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 BLUE DOT(페일블루닷)

PALE BLUE DOT 

[ISSUE No.0] PALE BLUE DOT(페일블루닷)

화성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주택가 골목골목 사이에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즈넉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향들이 어우러진 매력을 가지고 있는 페일블루닷 라보라토리는 다양하고 많은 샵들 중에서 단연 주목할 수 있는 고유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각지의 여행지의 매력적인 향을 다양한 시도와 접목을 통해 향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 ‘실험실(laboratory)’ 컨셉으로 조향사가 여행을 다니며 느끼는 순간들을 향으로서 느껴보며 편안하게 향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페일블루닷 라보라토리에 대해서 소개 부탁한다.

A. 일상과 여행의 순간을 향으로 기록하는 라이프 프레그런스 브랜드 ‘페일블루닷’의 첫 번째 오프라인 공간입니다. 비주얼 컨셉은 여행지의 매력적인 향을 전달해 주는 ‘향기 우체국’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공간이 ‘라보라토리’의 컨셉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브랜드에서 향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접목을 통해 향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기 위해서 실험실의 컨셉으로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Q. 페일블루닷 라보라토리가 오픈한 지 2년이 채 얼마 남지 않았다. 조향사로서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A.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는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난 이후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을 때예요. 24살 첫 해외여행으로 도쿄를 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꿈이 패션 매거진 피처 에디터였는데, 보이는 게 중요하다 보니 물질적인 것들을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여행을 다녀온 후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여행 속 장면들이 생각나고 꿈에도 꾸준히 나타날 정도로 계속 일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죠. 여행의 잔상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남았던 이유는 바로 난생처음 맡게 된 이국적인 공간의 냄새 때문이라는 걸 말이에요. 24살까지 한국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냄새밖에 경험해 볼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난생처음 가본 외국에서 느껴진 이국적인 국제공항의 냄새, 다른 나라의 사람 냄새, 풍경의 냄새가 신선했던 거죠. 그때 인생의 가치관을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소중한 것들은 손에 쥐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그게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되었고요.

Q. 여러 위치 중 행궁동을 택한 이유

A. 서울에서 무언가를 하면 영향력도 더 크다는 걸 알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더라도 브랜드의 가치관을 잘 전달하자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가장 편한 공간에서 브랜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오게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빅 브랜드 향수에 지친 요즘 니치 향수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페일블루닷은 개개인의 취향을 담은 ‘올팩션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A. 조향사들이 사용하는 재료 격의 향료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다면 취향에 맞는 향을 찾기가 더 쉬워져요. 조향을 할 때 재료 격으로 사용하는 향료들을 ‘단일 향료’, ‘단품 향료’라고 불러요. 올팩션 클래스는 이러한 단일 향료를 시향하고 스스로 취향에 맞는 향료를 기록하고 분석해 보는 클래스예요.

Q. 조향사로서 향을 구분하고 판별하는 ‘인풋(수용)’과 표출하는 ‘아웃풋(표현)’의 능력이 중요하다. 창의적인 일인 만큼, 다양한 감각과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어떠한 자질이 필요한가

A. 조향사에게 필요한 능력은 세 가지가 있다고 봐요. 첫 번째는 당연히 향을 인지하고 구별하는 후각 능력이고 두 번째는 어떤 향을 조향할 것인지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는 내가 조향한 향을 표현할 줄 아는 표현력입니다. 후각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향에 대한 세세한 구별과 분석을 통해 더 좋은 조향을 하기 위해서예요.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조향은 주제에 맞는 향을 창작하는 것을 뜻해요. 향에는 정답이 없어요. 저는 좋은 향이란 ‘주제를 잘 표현한 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상상력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조향은 기본적으로 향을 ‘창작’해내는 일입니다. 엔지니어적인 테크닉도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창작의 영역에 있는 일이에요. 어떤 향을 만들 것 인지는 온전히 조향사의 상상력에서 퍼져나가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표현력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향사는 스스로가 조향한 향을 타인에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 하나가 있어요. 조향은 예술과 과학의 교집합에 있는 영역이에요. 그렇다 보니 창작에 대한 이해와 존중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유기화학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해요.

Q. 신체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각 오감 중 하나인 후각으로 느끼는 향에 대한 설명과 좋아하는 향을 꼽자면

A. 후각은 물리적인 감각기관이에요. 코 가까이에 향을 가져다 대지 않으면 이 향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어요. 유추할 뿐이죠. 그런데 향을 맡게 되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후각으로 느끼는 향은 물리적이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공간들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성당이 있으면 초를 하나씩 키고 와요. 뭔가 발자취를 남긴다는 의미로 말이죠. 목재로 가득 둘러싸인 성당의 느낌이나 오래된 도서관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표현하기 좋은 balsam 타입의 향이나 woody 타입의 향을 선호해요. 특정한 향료로 이야기를 하자면 시더우드(Cedarwood)나 가이악우드(Gaiacwood).

Q. 향을 접하는 일이다 보니, 오감 중 한 부분인 후각에도 육체적 피로감이 쌓일 수 있다. 조향사만의 후각적인 피로 해소법 추천을 하자면

A. 일단 후각에 집중하지 않게 만들어요. 향이라는 건 후각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인지하는 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생각을 향으로 집중시키지 않기 위해서 다른 감각기관들을 주로 사용하게끔 만들어요. 음악을 듣는다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합니다.

Q. 스스로의 원하는 향을 고르는데 정말 자신 없는 사람이 있다면, 페일블루닷만의 향 중 몇 가지 정도의 추천 부탁한다.

A. 누구에게나 기분이 좋은 자연적인 느낌이 깃들어 있는 ‘비자림’과 기분전환을 위해 조향된 향인 ‘굿 애프터 눈’을 추천드려볼까 해요. ‘비자림’은 비온 다음날 제주도 평대리에 위치한 비자나무숲을 여행하고 조향한 향이에요. 산뜻하면서도 숲과 나무의 자연적인 느낌이 많이 돋보이는 향이에요. ‘굿 애프터 눈’은 시트러스 그린 플로럴 타입의 향인데 ‘졸린 오후를 향으로 깨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 조향하게 된 향이에요.

Q. 인테리어, 음악 그리고 오브제들까지 페일블루닷은 향기뿐만 아니라 공간을 디자인하는 느낌을 받는다. 페일블루닷 라보라토리의 공간은 어떠한가

A. 오프라인 공간은 실험실의 느낌이 나게끔 주로 메탈릭 한 소재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요. 비이커와 플라스크 등은 직접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브랜드의 향후 활동이나 출시하는 향들의 정보를 알 수 있게끔 저 나름대로 코난처럼 몰래 힌트를 숨겨놔요. 다음에 출시할 향은 제주도의 비 오는 여름날의 오름 분위기를 표현한 향 ’OREUM’인데, 매장에 오름 사진이 있어요. 원래 브랜드의 비주얼 컨셉인 ‘향기 우체국’임을 알 수 있게끔 시향을 주로 담당하는 테이블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우체국 책상을 사용하고 있어요.

Q. 실험실의 콘셉트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대표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인 ‘르 라보’ 또한 프랑스어로 ‘연구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혹시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는가

A. 르 라보는 물론 좋아하는 브랜드이지만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르 라보는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따온 것처럼 ‘원재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조향사의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예요. 정작 영감을 받은 건 비주얼적인 면보다는 그들이 주제를 풀어내는 태도에 대한 진정성이에요. 원재료에 대한 존중, 고객이 매장에서 원재료의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것, 진정성 있는 태도에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Q. 페일블루닷 라보라토리의 'A Journey in Search of a Good scent, 좋은 향기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의 슬로건을 가지고 향을 조향하고 있다. 페일블루닷의 향을 소개하자면

A. 페일블루닷은 총 세 가지의 시리즈를 기준으로 모든 향이 조향되고 있어요. 세 가지의 시리즈는 각기 다른 주제를 표현하는데, 여행의 순간을 표현하는 EARTH 시리즈, 일상의 풍경을 기록하는 DOT 시리즈, 특정 공간의 정취를 표현한 ROOM 시리즈가 있어요.

EARTH 시리즈는 조향사인 제가 직접 국내외의 여행지를 방문하면서 보고 겪고 느낀 순간을 향으로 표현해요. DOT 시리즈는 일상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상상력이 더 가미가 된 시리즈예요. 일상의 특정 순간과 인물의 인상을 중심으로 향이 전개되죠. ROOM 시리즈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의 생각이 반영되었죠. ‘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의 느낌이 향의 주제가 됩니다.

Q. 조향사(페일블루닷)에게는 여행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조향을 위한 여행 스타일은 어떤 편인가

A. 보통 여행은 혼자 가는 편이고 타이트한 스케줄을 잡지 않아요. 한 장소에 일주일 내내 매일 간 적도 있어요. 특히 루브르 1848은 루브르라는 공간을 매 순간마다 어떻게 내가 이해하고 느낄지, 그리고 3만 5천여 점이 넘는 박물관 속 작품 중에서 어떤 공간에 끌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려 2년 동안 아홉 번을 방문했어요. 가본 곳을 지속적으로 가면서 공간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만들고 인상을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여행을 가요.

감각은 소실되기 쉽기 때문에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형태로 기록을 하느냐는 본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항상 필름 카메라로 여행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이 맘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찍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필름 카메라는 절대로 다시 그 순간을 돌이킬 수 없거든요. 마치 여행의 순간처럼 말이에요.

Q. 시각과 후각의 기록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페일블루닷의 청각적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한다.

A. 청각적 프로젝트인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의 곡 선정 기준은 ‘여행의 순간에서 동행하기 좋은 음악’을 제안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주로 여행의 순간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음악을 제안해요.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우스게일의 곡들을 좋아해요. 아우스게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Q. 첫 번째 오프라인 공간이라고 소개한 글을 보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 중인가

A. 두 번째 공간은 여행지의 매력적인 향을 전달해 주는 ‘향기 우체국’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 될 거예요. 그래서 공간도 지금보다는 훨씬 크게 필요해요.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는 하지만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한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Q. 다른 브랜드와 차별점을 꼽는다면

A.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제 인생의 가치관(이는 페일블루닷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해나간 과정이 매우 길고 견고했고 오너인 저의 마음은 아주 단단해졌어요. 브랜드 활동을 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오너 마인드가 더 강한 차별점이자 강점인 것 같아요.

Q. 페일블루닷만의 슬로건이나 운영방식 등 스토리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지향점과 변화를 고민해 본게 있다면

A. 페일블루닷의 존재 이유는 향으로써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보내기 위한 매개체의 형태로 향을 조향해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과정에서 같이 출발하고 동행하는 브랜드이고 싶어요. 그래서 여행지에서 머무르는 숙소나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어매니티 향 제품들, 다양한 편의 용품들을 출시하기 위해 많은 구상을 하고 있어요. 오프라인 스토어에서는 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성껏 설명해 드릴 수 있지만 물리적인 거리의 제약이나 시간의 한계로 인해서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향의 비하인드스토리나, 여행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하기에는 현재의 종이 리플렛 형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디오 도슨트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어요. 리플렛 뒤에 QR코드를 도입해 각각의 향에 대한 여행의 기록과 비하인드스토리를 녹음해 들을 수 있도록 마련하는 거죠. 오디오 도슨트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하는 주제가 ‘여행의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국내에서 최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페일블루닷에게 'FAKE'란?

A. 이 부분은 모든 인터뷰 질문을 통틀어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질문인 것 같아요. 정말 지난밤에도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입장에서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고민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심플했어요. 페일블루닷, 그리고 저만의 fake는 ‘진정성’이라는 것. 뭔가 외형적으로 멋지게 드러나거나 규모가 거창하지 않지만 향과 브랜드를 운영하고 소개하는 데 있어서의 진실된 태도,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해 볼까 해요. 오프라인 스토어를 구성할 때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한 건 딱 하나였어요. 정성껏 설명하는 일. 어떤 주제와 의도를 가지고 조향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건 조향사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재 많은 오프라인 매장들, 그리고 브랜드들은 이런 향에 대한 설명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요. 특히 오프라인 공간들은 대부분 세일즈를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향에 대한 세세한 설명보다는 ‘구매를 하기 위한’ 행동을 주로 해요. 그런데 페일블루닷에서는 그런 일을 기꺼이 해요. 향 하나를 만들더라도 조향사인 제가 직접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받아 향을 조향해 선보여요. 그래서 향 하나가 출시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기도 해요. 기꺼이 수고스럽지만 브랜드의 가치관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이런 면에서 페일블루닷의 fake는 진정성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