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 아는 은밀한 술집”, <Speake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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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1921) 中
일을 끝내고 마시는 한 잔의 술은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쾌락이다. 아니, 아마 시대를 뛰어넘어, 전 인류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쾌락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유명한 <삼국지>에서 조차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너 한잔, 나 한잔.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지친 하루는 끝이 나고, 어느새 개운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에게 묻고 싶다. 국가가 술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난리가 나겠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기가 있었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은 술의 제조, 판매를 금지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피크이지(Speakeasy)’ 문화가 꽃피우게 된다.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시지만, 아무도 모르는>
스피크이지 문화는 금주법 시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 전성기는 단연 1920년대 금주법 시기였다. 금주법이 시행되며, 거리의 술집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 시절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무면허 바, 바로 스피크이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법 집행 기관에 들키지 않도록 비밀번호를 낮게 말하는 (speakeasies) 것에서 비롯된 이름의 기원은 그 시절 흥미로운 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스피크이지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형태에 있다. 재즈 밴드가 있는 멋진 클럽부터 낡은 창고, 지하실까지. 그 모습은 정말 다양했다. 술을 마시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은밀한 장소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은밀함은 형태에 그치지 않았다. 일부 스피크이지는 비밀번호와 함께 회원 카드를 발급해 출입객을 식별하는 데 사용했다. 또한 가벽 뒤에 존재하는 비밀 와인 저장고, 버튼을 누르면 술병을 지하실로 떨어트리는 장치 등. 술을 마시기 위한 그들의 집념은 실로 대단했다.


<사교의 장, 그리고 성 소주자들의 허브>
스피크이지는 금주법 시대의 짧은 역사로만 남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음주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금주법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흔치 않았고, 남성과 어울려 술을 즐기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스피크이지는 달랐다. 여성을 위한 파우더룸까지 갖추며 여성 고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했고, 곧 스피크이지는 사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금주법이 막을 내린 후에도 이 변화는 지속되어,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는 밤 문화의 초석이 되었다.


사교의 장이 되었던 스피크이지는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로도 기능했다. 다양한 바 가운데, 그 중심에는 워싱턴 D.C의 KRAZY KAT KLUB이 있었다. 만화에 등장하는 성별 불명의 고양이 캐릭터 <Krazy Kat>에서 따온 이름처럼, 이 공간 역시 동성애자와 다성애자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워싱턴 D.C 정부 인쇄소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젭 알렉산더의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기 속 묘사된 그는 게이 남성들에게 ‘흥분할 수 있는 곳’으로 Krazy Kat Klub을 안내한다. 예술가와 음악가, 교수들이 모이는 동시에 게이 커뮤니티를 잇는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 Krazy Kat Klub은 스피크이지 문화의 또 다른 변주로 기억되고 있다.


<서울의 스피크이지>
현대의 스피크이지는 금주법이 폐지된 후 사라진 과거의 문화를 추억한다. 더 이상 단속하는 경찰은 없지만, 비밀스러운 입구와 그들만의 은밀한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의 재해석된 스피크이지 바를 통해 우리는 1920년대 미국의 은밀한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1. The Storage Room(더스토리지룸 성수)
성수동 연무장7길 8-1, 지하 1층
더 치즈 살롱 뒤 편에 숨겨진 칵테일 바, 더스토리지룸. 1920년대 스피크이지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그 시절 문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와인, 위스키 등 주종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큰 장점. 지하의 비밀 통로를 통해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2. 신데렐라 성수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7가길 3-4 1층
이름과 알맞게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숨어 있는 바, 신데렐라. 장인의 공방을 가장한 이 숨겨진 공간은 스피크이지로 제격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은 숨겨진 문을 찾는 일만으로도 이미 흥미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구두 모양 홀더에 제공되는 시그니처 칵테일과 뇨끼, 수제화 거리에서 재해석한 스피크이지를 즐겨보자.


<숨겨진 문을 열면 만나는 경험>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1921) 중
숨겨진 문을 찾아 들어서면, 단순한 음주 이상의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잔을 기울이며 느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소소한 삶의 즐거움까지. 금주법 시대 술을 향한 애착과 상상력이 만들어 낸 스피크이지. 단순히 은밀한 술집이 아닌, 그 시절 삶의 애환을 담아낸 공간이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당신만의 조용한 순간을 스피크이지와 함께 만들어보자.
Editor / 권혁주(@junyakimchi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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