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Si Young(박시영)
Park Si Young
2006년, 스튜디오 ‘빛나는’ 설립 이후 영화 <짝패>를 시작으로 <하녀>, <살인자의 기억법>, <관상>, <추격자>,<광해>, <아저씨>, <검은 사제들>,<동주>, <곡성>, <남산의 부장들>, <노량>, <세계의 주인>, 그리고 <왕과 사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박시영은 상업과 독립, 예술 영화의 경계를 전방위로 가로지르며 수많은 한국 영화의 포스터를 제작해 왔다.
업계 최고. 사람들이 포스터 디자이너 박시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그는 일등이라면 으레 풍기는 기운과는 묘하게 거리가 있었다. 최고들이 마땅히 지니고 있을 ‘빈틈없고 예민한’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는 명함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웃음소리는 호방했고, 말은 빨랐으며, 문장도 거칠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누군가에겐 일등이라는 기적적인 위치가 당연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빛나는 스튜디오는 안팎에서 언제나 일등이었고, 적어도 내가 그날 마주한 박시영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쭉 그러할 것이다.

Q. 박시영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을 운영하고 있는 포스터 디자이너 박시영이라고 하고요. 그동안 많은 분이 기억해 주시는 상업 영화들부터 작은 규모의 독립 영화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외국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의 키아트를 작업해 왔죠.
Q. 명실상부 업계 최고의 키아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박시영에게 ‘업계 최고’라는 수식어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A. 음, 너무 당연한 거? 이게 좀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겠는데, 사실 저한테는 그렇게 특별한 느낌은 아니에요(웃음). 처음 일을 시작했던 스물아홉 살에 <짝패> 키아트를 만들고 나서 그때 이후로 항상 업계 탑 프로젝트들만 들어왔으니까요. 단 한 번도, 단 1분도 업계 최고에서 내려온 적이 없어요. 흐흐흐.

Q. 최근 스튜디오 ‘빛나는’에서 키아트를 제작했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A. 당연히 좋죠. '천만'이라는 숫자는 솔직히 좀 경이로워요.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하는 기분마저 들죠. 보너스 좀 주려나(웃음).
Q. 정말이지, 반가운 천만이었다.
A. 관객들이 ‘한국적인 한국 영화’에 정말 목말랐던 것 같아요. 극장에 다 같이 모여 앉아 똑같은 타이밍에 웃고 울면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의 DNA 속에는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어쩔 수 없이 박혀 있나 봐요. 다들 "이제 한국 영화 망했다"라고 말해도, 막상 재밌는 영화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려오시잖아요. 요즘처럼 각자 알고리즘에 갇혀서 취향이 파편화된 시대에, 모두가 똑같은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천만은 정말 반갑고 고마운 천만이죠. 한국 영화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요.



Q. 박시영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A. 18살에 서울에서 가스 배달하고 있을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문화학교서울’이라는 시네마테크에 가스 배달을 가게 됐어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예술 영화들 들여와서 틀어주는 영화 마니아들의 공간이었죠. 그때는 지금처럼 해외 영화가 막 수입되고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유명한 영화 테이프 몰래 복사해서 보고 그러던 시절이죠. 정식 수입이나 저작권 개념도 없던 때니까. 가스 배달을 하러 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섰는데, 거기 있는 형, 누나들이 진짜 내가 살면서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인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동네 양아치 친구들, 술집 누나들, 웨이터 형들처럼 거친 사람들하고만 어울렸거든요. 그런데 거기엔 뭔가 있어 보이고,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아, 나도 저 세계에 속하고 싶다, 저 사람들이랑 같이 놀고 싶다!’ 사실 영화가 좋다기보다는 그 마음 때문에 거기에 계속 기웃거리게 된 거예요. 그냥 놀러 가서 인사하고 그러면서요.
Q. 첫 포스터를 ‘문화학교서울’에서 만들었다고.
A. 그게 어떤 거였냐면, 퀴어 관련 영화제 포스터였어요. 문화학교 서울에서 퀴어 영화제를 개최했거든요.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맡길 형편도 안되고, 하겠다는 사람도 없었죠. 워낙 규모가 작은 상영회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한번 해볼게요" 하고 나섰죠. 근데 제가 그때 다룰 줄 아는 게 '한글 97'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진짜로 거기 있는 '도형 그리기' 기능 있잖아요? 그걸로 도형 하나하나 그려가면서 포스터를 만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는데, 하하. 아무튼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Q. 류승완 감독의 <짝패>(2006)는 박시영이 처음으로 맡은 상업영화 포스터 프로젝트다. 어떤 인연으로 이 영화의 키아트를 담당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저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는 편이에요. 상업 영화 포스터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래요. 당시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는데, 게스트로 박찬욱, 김지윤, 봉준호, 류승완 감독님이 쭉 앉아 계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가서 그랬죠. “나중에 상업 영화 들어가시면 저한테 영화 하나만 주세요. 저 진짜 돈 벌고 싶거든요." 네 분 모두에게 말했는데, 그중 류승완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어요. 류 감독님도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치기보다 본인의 개인기와 현장 경험으로 길을 개척하신 분이잖아요. 아마 저를 보면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어보니 제 실력보다는, 맨몸으로 시작하는 친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Q. 한 인터뷰에서 대중적으로 처음 주목받은 작품으로 ‘2004년 제8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를 꼽은 바 있다.
A.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웃겨요. 그 당시 저는 좀 자유분방했으니까. 기존의 고리타분한 틀 같은 건 신경도 안 썼어요. 영화제라면 으레 가져야 할 '위엄' 같은 걸 좀 비웃어주고 싶었달까? B급 취향을 대놓고 드러내며 아주 반항적으로 만들었어요. 당연히 담당 공무원들은 뒤집어졌죠. 솔직히 말하면요, 저 그때 공무원분들 보라고 "한번 제대로 엿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디자인했거든요. 결국 계약 끝날 때 "너랑은 재계약은 없다" 소리까지 들었다니까. 그 대신에 주목을 많이 받긴 했었죠(웃음).
Q. 포스터 디자이너는 미리 영화를 볼 수 있는가.
A. 불가능하죠. 포스터 디자인 기획에 들어가는 시점이 대개 영화 촬영 단계랑 맞물려요. 보통 큰 영화는 6개월, 일반적인 영화들도 3~4개월 정도 촬영을 하거든요. 그 후에 후반 작업이 또 2개월 정도 걸리고요. 실질적으로 제가 포스터를 제작하는 기간도 금방 말한 촬영 기간과 동일해요. 오로지 시나리오만 읽고, 그 텍스트 안에서 이미지를 그려내야 하죠.
Q. 의외다. 개봉 전 영화를 미리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A. 그래서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단순히 디자인 기술만 있다면 쉽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도 포스터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감독의 성향은 물론이고 촬영 감독이나 미술감독의 스타일까지 파악해 낼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이거 진짜 보통 일이 아니에요(웃음).

Q. 포스터 제작을 위한 디자인 소스 확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A. 디자인 소스 확보를 위해서 영화 장면이나 스틸 컷을 받는 경우도 있고, 필요하다면 포스터를 위해 아예 새로 기획해서 촬영을 진행하기도 해요.
Q. 박시영은 영화의 상업적 성공과 포스터 디자인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
A. 솔직히 말씀드리면, 포스터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그 힘이 “관객의 주머니를 열고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어요. 정확한 데이터가 없거든요. 그런데 반대의 데이터는 확실해요. 포스터가 별로라서 관객이 영화를 안 보게 만들 수는 있다는 거죠. 포스터가 실망스러워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해요. 그러니까 “포스터가 상업적 성공을 견인하는 일등 공신이냐”라고 묻는다면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잘못 만든 포스터가 공들인 영화를 망칠 수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요.





Q. 좋은 포스터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A. 솔직히 말해서 좋은 포스터, 나쁜 포스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포스터는 다 나빠요. 그냥 나쁜 매체예요. 사회에 기여하는 게 별로 없거든요. 이게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재도 아니고요. 보기 싫더라도 보도록 만드는 게 포스터거든요. 그렇다 보니 디자인 자체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죠. 굉장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착해서 매력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좋은 포스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저한테 지금 매력 있는 포스터, 그러니까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포스터에 대한 기준은 있어요. 물론 매번 바뀌긴 하지만(웃음). 요즘에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들어가서 정성이 많이 느껴지는 포스터가 매력적인 것 같아요. 관객들이 봤을 때 "이게 꽤 잘,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거.
Q. 국내 영화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독립 영화 시장은 고사 직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A. 외부에서 보기엔 분명 안 좋은 상황이죠. 그런데 이걸 좀 엄밀하게 따져봐야 해요. 영화 자체가 황폐화되는 건지, 아니면 극장이 황폐화되는 건지 말이죠. 사실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만드는 편수를 생각하면 영화 자체의 수량은 비슷해요.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수요는 어마어마하고요. 단지 극장용 상업 영화를 안 찍는 것뿐이지, 그게 OTT로 넘어가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수익률 측면에서는 더 안정화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어쩌면 전통적인 포맷의 극장용 영화는 오페라나 발레처럼 서서히 몰락 중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항상 포맷을 바꿔왔어요. TV가 나오면 TV용 영화가 생겼고, DVD가 나오면 그에 맞게 변모했죠. 저는 지금이 몰락이나 끝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제가 일한 20년 동안 지금보다 더 심한 위기도 있었거든요. 분명히 어떤 다른 형태로서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Q 박시영이 제작한 영화 포스터가 대중들 사이에서 "포스터가 너무 예뻐서 속았다(포스터만큼 영화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이 나온다면, 그것은 성과인가 아니면 실책인가.
A. 스스로를 영화판에서 일하는 하나의 스태프로 볼건지, 아니면 창작을 하는 디자이너로 볼건지에 따라 답이 갈릴 것 같아요. 우선 디자인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입장으로 보자면 실패죠. 콘텐츠의 본질을 충실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왜곡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상업 영화판의 일원인 '영화인'으로서 본다면 제 역할을 아주 제대로 해낸 거죠. 결국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으니까. 그러니까 한 개인으로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부여된 역할로서는 성공한 셈입니다.
Q. 국내 디자인사를 통틀어서 가장 잘 만들어진 포스터가 있다면.
A.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잘 만든 포스터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88 서울 올림픽 포스터예요. 한국적인 투박함과 모던한 정교함이 그 선과 두께 배치 하나하나에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죠. 정말이지, 볼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포스터예요.

Q. 고립을 경계한다고 들었다.
A. 맞아요. 저는 제 인생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만 일궈졌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수많은 우연과 도움 덕분이었죠. 만약 그때 제가 혼자였다면, 아마 여전히 가스 배달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며 살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낯선 세계의 사람들이 저를 포용적으로 받아줬고, 그런 기회들이 겹치면서 제가 예상했던 인생의 경로가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운 좋게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저를 데려다준 셈이죠.
사실 저는 애들이 자라기엔 참 험한 환경과 가정사 속에서 컸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강했고, 누군가와 교류하는 걸 주저했죠. 어릴 때 트라우마 때문에 나쁜 짓도 해보고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적도 많고요. 그렇게 몇 번을 겪고 나니 깨닫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망가지는 건 불우한 개인사 때문이 아니라, 고립된 시간이 길어지는 순간 시작된다는 걸요. 그 경험적인 데이터가 저를 계속 밖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Q. AI의 등장에 박시영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또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는 시대에 디자이너의 '직관'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다들 AI가 등장하면서 "창작은 끝났다"는 식의 비관적인 주장을 많이 하죠. 저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는 AI를 파도에 비유하곤 해요. 파도가 밀려오는데 오지 말라고 한다고 안 오나요? 이미 우리는 대비도 없이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있어요. 이제는 이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할 것인지,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나갈 것인지 결정하는 개인의 판단만 남은 거죠. 결국 AI의 품질을 좌우하는 건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아는 나의 판단력이에요. 저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해요. 한 달 걸릴 프로젝트를 이틀 만에 끝낼 수 있다면 생산성이 엄청나게 올라가니까요.
예술계에는 AI라는 파도를 잘 타는 사람들만 남게 될 거고, 그들은 이전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리게 될 겁니다. 중요한 건 AI 시대든 아니든 내 실력을 키우는 본질은 똑같다는 거예요.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나고, 그 판단력은 실무 경험으로 쌓은 '직관'에서 나온다는 거죠.
Q. 지금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커리어를 막 쌓아가고 있을 디자이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딱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절대로 혼자 작업하지 말 것. 동료를 만드세요. 그 사람이 좋건 싫건, 나랑 맞건 안 맞건 상관없어요. 디자인이라는 건 결국 보여주는 일이고 피드백이 필수거든요. 나에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해줄 동기들이 있어야 실력이 빨리 늘어요. 그거 없으면 맨날 혼자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끝나요. 그냥 습작만 하게 되는 거죠. 내가 만든 건 무조건 공개하세요. 인스타든 어디든 올려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게 첫걸음이에요.
두 번째는 자신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는 거예요. 학교에서 배운 정제된 것들을 빨리 내려놔야 해요. 학습된 정체성에 갇혀서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을 미리 막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회계사나 변호사가 아니잖아요. 남들에게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인데, 본인도 새로운 걸 해야죠. 20대니까 가능한 일들이 있어요. 내가 하기 싫은 경험 두 번 해보고, 하고 싶은 거 세 번 해보면서 경험의 가짓수를 늘리세요.
마지막은, 절대 일터에서 징징대지 말 것. 징징대거나 울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상대는 나를 동등한 사회인이 아니라 아이로 봐요. 특히 20대는 더 그래요. 애처럼 보이는 순간 대화는 안 돼요. 내가 아무리 신입이고 오늘 누가 나한테 폭언을 했어도, 일하는 곳에선 울면 안 돼요. 안 그래도 세상은 20대를 어리다고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스스로 무시당할 빌미를 주면 안 되잖아요.
Fake Magazine Picks
웨스 앤더슨이 제작한 단편 영화 같은 광고 6선
YELLOW HIPPIES(옐로우 히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