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의 나체를 찍다. 현대 패션 포토계의 이단아, '스티븐 마이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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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n Meisel >
: 스티븐 마이젤의 발칙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1990년대, 야자와 리에의 누드 화보집 산타페가 발간된 시대, 샤론 스톤의 원초적 본능이 유행하던 시절. 그리고 세계적인 팝스타, 성(性)의 대명사 마돈나의 누드집 SEX가 발간된 1992년.
겉표지와 뒤표지는 알루미늄판으로 제작되어 불투명한 은박은 마치 콘돔을 씌워 놓은 듯 야릇한 구성의 아트북이다. 단순명료한 제목 SEX의 내용은 마돈나의 나체 사진을 시작으로 몸을 묶거나 애널링구스(항문 애무)나 호모섹슈얼리티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폭력적이고 강렬한 섹슈얼리티를 목도하며 이를 기록한 자는 누구였을까? 현재는 보그 담당 포토그래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스티븐 마이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54년 미국 뉴욕 출신으로, 그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으며, 졸업 이후 Halston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 스티븐 마이젤의 탄탄대로 >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국의 초상 사진 대가 '리처드 아베돈', 그리고 패션 포토그래퍼의 미니멀리스트로 불리는 '어빙 펜'의 작품을 보고 난 뒤였다. 다이내믹한 움직임과 동적인 사진, 독특한 구도로 피사체를 표현하던 이들의 작품을 보며 자란 그는, WWD지의 일로 촬영장에 있던 모델들의 테스트 촬영 기회를 얻게 된다.
평일에는 잡지사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주말엔 모델들을 촬영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소속 에이전시 모델들이 본인들의 포트폴리오로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사진을 제출했고, 이를 통해 미국 Seventeen지의 에디터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 계기로 그는 패션 포토그래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1992년, 친구였던 마돈나와의 아트북 SEX 작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그는 보그지와 전속 포토그래퍼로 계약하며 세계적인 포토그래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매거진 커버와 화보뿐만 아니라 베르사체, 루이비통, 프라다, 캘빈 클라인 등 여러 패션 브랜드와 함께 광고를 제작했으며, 머라이어 캐리의 Daydream과 싱글 Fantasy 앨범 커버를 촬영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라이징 스타였던 나오미 캠벨과 작업하는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이어갔다.



< 오직 아름다움만이 그 이유 >
오직 그의 시선을 통해 보는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탐구의 결실만이 패션계에 남아 있다. 정작 카메라 앞에 스스로 서는 것을 싫어하던 스티븐 마이젤은 자신을 철저히 베일에 감추며 드러내는 것을 일절 금했다. 작업하는 팀 또한 절대적으로 본인이 선택했고, 그의 인터뷰는 극히 드물었다. 2003년 독단적인 사진집 Steven Meisel, 프랑스 보그지에 실린 "Who is Steven Meisel?", 그리고 스티븐 마이젤의 이탈리아 보그지 화보를 모은 2008년 032C 16번째 이슈에 실린 것이 전부다.
그 인터뷰 속에서 그는 섹스와 동성애에 관한 생각, 흑인과 인종차별, 파파라치, 전쟁과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치와 사회, 그리고 성(性)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또한,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패션에 매료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었던 그의 기질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리고 포토그래퍼로서의 독보적인 재능이었다. 이 특질은 오늘날까지도 패션계에서 유효하며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 보그 이탈리아 2006년 9월 'State of Emergency' >
국가 비상사태를 뜻하는 'State of Emergency'. 이 화보는 단면적으로 국가 비상사태인 '테러와의 전쟁'을 나타내고 있지만, 동시에 본인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모델과 제품들을 '국가적 비상사태'라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폭력 아래에 배치하여 오묘한 대조를 의도한 작품이다.
그러나 사진은 패션 광고에서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진압하며 치마 속에 손을 넣는 불필요한 에로틱 장면을 묘사해 논란이 됐다. 더구나 2001년 9.11 테러 5주년과 맞물리며 미국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마이젤의 사진은 패션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사회·문화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보그 이탈리아 2008년 7월 ‘Black Issue’ >
2008년 7월, 이탈리아 보그지에서 흑인 모델과 흑인 여성만을 실어 'Black Issue'를 발간하며, 스티븐 마이젤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사회와 패션 업계의 인종차별에 반하는 그들만의 사회운동을 일으켰다. 이 파동은 패션계에서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개념에 도전하는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그들이 끼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후 파리, 밀라노, 혹은 뉴욕의 런웨이에서 흑인 모델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 영향력은 분명 있었지만, 지속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7월호 보그 이탈리아는 패션 매거진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이벤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ditor / 이정민(@jeongmlnl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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