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영감의 순간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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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애니메이션은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의 창립자인 미야자키 하야오(Miyazaki Hayao)라는 거장이 없었다면 명맥을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카하타 이사오(Takahata Isao), 스즈키 토시오(Suzuki Toshio)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공동으로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등의 걸작을 만들며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환상적인 영상미 안에 환경과 사회 문제와 같은 무겁고 현실적인 주제들을 적절히 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 세계 수많은 지브리 팬들에게 감동을 준 애니메이션의 탄생 이면에는 애니메이션들의 초기 컨셉에 많은 영향을 끼친 요소들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원작부터 일본의 전통 신앙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영감을 준 순간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일본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흥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Diana Wynne Jones)’의 1986년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쟁, 광기, 노화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만들어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영화 내 전쟁의 참상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만 봐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떠한 메시지를 넣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다.

원작 소설은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작에서 모티브만 따온 수준이다. 원작과 영화의 전체적인 틀만 비슷할 뿐 영화를 본 후 원작을 읽게 되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를 만들기 전 직접 원작자와 대담을 가졌고 당시 다이에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했다는 일화와 함께 이후 애니메이션을 극찬한 것을 보면 원작과 영화 간에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02.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섯 번째 영화이자 첫 상업적 성공을 이룬 <마녀 배달부 키키>는 ‘카도노 에이코(Eiko Kadono)’가 1985년에 발표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작의 서문에 담겨있던 20세기 후반 일본 소녀들이 품은 희망, 정신적인 독립과 의존 사이의 간극에서 영감을 받아 해당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춘을 소재로 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주인공들이 고난을 이겨내 경제적 독립을 이뤄내고 궁극적으로 정신적 독립까지 쟁취하는 방향으로 구성된다. 경제적 독립이 곧 정신적 독립과 동일시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 사회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방식으로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어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은 이룩할 수 있지만 곧 이것이 정신적 독립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는 사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다노 에이코의 원작을 통해 현대 사회와의 간극을 보았고 이를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았을 때 이 시대의 가난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3. 이웃집 토토로 (1988)
스튜디오 지브리는 비극적인 전쟁 애니메이션인 <반딧불이의 묘>와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진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같은 해인 1988년에 개봉을 했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병든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이주한 두 소녀가 집 근처 숲의 정령들과 함께 모험을 즐기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만의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고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며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하는 영감을 받다고 한다.

그 후 그가 일본의 ‘토토로 노 모리’ 숲 근처로 집을 옮겼고 숲 자체에 영감을 받아 <이웃집 토토로>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2018년 후지모토 시장과 함께 산책하면서 “이 풍경이 토토로를 낳았다. 이 풍경이 나에게 중요하고 내가 이 근처에 사는 이유입니다.”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자 하던 그의 의지가 반영된 영화라 볼 수 있다.


04. 원령공주 (1997)
애니메이션계의 걸작 <원령공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스펙터클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일본 영화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소외된 집단과 억압받는 소수자들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이웃집 토토로>와 함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깊게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원령공주>는 <이웃집 토토로>와 다르게 태초의 자연과 현대 사회 간의 풀기 힘든 갈등의 시작을 묘사한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령공주>를 제작할 당시 일본의 ‘야쿠시마 섬’과 만화가 ‘모로호시 다이지로(Daijiro Morohoshi)’의 만화인 ‘Mud Men(이하 ’머드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야쿠시마 섬은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섬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원령공주>를 본 후 야쿠시마 섬을 방문하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전체적인 배경이 야쿠시마 섬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또 다른 영감의 소재인 만화 ‘머드맨’은 만화의 배경이 되는 파푸아뉴기니의 Asaro Mudmen(이하’ 아사로 머드맨’) 부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만화는 파푸아뉴기니를 배경으로 독특한 가면과 보디 페인팅으로 유명한 ‘Asaro Mudmen’ 부족의 가상 부족원들이 등장하며 전개가 된다. 만화 ‘머드맨’과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장면을 비교해 보면 지브리 캐릭터와 구도 등이 ‘머드맨’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5.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역대 1위 흥행 기록을 보유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동양적인 마법과 환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찬 애니메이션이자 환경파괴와 탐욕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전통 민속에 대한 언급과 함께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해당 애니메이션은 서양 판타지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의 동양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각본을 구성할 때 일본 전통 신앙인 가미카쿠시(神隱し)에 영감을 받아 이를 잘 녹여내 동양 판타지의 정수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완성시켰다. 가미카쿠시는 인간이 이계를 방문하거나 이계의 존재인 신이 나 요괴 등에 이끌려 행방불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민간 전설은 주로 아이가 실종된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실종된 자녀들이 신들이 데려갔다고 믿는 것이 자식을 잃은 슬프고 어두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일본 민속 신앙을 통해 지금의 세대는 민간 전설 등을 믿지 않지만, 영혼은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것에는 일종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친구 ‘오쿠다 세이지’의 딸 ‘오쿠다 치아키’를 보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들을 애니메이션 속 소재로 삼는 것으로 유명하며 주인공인 ‘치히로’는 오쿠다 세이지의 딸 오쿠다 치아키를, 치히로의 아버지는 오쿠다 세이지를 모델로 각각 삼았다고 한다.




Editor / 노세민(@vcationwithp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