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ARA(키라라)
KIRARA
“9년 전 상을 탈 때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어요. 그 단어를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가겠습니다.”
지난 2월, 열린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한 키라라는 9년 전인 2017년 동일한 부분에서 수상했던 그가 ‘9년 전 상을 탈 때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다’며 운을 뗐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가 만든 음악이 올해의 일렉트로닉 앨범인 것 같습니다. 트랜스젠더 여러분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울지 마세요. 자살하지 마시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키라라를 만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어질 내용은 그와 나눈 두 시간가량의 대담. 이제, 장르와 스타일을 초월한 전자음악가 키라라에게 여지없이 사랑에 빠질 차례다.

Q. 키라라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전자음악이라는 조금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 키라라라고 합니다.
Q. 현재 영종도에 거주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A. 한 2019년, 2020년쯤이었나. 그때 이후로 여기 와서 아예 눌러앉아 버렸죠. 옛날에 마음이 좀 아팠을 때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듯 찾아온 게 여기예요.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많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아 고민입니다.

Q. 이디오테잎과 함께 한국 전자음악 신을 상징하는 아티스트라 불린다고.
A.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죠(웃음). 제가 이디오테잎이랑 같이 언급되곤 하는데, 아마 ‘팬들을 모아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 말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 역시도 동의하고요. 하지만 팬이 많다고 다 멋진 음악은 아니라고 봐요. 저는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다가 이태원 클럽에도 가고, 언더그라운드 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어요. 한국에 전자 음악 잘하는 억울한 사람들 너무 많거든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다가 어쩌다 이태원 클럽에도 갈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언더그라운드에 관심을 가지게 할 ‘마중물’ 같은 거죠. 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Q. 많은 사람들이 DJ와 전자음악가의 구별을 어려워한다. 둘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나.
A. DJ는 환경에 맞는 음악을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서 기승전결이 느껴지도록 또는 어떤 의도된 기승전결을 가지도록 적절하게 재생해 주시는 분들을 말하고요. 저 같은 전자음악가의 공연은 제 음악을 제 악기로 연주하는 거죠. 하지만 그 둘의 교집합도 분명히 있으니 그 둘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게 그렇게 유명한 개념도 아니고, 대중분들이 DJ 셋이랑 라이브 셋을 섞어서 부르는 건 괜찮아요.
근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한대음 선정위원이나 큰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이걸 혼동하면 정말이지 저는 개인적으로 현타가 와요. 근데 전 제가 DJ 셋으로 읽히는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전자음악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저보고 'DJ 키라라'라고 하는 건 그냥 무식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전자 음악 평론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웃음).


Q. 단독 콘서트 <봤지 얘들아 나 이렇게 훌륭한 아이야>를 앞두고 있다.
A. 너무 이슈가 많은 와중에 요즘 그것만 재밌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공연을 준비하고, 제 음악을 하기 위해 앉아 있는 그 순간이요. 지금 제 일상 중에서 가장 소중해요. 무대 위에서는 좀 개인적이어도 되고,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게 참 편한 것 같아요. 기대가 돼요. 너무.
Q. 키라라는 무대 위에서 어떤 감정이 드는가.
A. 저는 항상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려고 무대 위에 서 있는 느낌이긴 해요. 공연하다가 혼자 하늘 보고 '뽕'에 취하기도 하고요(웃음). 해방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표현 같네요.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 모든 무게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음악이랑 저만 남는 기분이거든요.
Q. 무대 위의 키라라는 그 순간 누구로부터, 혹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나.
A. 결국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제 자신인 것 같아요. 제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피해의식과 트라우마.
Q.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A. 요즘 이소라 님 음악만 계속 들어요. 그분 7집, 8집 앨범. 그분이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가사들이 다 너무 공감이 되더라고요. 이소라 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매번 감동을 받고 있어요.
Q. 요즘 즐겨 듣는 한국 전자음악가가 있다면.
A. 지금 갑자기 딱 떠오르는 건 자우림의 이선규 님하고, 뜨거운 감자의 고범준 님, 두 분이서 하는 전자음악 듀오가 있어요. '옷옷'이라고 있는데, 요 며칠 자주 들었어요. 그분들이 활동을 계속 이어가 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심 바람이 있습니다.
그 음악이 정서적으로 저랑 너무 잘 맞았거든요. 우선 저는 직관적인 음악을 좋아하는데요. 옷옷의 음악은 직관적이에요. 메시지가 분명한 음악이기도 하고요. 잘 '떠 먹여 주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죠.
Q. 키라라는 어떤가. 스스로 직관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직관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왕이 되고자 합니다(웃음).
어떻게 하면 제 노래를 듣는 분들에게 더 잘 '떠 먹여 줄 수 있는가'를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어려운 음악이 다 싫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어려운 걸 듣기 쉽게 만들면 그게 더 대박인 것 같거든요.
Q. “키라라는 이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 키라라의 슬로건이다. 어떤 의미인가.
A. 어렸을 때 음침한 마음에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얄팍한 마음으로 그렇게 슬로건을 정했던 건데, 사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Q. 후회한다?
A. 지금 상황을 보면 그 키워드들이 헤이터들한테는 욕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더라고요. 제가 빌미를 제공한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예쁘지도 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니까 더 우기고 싶었나 봐요. 근데 이제 서른다섯 먹고 예뻐서 뭐 하겠어요. 예뻐져 봤자죠. 강한 것도 제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고, 그냥 있고 싶습니다.
Q. 새로운 캐치프라이즈를 만들어본다면.
A. “키라라는 키라라다.” 실제로 그 문장을 녹음해 놓긴 했는데요. 오는 4월 11일 제 단독 공연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Q. 키라라를 상징하는 로고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A. 프랑스의 전자음악가 저스티스를 따라 했어요. 저스티스는 로고가 십자가이고 네모가 두 개니까, '나는 세 개 해야지' 해서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저스티스가 어디선가 그런 인터뷰를 했어요. “십자가는 특수 문자라서 상표권 등록이 안 된다”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상표권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어렸을 때 그냥 그 말이 멋있게 느껴졌나 봐요. 그래서 저도 특수 문자에서 골랐습니다(웃음).
Q.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을 수상했고, 수상소감이 큰 화제를 모았다. 후회는 없나.
A. 요즘은 후회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 대신 후련함만 남기려고 애썼는데, 지금은 제가 했던 말의 여파가 커도 너무 커요. 제가 누군가를 살렸다느니, 죽을 것 같으니 제발 살려달라느니, 하는 DM도 너무 많이 와요.
제게 너무 무거운 책임감이 생긴 느낌이에요. 인권단체 같은 곳에서도 연락이 정말 많이 오는데, 그분들은 제 음악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제가 어떤 대표성을 띠려고 그 이야기를 꺼냈던 건 아닌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쳐요. 지금은 그저 어디 처박혀서 음악만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Q. 음악보다 정체성이 먼저 언급되는 피로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대처하는 키라라만의 방식이 있다면.
A. 사실 맨 처음 3집이 나왔을 때도 한 번 겪었던 일이긴 해요. 그 이후에 제가 선택한 방식은 인스타그램에 글을 많이 쓰는 거였죠. 주체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소위 말하는 '깨시민' 같아 보이려고 엄청 애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의 감정과 주변 상황을 잘 다스려보려고 했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 방법만으로는 대처가 안 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그냥 음악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Q. 한 인터뷰에서 “좋은 음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좋은 음악은 좋다고 우기는 음악이다”라고 대답했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A. 질문을 부정한 거죠. 좋은 음악이 뭔지를 논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이 뭔지 아는 게 그다지 쓸데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 같아요. 제가 음악만 파는 건 아니거든요. 제 성격, 정체성, 행동 같은 것들을 다 종합적으로 팔아서 제가 먹고사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음악’이라는 게 생각보다 좀 덜 중요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좋은 음악만 신경 써서 잘되는 음악가도 있죠. 그런 분들은 피치포크에 올라가고 언젠가 그래미에 갈지도 몰라요. 근데 저는 그런 노선을 밟고 있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전자 음악에서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굳이 논해야 한다면, 저는 '맥락이 분명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이 음악이어야만 하는 이유, 이 음악에 있는 소리와 구성 요소들이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는가, 이것이 맥락에 맞는가. 어떻게 보면 좀 보수적인 관점일 수도 있어요. 축축한 음악이면 리버브가 많아야죠. 예를 들어 축축한 음악인데 리버브가 없다? 그러면 그래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해요. 그게 설득이 안 되면 옳지 않은 음악인 것 같아요. 그걸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음악, 당위성이 다 맞아떨어지는 소리들. 그런 것들의 집합을 저는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Q. 키라라를 얘기할 때 3집에 수록된 <Wish>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발매 후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지금의 키라라가 바라보는 <Wish>는 어떤 곡인가.
A. 이미 수많은 감정이 지나간 뒤여서, 지금은 사실 그냥 관객들이 좋아하니까 연주한다 같은 느낌의 곡인 것 같아요. 그 곡은 사실 죽은 친구들에 대한 추모의 뒷배경이 있는 음악이에요. 저는 제가 했던 추모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참 그 음악은 우울하기만 한 음악이라서, 저는 그 음악을 많이 사유하려고 하지는 않고요.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뭐 좋은 노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이 음악을 너무 많은 분들이 워낙 사랑해 주셔서, <Wish>를 마냥 우울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제 마음을 좀 고쳐먹어야 하나 싶기도 해요.
Q. 5집은 “별다른 메시지 없이 만들었다”라고 밝혔던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띄고 있다. 지금도 5집을 만들 때 당시의 초연한 감정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아닌 것 같아요. 사실 5집 내고 키라라를 그만하려고 했거든요.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건 아니고, 키라라라는 브랜드를요. 좀 난감하기도 해요. 이제는 일이 너무 커져서 회사 눈치도 봐야 하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도 있고. 지금은 그만 둘 시기가 아니에요. 키라라로서 할 얘기가 다시 너무 많이 생겨버렸거든요. 제가 평화롭고 안전할 때 이 순간을 멋지게 담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5집을 딱 냈는데, 그 이후로 이슈가 너무 많이 생겨서. 6집은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Q. 6집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
A. ‘날이 선’ 앨범을 만들고 싶지만, 하지만 그게 ‘우울’과 연관된 앨범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거. 제 개인적인 감정 상태를 토로하는 방식이었던 3집이나 4집같이 감정이 양 극단에 가있는 느낌이 아니면서, 날이 서 있는 앨범을 이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감정이 날 선다기보다는 ‘느낌’이 날 서고 싶다는 말이에요.
더 뚜렷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또렷한 것들을 상상하게 하는 앨범이 다음 앨범의 목표입니다. 아까 말한, 직관적인 음악을 지향한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가장 뾰족하게 뚜렷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Q. 5집에서는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보여주었다. 다음 앨범 작업 역시 이러한 기조를 따라가게 될지 궁금하다.
A. 6집도 당연히 많은 분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래야 작업이 더 다채롭고 재미있어지니까요. 하지만 섭외라는 게, 제 의지만 있다고 뚝딱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실적인 제작비 문제도 있고, 협업하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신중하게 살펴야 하니까요. 지금은 그저 '많은 분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만 간절하게 품고 있는 단계예요. 그 소망이 잘 풀려서 6집에 재미있는 목소리들이 많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Q. 가장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A. 사실 예전부터 너무 오랫동안 이자람 선생님과 작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을 맡으셨던. 그 선생님과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서로 소망을 나눈 적은 있지만, 성사가 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네요. 이외에도 말로 선생님도 관심 있고, 래퍼 노스페이스갓도 관심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싶어요.
5집 만들 때도 포크, 메탈, 힙합, 재즈는 다 건드린다는 전제를 세우고 들어갔었거든요. '키라라가 아니면 절대 모을 수 없는 라인업'이라는 말이 참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만 모을 수 있는 그런 라인업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Q. 본인이 작업한 곡 중에 가장 애정하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튠 인 투모로우'라는 그룹의 'Be My Summer'라는 곡을 제가 리믹스한 버전이 발매되어 있거든요. 그게 작년인가에 나온 건데,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제가 지금까지 만든 음악 중에 가장 잘 만든 곡인 것 같아요. 진짜로요. 근데 정작 튠 인 투모로우 분들은 해체를 해버리셨더라고요. 아니, 그래서 그분들한테 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에요. 왜 해체했냐고(웃음). 그만큼 저한테는 애착이 큰 작업이었고, 지금 들어도 참 만족스러운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Q. 키라라는 활동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가 있나.
A. 백예린. 예린 님이 제 활동 중에 저를 가장 먼저 주목해 준 유명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하는 일이 큰 사람이 제 음악이 좋다면서 먼저 연락해 주고, 친구가 되어주려고 하고, 음악도 같이 하고 싶어 해주는 그런 경험이 저한테는 처음이었거든요. 그 당시의 추억을 자주 생각해 보곤 하는데, 생각할수록 그때 그 마음이 참 소중했다는 마음이 너무 많이 들어요. 정말 요즘처럼 마음이 힘든 시기에 유독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에요. 한번 연락은 하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은 없고. 뭐 그런 상황입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은 심정이네요.
Q. 이번 기회에 직접 연락을 해보는 건 어떨지.
A. 근데 뭐, 바쁠 테니까요. 의지하고 싶나 봐요. 요즘 제가 겪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예린 님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버티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그 사람도 어떤 대표성을 그가 원하던 원치 않던 떠안았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너무도 강인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가잖아요.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겪었겠어요. 그런데도 다 털고 일어나서 3집 냈잖아요. 진짜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Q. 백예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저... 카톡 해도 되나요? 예린 님, 언제 밥 한번 먹어요(웃음).
Q. 전자음악가로서 키라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A. 전자 음악가로서 할 일은 딱 하나 남은 느낌이네요. 제 지구 생활의 마지막 과업 같은 건데, 이거 정말 언젠가는 할 거예요. 호텔 뷔페에 전자 음악가들 한 50명 모아놓고 사교 파티 할 겁니다. 다들 모여서 명함 나누고, 서로 선배가 누구고 후배가 누구인지 얼굴 다 보여줄 거예요. 그게 제 꿈입니다. 아까 말한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게 바로 이거예요. "너 혼자 아니야, 너도 선배가 있고 너도 후배가 있어." 이걸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습니다. 우리끼리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Q. 키라라에게 전자음악이란.
A. 최근에 겪은 일이 두 개 있어서, 이 질문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는 요즘이고, 아주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제가 평소 생각하는 그대로 말하면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음악을 열심히 한 선배는 서운해하고, 훌륭한 전자 음악가를 꿈꾸는 후배는 절망하고. 그래서 이제 ‘키라라에게 전자 음악을 논하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할 말이 없어요.
이제 저는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의식해서 꾸며내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사람들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 이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전자 음악 신과 그것들에 대한 논평과 같은 질문들은 모두 ‘노코멘트’ 하려고 합니다. 이 인터뷰가 나간 이후에 다른 기자나 평론가분들이 저에게 전자 음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Q. 2026년 키라라에게 목표가 있다면.
A. 5천만 원을 모으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어떤 숙원 사업들이 있거든요. 제작비를 엄청나게 들여서 앨범을 하나 제대로 만든다거나, 그 앨범에 제 모든 걸 다 털어버린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딘가로 이사를 가거나, 뭘 하든 간에 모두 5천만 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더라고요.
Q. 한국에서 전자음악가을 한다는 건 어떤가.
A. 사실 저는 제가 전자 음악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그렇게 크진 않아요. 형식만 전자 음악이지, 무대 위에서는 거의 락커 같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많은 전자 음악 하시는 분들이 저한테 리스펙을 보내주실 때면 정말 감개무량해요. 저는 그냥 여러분이랑 섞이고 싶었거든요. 유명해지니까 막 박수도 쳐주시고, 그런 게 참 기쁘더라고요.
Q.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수많은 트랜스젠더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잠깐만요. 잘 말하고 싶다. 음…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가 잘 사는 게 첫 번째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은 한국에서 구릴 수밖에 없어요. 그 정체성을 구리게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여러분이 잘 살아야 돼요. 그러려면 그 어떤 젠더, 성정체성을 표현하는 휘황찬란한 말들보다, 당신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더 멋있는 정체성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바로 제가 운 좋게 그게 됐었네요. 음악가라는 정체성 덕분에 저도 저의 거지 같았던 그 정체성을, 거지 같았다고 인정하고,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당신의 정체성에 당신을 가두지 마십시오. 저는 음악 하면요, 제가 트랜스젠더인 게 그렇게 별로 안 중요한 순간도 있거든요. 트랜스젠더는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세상은 그다지 쉽게 안 바뀔 것 같거든요. 여러분이 강해지세요(웃음).


Q. 악플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악플러들이 이야기하는 건 논지가 되게 간단해요. 제 성별이 여성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은 암적인 존재이다, 그것뿐이에요. 저는 이제 제가 뭐라고 주장하고 싶지가 않아요. 뭔가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포기했어요. 제가 그걸 주장하고 싶었으면 지금 인터뷰도 무슨 코르셋이라도 차고 나왔겠죠. 전 그런 점에선 괜찮아요. 그래서 악플러들보단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요. 저를 지켜준다고 막 싸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요. 우리 서로 다 다치지 맙시다. 저 진짜 누가 저한테 욕하는 것보다 절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싸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러면 제가 이 세상에 싸움을 불러다 주는 존재같이 느껴지거든요. 저는 그게 더 힘들어요. 싸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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