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욕망을 대하는 자세” <카마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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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카마수트라(Kamasutra)』라는 서적에 대해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다소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떠올린다. 흔히 이 책은 "성행위 체위에 대한 설명서"로 오해되기도 하며, 일부 매체에서는 이를 선정적 자료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카마수트라』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great cultural masterpiece", one which can inspire contemporary Indians to overcome "self-doubts and rejoice”
[카마 수트라는 "위대한 문화적 걸작"이며, 현대 인도인들이 고대 유산에 대한 "자기 의심과 기쁨"을 극복하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

-인도학자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

『카마수트라』는 단순한 성지침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사랑과 쾌락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체계적인 ‘고찰’이다. 이 책은 약 2천 년 전 고대 인도에서 저술되었으며, 남녀 간의 관계, 결혼 생활, 인간의 욕망, 사회적 예절 등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성이란 단지 육체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있어 본능과 윤리, 감정과 이성이 맞닿는 복합적 영역이며, 『카마수트라』는 그러한 영역을 탐구하고자 한 고대 인도의 지성이 집약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 책은 시대를 넘나드는 고전이자, 인간 관계에 대한 문화적·철학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역사적 배경과 저자>

『카마수트라』가 작성된 정확한 시기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으로 나뉘지만, 대체로 기원후 3~4세기 경, 고대 인도 굽타 왕조 시대에 활동한 철학자 바츠야야나(Vātsyāyana)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츠야야나는 이 책을 단독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 수많은 성학 이론과 문헌들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인도는 문학과 예술, 철학이 번성하던 시기로, 다르마(도덕), 아르타(부), 카마(쾌락), 모크샤(해탈)라고 불리는 삶의 네 가지 목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실현되던 때였다.

바츠야야나는 『카마수트라』의 서문에서 “이 책은 쾌락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그가 집필한 서적이 결코 방탕한 삶을 옹호하거나 무차별한 욕망을 부추기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초반부터 분명히 하고있다. 오히려 그는 도덕과 규범 속에서 쾌락을 긍정하고, 그것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카마수트라』의 구성과 중심 내용>

『카마수트라』는 총 7부 3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목차>

  1. 삶의 세 가지 목표 (다르마, 아르타, 카마)의 개요
  2. 결혼의 조건과 절차
  3. 부부 간의 관계 유지와 성적 조화
  4. 배우자를 유혹하는 기술
  5. 창부의 삶과 예술
  6. 남성과 여성의 심리
  7. 성기 기능 향상과 생활 위생 관리

이처럼 『카마수트라』는 단순한 체위 설명에 그치지 않고, 결혼과 연애, 유혹과 감정, 성행위의 기술, 남녀 간 관계의 심리적 메커니즘까지 설명한다. 특히 제3부에서는 성적 결합이 육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감정적 교류로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상호작용 기술과 예절을 설명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키스의 종류, 애무의 방법, 64가지 체위 등을 매우 세세하게 묘사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성적 자극이 아니라 남녀 간의 조화로운 관계와 감정적 충만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사회적 맥락과 문화 속 의미>

『카마수트라』는 여러 사회적 계층, 특히 지식인과 귀족 계층을 대상으로 쓰인 문헌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당대 사회의 여성상, 계급 질서, 결혼 제도 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결혼 상대자의 선택 조건이나 가정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술 등은 당시 인도 사회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며, 교육서로도 활용되었다.

또한 이 책은 상류층 남성을 위한 실용서이기도 했으나, 여성의 목소리도 다소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여성의 욕망, 쾌락, 심리 상태에 대한 관찰이 전개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섬세하다. 예컨대 여성의 ‘거절의 기술’이나 ‘남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기술한 점은 시대적 제약을 벗어난 사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카마수트라』의 현대적 재조명>

19세기 말, 영국의 인류학자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Richard Francis Burton)이 『카마수트라』의 영어 번역판을 출간하면서 서구 세계에도 이 책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강한 성 억압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은 금기와 관능의 상징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동시대 학자들은 이것을 단순한 정욕의 책이 아니라, 인간 삶의 중요한 측면을 다룬 ‘고전 철학서’로 재조명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카마수트라』는 성생활에 대한 조언을 담은 단순한 참고서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욕망, 관계와 예절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성찰하는 문화적 유산으로 인식된다. 성(性)을 죄악시하거나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이 책은 정직하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보려는 하나의 철학적 시도로 가치가 있으며, 인간이 본능과 지성을 어떻게 조화롭고 건강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인간 삶의 또 하나의 지혜>

『카마수트라』는 사랑과 욕망의 대상을 단순한 육체적 만족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관계 맺기를 지향한다. 당대 인도의 지식인 사회는 인간의 욕망 또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삶의 요소로 여기며, 도덕과 쾌락, 기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삶의 형태를 모색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카마수트라』는 단지 고대의 유물이나 낡은 성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유의미한 삶의 지침서로 기능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인간은 욕망을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그에 지배당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도저도 아닌 적절한 밸런스. 그 중간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삶과 타인에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린 이 균형에 대해 이해해야한다.

이는 비단 성적 쾌락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곳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혹과 쾌락들은 분명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기준과 가치를 찾고 이곳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쾌락들에 집중하는 것,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규칙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를 분명 지금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Editor / 김수용(@_ful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