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상에서 탄생한 공포의 존재, 슬렌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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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디지털 세상. 이제는 현실과의 구분을 점차 흐려가는 이곳에선 다양한 상상과 기억의 왜곡 등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사회적 현상이 되어가곤 한다. 가상의 세상이 만들어낸 존재. 현실에 있어서는 안될 도시의 ‘괴물’들은 역사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괴담, 슬렌더맨(Slender Man)은 21세기 초 미국 인터넷 문화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현대 도시전설로, 그 기원과 확산, 그리고 사회적 파장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슬렌더맨의 최초 등장은 2009년 6월, 미국의 유머 및 포토샵 커뮤니티 ‘섬씽 오풀(Something Awful)’에서 개최된 ‘초자연적 존재 합성 사진 콘테스트’에서 비롯된다.
당시 참가자였던 에릭 크누드센(Eric Knudsen, 필명 Victor Surge)이 두 장의 흑백 사진에 키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마른, 얼굴에 이목구비가 없는 남성의 형상을 합성해 올렸고, 여기에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 사진과 설명은 ‘슬렌더맨’이라는 이름과 함께 빠르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며, 곧이어 다양한 이용자들이 슬렌더맨 신화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집단적 창작 과정은 슬렌더맨을 단순한 이미지에서 복합적인 신화적 존재로 발전시켰다.



<슬렌더맨의 외형적 특징>
슬렌더맨의 외형적 특징은 대체로 일관되게 묘사된다. 그는 키가 2~3미터에 달할 정도로 크고, 몸은 비정상적으로 마르며, 얼굴에는 눈, 코, 입 등 이목구비가 전혀 없다. 항상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등 뒤로 촉수처럼 보이는 검은 팔이 여러 개 뻗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슬렌더맨은 말이 없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인물에게 불안과 공포, 환각, 망상 등 심리적 혼란을 유발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요 타깃은 어린이나 청소년으로, 이들을 유괴하거나 실종시키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또한 순간이동, 세뇌, 기억 조작 등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도 그려진다.


<현실로 넘어온 괴물>
슬렌더맨은 단순한 인터넷 괴담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2014년 미국 위스콘신주 와우케샤에서 두 12세 소녀가 동급생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가해 소녀들은 슬렌더맨에게 충성을 바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슬렌더맨 신화가 현실에 미친 극단적 영향으로, 인터넷 괴담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언론과 사회는 인터넷 기반 괴담이 미성년자 등 취약 계층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집단 창작의 결과물, 슬렌더맨>
슬렌더맨 신화의 발전 과정은 인터넷 문화의 집단 창작 특성을 잘 보여준다. 크리피파스타(Creepypasta) 사이트와 각종 포럼, 유튜브, 웹툰 등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이 쏟아졌으며, 대표적으로 2012년 공개된 무료 공포 게임 ‘Slender: The Eight Pages’는 슬렌더맨 신화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어두운 숲에서 슬렌더맨을 피해 8장의 쪽지를 모아야 하며, 단순한 구조와 강렬한 공포감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Slender: The Arrival’ 등 후속작과 다양한 패러디, 팬 영상, 소설, 영화 등으로 슬렌더맨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2018년에는 슬렌더맨을 소재로 한 동명의 공포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슬렌더맨을 소재로 한 동명의 공포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실뱅 화이트 감독이 연출하고 데이비드 버크가 각본을 맡았으며, 네 명의 고등학생 소녀들이 호기심에 슬렌더맨을 소환하는 의식을 행한 뒤, 친구 중 한 명이 실종되면서 초자연적 존재의 공포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슬렌더맨의 외형적 공포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겪는 환각과 심리적 불안 등 정신적 공포를 강조하며, 슬렌더맨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존재로 묘사했다. 앞서 언급했던 2014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발생한 슬렌더맨 관련 범죄 역시 이 영화와 맞물려 있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고, 일부 극장에서는 상영이 제한되기도 했다.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혹평을 받았으나, 인터넷 괴담이 대중문화로 확장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일까, 위험한 공포의 허영일까>
슬렌더맨의 역사적 의의는 전통적 민속 괴물과 달리, 디지털 시대의 집단적 상상력과 인터넷 밈 문화가 결합해 탄생한 신화적 존재라는 점에 있다. 과거의 도시전설이나 괴담이 구전과 지역사회 내에서 전파되었다면, 슬렌더맨은 인터넷이라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창작, 확산,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슬렌더맨은 현대인의 불안, 외로움, 집단적 공포심 등 사회적 심리를 반영하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슬렌더맨 신화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민속학 연구 대상으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인터넷 문화와 대중심리, 그리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Editor / 김수용(@_fu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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