 집단. ‘책임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이들의 모순성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히피의 몰락을 이끌었다.


Editor / 권혁주(@junyakimchinabe)
Fake Magazine Picks
웨스 앤더슨이 제작한 단편 영화 같은 광고 6선
YELLOW HIPPIES(옐로우 히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