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강령술사가 선보이는 지옥에서 온 런웨이

딜라라 핀디코글루

패션이 과거를 탐하는 방식은 집요하다. 트렌드가 20년 주기로 회귀한다는 사실은 이미 통계를 넘어 법칙이 되었고, 패션 애호가들은 유명 빈티지 샵을 방문하기 위해 기꺼이 국경을 넘는다. 어디 그뿐인가. 과거의 직조 방식을 계승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가 하면, 때론 디자이너가 직접 공정 속으로 뛰어들어 브랜드의 철학적 토양으로 다져두기도 한다. 물론 조형적인 면에서도 적잖은 도움을 받는다.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실루엣을 오마주 하거나, 때론 박물관의 유물처럼 원형 그대로를 복원해 내는 데 사활을 거는 경우도 있으니까.


<지옥에서 온 런웨이>

그중에서도 터키 출신의 디자이너, '딜라라 핀디코글루(Dilara Fındıkoğlu)'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단연 독보적이다. 당신 역시 그녀의 런웨이를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알아채게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이 단순히 오래된 미학을 재해석하는데 그치는 게 아닌 거의 소환하는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핏빛에 가까운 실크, 기괴하게 조여진 허리 라인, 그리고 종교적 금기를 가볍게 넘나드는 발칙한 발상.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유령이 되살아난 듯한 창백한 안색의 모델들은 하나 같이 무엇에 빙의된 것만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움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불안정한, 정제되고 반듯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뭔가 단단히 어긋난 듯이.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그녀만의 스타일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개성이자, 도전이다. 안정과 조화로 인식된 평범한 아름다움은 그녀에겐 중요치 않다. 오히려 긴장과 균열을 조장하며 관객의 시선을 훔치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니까.

Dilara Fındıkoğlu 2023 AW / ⓒshowstudio


<스파게티 호러 매니아>

핀디코글루의 유년 시절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이스탄불 출신인 그녀는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 속에서 길러졌다. 여성에게 보다 엄격하고, 만사에 진취적이기보단 폐쇄적이며, 독립의 권유 대신 보호를 강요받았다. 이런 삶은 그녀에겐 늘 지루했다. 그래서 붙잡은 게 판타지 소설이었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처럼 변화무쌍하고 모험이 반복되는 스토리는 현실도피용으론 제격이었으니.

Dilara Fındıkoğlu 2017 AW / ⓒsleek-mag

판타지로 시작한 도피의 도착지는 호러물. 그녀는 자신의 세계관에 큰 영감을 준 영화로 '루게로 데오다토(Ruggero Deodato)' 감독의 [카니발 홀로코스트, Cannibal Holocaust(1980)]를 꼽는다. 남아메리카 정글에서 식인과 관련된 다큐를 촬영하던 네 명의 스테프가 실종된 이후, 그들이 남긴 필름이 발견되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다. 극단적인 폭력성과 사실적인 연출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호러씬에선 악명 높은 영화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상영 당시 높은 수위를 견디지 못하고 관객들이 뛰쳐나오는 소동도 있었다고.

ⓒimdb

또한 그녀는 이탈리아 호러의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다리오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은 ‘지알로’ 계열에 속하는데, 이는 이탈리아 범죄 소설에서 유래한 장르로, 정체불명의 살인자를 중심으로 한 구조와 함께 강렬한 색채와 감각적인 이미지, 그리고 폭력과 관능적 요소가 결합된 스타일이 특징이다.

이처럼 확고하면서도 독특한 그녀의 취향은 그녀의 런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018년 SS 컬렉션은 일부 기독교 단체로부터 ‘사탄 숭배’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진짜 사탄 숭배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그저 판타지에서 시작해 호러를 거쳐,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마법과 연금술, 오컬트에 매료된 디자이너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근원엔 앞서 말했듯 종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을 속박해 오던 오랜 금기들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패션을 택한 것이다.


<비밀스러운 존재들>

그래서일까. 핀디코글루의 미학적 토대는 고딕풍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 기반은 서양의 고딕 양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대에 와선 오컬트 작품들 속 주인공들의 서사와 맞물리며 특별한 미감으로 굳어졌다. 블랙을 기반으로 한 무채색의 팔레트와 화려한 레이스, 부드러운 벨벳, 견고한 가죽들이 일으키는 마찰이 이토록 우아하게 변주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에 더해 곳곳에 숨어있는 오컬트적 상징은 그녀의 유년시절을 지배했던 문화들과 연관이 깊다. 어쩌면 주류 집단이 ’미신‘이라며 배척했던 비주류 문화이 보법이 그녀의 타고난 반항 정신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종교적 상징물을 거침없이 가져다 쓰는 대담함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단순히 그 모양들이 아름다워서 사용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일이 아닌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과거를 ‘스타일’로서 소비하는 동안, 딜라라는 그것을 ‘사건’으로 복원한다. 다시 말해 이전의 형식을 참고 자료로서 소모하는 것이 아닌,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서사로 다룬다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단순히 과거를 인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순간을 다시 작동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이미 끝났다고 여겨진 의미들이 현재의 몸 위에서 다시 살아나며, 서로 다른 시간대가 한순간에 겹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핀티코글루의 옷은 완결된 형태라기 보단, 오히려 열린 결말에 가깝다.

Dilara Fındıkoğlu 2023 AW, 잔의 칼(Joan’s Knives) / ⓒmedium

2023 AW의 피날레 의상이자, 그녀의 철학을 패션계에 전파한 결정적인 작업인 [잔의 칼(Joan’s Knives)]에 주목하자. 여성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신체를 억압하는 장치였던 블랙 코르셋, 그리고 그 표면엔 빅토리아 시대의 은 나이프가 빈틈없이 붙어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견고한 갑옷처럼 보인다. 이는 백년전쟁의 흐름 속에서 프랑스의 전세를 전환시킨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결국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한 '잔 다르크(Joan of Arc)'를 표현한 작품이다. 억압과 보호, 순결과 폭력이라는 상반된 기호들이 한 몸에 얽히며, 시대적 영웅이자 동시에 가여운 소녀였던 역사적 인물을 동시대 런웨이 위에 다시금 등장시킨 것이다.

[순수의 감옥(Cage of Innocence)]이란 제목으로 진행된 2026 SS에서 화제를 모았던 ‘으깨어진 체리 드레스’ 역시 순수와 해방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체의 모습을 담았다. 누드톤 코르셋 곳곳에 달라붙은 새빨간 체리, 그리고 표면을 물들이는 검붉은 색 과즙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탈출을 갈망하는 소녀의 본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연약함과 강인함, 정교함과 날 것, 부드러움과 잔인함, 이성과 본능. 이제 이 드레스는 단순한 의복이 아닌 입체적인 이야기들을 품은 오브제로 거듭난다.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

이처럼 핀터코글루의 작품을 논할 때 코르셋은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오랜 시간을 통제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이 속옷은, 그녀의 손을 거쳐, 여성의 몸을 숨김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모든 통제에 맞서는 일종의 무기로 전환된다. 런웨이 위에서 코르셋을 입고 워킹을 하는 모델들은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전투에 나갈 준비가 돼있는 전사들처럼, 당당하고 씩씩하다. 자신의 통제를 외부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상태. 진정한 여성의 해방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Dilara Fındıkoğlu 2024 AW / ⓒmodels

이처럼 패션이 오직 미에 의지하지 않는 순간, 그저 절대미만 추구하며 나태해지지 않는 순간, 그 순간 패션은 비로소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확장된다. 감각을 넘어 의미를 생산하고, 표면을 넘어 구조를 드러내는 지점에서 패션은 예술이라는 이름에 더욱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다루는 느린 태도>

그녀의 이런 고집은 ’느린 생산’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단추 하나, 비즈 장식 하나까지 장인의 손길이 닿아 있는 그녀의 컬렉션은 패스트 패션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그녀가 버려진 빈티지 원단을 해체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거나, 이젠 잊혀져 가는 전통 테일러링 기법을 복원하는 데 집착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한 제작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가 시간을 다루는 태도까지 드러낸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흐름에 저항하며, 하나의 옷에 오롯이 투자하고, 그 옷에 더 오래 머물게 만드는 힘. 그녀는 시대에 구애 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받는 옷을 만들 작정인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드레스>

원래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핀디코글루의 굳건한 신념이 농축된 그녀의 작품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굵직한 서사를 바탕으로, 비밀스런 존재들이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섹슈얼리티한 실루엣과 고급스러운 제작 방식까지 모두 담긴 한 피스의 가치는 가격으로 섣불리 측정될 수 없을 테니.

그녀의 작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뚜렷하다. 그저 한 순간 반짝임을 위해 존재하는 옷이 아닌,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나아가 어떤 의미도 담지 못한 채 껍데기로 낡아가는 옷이 아닌, 기억되고 해석되는 이미지.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트렌드가 아닌, 반복되며 호출되는 소중한 장면. 딜라라 핀디코글루의 런웨이는 그렇게, 패션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임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Editor /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