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tocol Index(프로토콜 인덱스)
Protocol Index
기존의 성과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시 낯선 자리로 밀어 넣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그 용기는 조급함도 과장도 아닌 단지 '지금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읽힌다.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토콜.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태도. 정답 없는 시대에, 스스로의 언어를 다시 조율해보겠다는 결심. 그러니 이 시작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처음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더 단단히, 더 유연하게 출발선에 선다는 뜻에 가깝다.
'Protocol Index'는 단지 브랜드가 아니다. 그에게는 이 공간이 미학의 실험실이자, 삶의 리듬을 조형 언어로 번역해내는 도구이고, 그간의 질서를 다시 엮어보려는 조용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 오형석이라는 디렉터의 다음 장을 조금은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토콜 인덱스(Protocol Index)”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오형석입니다. 한때 패션 회사에서 MD로 일했고, 최근까지 두 개의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맡아왔습니다.
지금은 'Protocol Index'라는 새로운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고요. 이 스튜디오는 단순히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공간·오브제·시각언어 등 다양한 매체에 새로운 디자인 문법을 적용해보고자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Q. 패션업계에 들어서게 된 개인적인 시작점이 궁금하다. 'GRAILZ',와 'PROJECT G/R(이하 P G/R)' 등 이전에 전개했던 브랜드들은 어떤 맥락과 과정 속에서 탄생했고, 어떤식으로 전개되었는지 회고해본다면?
A.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패션이 '나의 언어'라고 확신했던 건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멋진 옷을 입고, 스크린 속 인물들을 동경하는 평범한 소비자였죠. 제 삶의 궤도는 오히려 법조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했고, 처음엔 꽤 진지했어요. 하지만 그 학문은 제 안의 '혼란'에 응답해주지 못했어요. 논리를 따지는 건 맞지만, 감각은 그 안에 설 자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공을 복수로 돌렸습니다. 의류학이었고, 이상하게도 그 세계는 저를 환기시켰어요.
스케치보다 논문이 익숙했던 제가, '입는 것'이 인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료되었죠. 그렇게 하나씩, 낯선 세계에 발을 디뎠고, 결국 한 패션 회사에서 5년간 일하게 됐습니다. 그 경험은 체계가 무엇인지를, 시장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죠.
'GRAILZ'는 어느 날 문득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직장이라는 구조 안에서 벗어나 뭔가를 실험해보고 싶다는 욕구였어요. 용돈벌이? 네, 정말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죠. 브랜드명도 그랬고, 프로덕트도 다듬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 시작이 왜 중요했던 이유는, 그 '서투름'이 있었기에 다음으로 갈 수 있었거든요.
'Project G/R'은 그 첫 실험 이후의 반응이었어요. 'GRAILZ'를 하면서 스스로 느낀 미진함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만든 정리된 문장 같았어요. 누군가는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큰 그림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저는 정반대였던 것 같아요. 흩어져 있던 의문들과 감정들, 욕망들을 정리해가는 과정이 제 브랜드의 전개였어요.
회고해보면, 2022년까지의 저는 패션과 공부 사이에서 계속 갈등 중이었어요. 저는 늘 정답이 있는 삶에 길들여져 있었고, 그 구조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어요. 하지만 디자인은 늘 답이 없는 영역이고,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죠. 지금 돌아보면, 저는 그때부터 무엇을 하든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을 버린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은 바뀌었지만, 태도는 같아요.





Q. 지난 몇 년간 'P G/R'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런 브랜드를 정리하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또 'Protocol Index'를 통해 새롭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많은 분들이 저희 작업을 좋게 봐주셨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반응만으로는 제 자신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자에게는 언제나 외부의 평가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더 중요하니까요. 지난 몇 해는 제게 있어 삶과 창작이 깊이 교차했던 시기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났고, 시간의 쓰임이 달라졌어요. 예전처럼 창작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지금 내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었죠. 그렇게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늘 조용히 작업해온 편이에요. 왜 이런 디자인을 했는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언젠가 그것들이 스스로 읽히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물론 아쉬움도 남습니다. 스스로를 좀 더 분명히 설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저는 세상에 없던 것을 발명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르지엘라처럼 기존의 문법을 비트는 디자이너들에 매료되어왔어요. 특히 80~90년대의 패션은 제게 '다르게 보기'라는 태도를 가르쳐줬고, 저 역시 그런 문법을 제 방식으로 재구성하려 했습니다.
새 스튜디오 'Protocol Index'는 그런 태도의 연장입니다. 법, 경제, 디자인 모두 수많은 '프로토콜'로 이루어진 사회 안에서 작동하죠. 패션도 마찬가지예요. 정해진 길이, 팔리는 그래픽, 익숙한 실루엣 등 이미 정답처럼 작동하는 틀 안에 있거든요. 저는 그런 프로토콜을 의식적으로 벗어나고 싶었고, 그 경계에서 작업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Protocol'의 역설 위에 쌓인 창작의 'index'. 그게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Q. 전 브랜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스튜디오를 준비하는 과정은 감정적으로도 복잡했을 것 같다. 어떤 고민들이 있었고, 이 변화가 오형석 대표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가?
A. 물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건 언제나 두렵죠. 하지만 제가 이미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변화가 억울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걸 배웠고, 그만큼 저 자신도 성장했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그 배움 위에서, 더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변화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큽니다.

Q. 이전 브랜드는 펑크, 보더, 디지털 문화 등 서브컬처의 다양한 결을 담아냈다. 'Protocol Index'에서는 어떤 문화를 기반으로 소개할지도 궁금하다. 전 브랜드와 가장 달라진 점, 이어지는 점이 있다면?
A. 저는 창작을 할 때 어떤 하나의 문화나 장르에 제 자신을 고정하고 싶지 않아요. 영감은 특정한 영역 안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세상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장면들, 감정의 변화, 공간의 기류, 우연히 스친 대화 같은 것들, 그 모든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P G/R'은 언제나 실험적인 방식의 캠페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모델의 얼굴을 지운 연출, AI 툴 활용, CCTV 연상 장면 등 인상적인 시도들이 많았다. ‘프로토콜 인덱스’에서는 이러한 시도들이 어떻게 이어지거나 새롭게 변주될 예정인지 궁금하다.
A. 제가 뭔가 실험적이거나 충격적인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작업을 한건 아니에요.(웃음) 항상 제가 가진 자원 안에서 최대한 정직하게 작업해왔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좀 절약하는 성향도 있고, 정말 의미 있는 게 아니라면 큰 규모로 기획하거나 무리해서 보여주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콘텐츠도 제가 직접 기획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왔죠. 그렇게 아끼면서 만든 작업들이 오히려 제 스타일을 규정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Protocol Index'는 단지 패션만을 다루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리된 건 많지 않지만,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펼쳐볼 수 있는 장이 될 것 같아요.



Q. 스포츠 브랜드 '리복', 마사키 혼마의 '마스터마인드', 일본의 대표적인 편집샵 '누비안' 등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오프셋'과 '제이발빈', '블러디 오시리스', '모와롤라', 'CL'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샤라웃과 함께 한국 스트릿 브랜드로서 글로벌 신에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Protocol Index'에서는 로컬과 글로벌 포지셔닝을 어떻게 전개할지도 궁금하다.
A. 아직은 스튜디오에 책상 하나만 들어온 상태예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시작이 오히려 저에겐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해요. 이 시기에 주변에서 보내준 응원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힘이 됐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들려온 반응들이 인상 깊었어요. 한국보다도 더 진심 어린 격려를 받았고, 작업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말들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로컬'과 '글로벌'을 나누기보다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더 넓은 장르 안에서 흥미로운 일들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아직은 구체적인 틀보다 그 마음 자체가 더 중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 브랜드의 협업 기준도 궁금하다. 'P G/R'은 독창적인 기준을 가지고 문화적 접점을 중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Protocol Index'에서 함께하고 싶은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혹은 이미 예정된 협업이 있다면 스포일러도 환영한다.
A. 예전부터 그랬지만, 저는 명분이 없는 협업은 하지 않으려 늘 노력해왔어요. 그게 금전적으로 유리한 선택일지라도요. 창작에는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왜 함께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Protocol Index'에서는 계속 이야기해왔듯, 저는 다양한 조형 언어와 미학의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건 단순히 '확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최근 몇몇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고, 지금 막 시작하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도 몇 개 있습니다. 아직은 초입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언어가 만들어질지 기대하고 있어요.

Q.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최근 패션 신에서 주목하고 있는 흐름이나,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저는 평론가도, 저널리스트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흐름을 해석하는 관점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특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되는 건,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취향의 세분화라는 두 축입니다.
비즈니스적으로는 당연히 글로벌 불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와 동시에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과거처럼 '모두가 따르는 하나의 트렌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의 테이스트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더 개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오히려 그 흐름 속에서 저는 더 다양한 미학적 접근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나의 정답이 사라진 시대이기에, 오히려 더 유연하게 미적 언어를 확장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Q. 한국 스트리트 패션이 점차 글로벌 시장의 시선을 끌고 있다. 오형석 대표가 바라보는 한국 패션 신의 가능성은 어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 시장과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가?
A. 앞서말했듯 저는 어떤 대담한 담론을 논하거나 평가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작업은 여전히 배움의 연장선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체득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한국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한 사회이지만, 그만큼 내부적으로 축적된 현대문화의 층위는 아직 얇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릴 적 해외 경험들이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줬고, 역사 공부를 좋아하다 보니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그 지역의 사람들과 공통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결국, 다양한 문화적 사고 방식은 단순히 '글로벌 시장 진입'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분야든 외부와의 접점을 넓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브랜드 외적으로도 계획 중인 프로젝트나 시도하고 싶은 영역이 있는지 궁금하다. 'Protocol Index' 그리고 'Protocol Index'를 떠나서 확장하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사실 오브제 영역은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던 분야였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사업적인 우선순위나 현실적인 이유로 계속 미뤄둘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판단을 잠시 내려두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작업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요. 특히 정제된 오브제 작업이나 아티저널한 접근들, 그리고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방식들을 'Protocol Index'를 통해 적극적으로 펼쳐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실험이 아닌, 저만의 조형 언어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Q. 새로운 챕터를 막 시작한 지금, 'Protocol Index'가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 마무리로 듣고 싶다.
A. 아직은 시작 단계이고,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유연하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열린 마음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습니다. 'Protocol Index'에게 'fake'란?
A. 저와 'Protocol Index'에게 'fake'란, '자아(ego)'와 '본능(id)'를 나누는 경계선과 같습니다. 그 경계를 통해 저는 제 생각과 행동을 구분지었고, 그 구분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말하자면,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종의 안전 장치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 경계를 일부러 흐리고 있습니다. 더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 애쓰기보다, 그 사이에서 스스로를 더 유연하게 만들어보려는 시도에 가까워요.
그래서 'Protocol Index'에서의 'fake'는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어떤 전환의 계기입니다. 겉과 속의 차이에서 오는 불일치가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조율해가는 새로운 진실성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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