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자동차와 패션의 만남, 메르세데스 벤츠가 택한 패션 브랜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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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간 협업은 이제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시대의 미감을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가 되었다. 패션과 예술, 기술과 자동차처럼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는 순간, 그 충돌과 융합은 늘 예상 밖의 미학과 경험을 만들어낸다. 특히 하이패션과 모빌리티의 접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가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이 브랜드는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확장되며 패션계와의 협업을 통해 스스로의 이미지를 꾸준히 재정의해왔다.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발렌시아가(Balenciaga), 사카이(Sacai) 등과의 협업은 단순한 로고 교환 이상의 결과물로 이어졌고, 때로는 옷으로, 때로는 커스텀카로 구체화되었다. 지금부터 그 다채로운 장면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01. Balenciaga



2022년 7월, 파리에서 열린 발렌시아가의 51번째 오트 쿠튀르 쇼. 이날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잠수복을 연상시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통일된 룩과 미래적인 페이스 실드였다.
이 독특한 액세서리는 발렌시아가와 메르세데스-AMG F1 어플라이드 사이언스(Mercedes-AMG F1 Applied Science)가 협업해 만든 하이테크 아이템, 잉크 톤의 폴리우레탄을 수작업으로 성형 및 연마해 얼굴에 정교하게 밀착되도록 제작되었으며, 표면에는 두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페이스 실드는 일반적인 마스크가 아닌 기술적 집약체다. 공기 흐름을 최적화하고 이산화탄소 흡입을 안정화하는 기술, 김 서림 방지 기능 등 항공 및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축적된 메르세데스-AMG의 엔지니어링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수개월간의 테스트와 개발을 거쳐 완성된 이 제품은 헬멧에 가까운 기능성을 지니면서도,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가 추구하는 오트 쿠튀르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약 5,600달러라는 높은 가격과 파리 매장에서만 예약 구매가 가능한 한정 판매는, 이 아이템이 일상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트 쿠튀르의 본질인 장인정신, 상징성, 그리고 실험정신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용성은 부차적인 요소일지 모르나, 여드름과 다크서클을 가려주는 ‘의외의 실용성’까지 겸비한 이 페이스 실드는 패션과 기술이 맞닿은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02. Off White
버질 아블로는 스트리트 패션과 럭셔리 하우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한 21세기 대표 디자이너다. 루이 비통(Louis Vuitton)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오프화이트(Off-White)의 창립자로서 그는 늘 패션의 경계를 확장해온 디자이너로 기억된다.
그의 이름과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단어는 단연 ‘협업’. 수많은 파트너십을 통해 시대의 감각을 제안해온 버질 아블로가 메르세데스-벤츠와 역사적인 협업을 펼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프로젝트 마이바흐(Project Maybach)’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이 협업은 콘셉트카와 의류 캡슐 컬렉션으로 구성되며, 단순한 브랜드 교류를 넘어선 하나의 창작 실험이었다.
2021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처음 공개된 이 전기차는 약 6미터 길이의 2인승 쿠페 모델로, 태양광 패널이 장착된 보닛, 사파리 스타일의 라이트, 투명한 지붕 등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오프로드 감성을 품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내부는 탄 컬러 가죽으로 마감되었으며, 최소한의 디테일과 접이식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통해 실용성과 미니멀리즘의 조화를 이뤘다.




함께 공개된 오프화이트 x 메르세데스-벤츠 캡슐 컬렉션은 차량 디자인의 미감을 패션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샌드 컬러의 티셔츠, 플리스 크루넥, 후디, 캔버스 야구 모자, 레이싱 장갑 등으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버질 아블로 특유의 그래픽 감성과 기능적 소재가 어우러져 시각적 통일감을 완성했다.
비록 프로젝트 마이바흐는 양산을 전제로 한 차량은 아니었지만, 그 영향력은 실제 생산으로까지 이어졌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를 바탕으로 ‘Maybach by Virgil Abloh’라는 이름의 S680 한정판 모델을 선보였고, 전 세계 단 150대만 제작됐다.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언어를 현실적인 조건에서 구현한 이 모델은 그의 유산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남았다.
버질 아블로와 메르세데스-벤츠의 협업은 자동차 디자인과 패션이 만나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한 순간이었다. 기술과 예술, 산업과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이 프로젝트는, 버질 아블로가 남긴 창조적 유산 중 하나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03. Heron Preston
지속 가능성과 실험적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아온 디자이너 헤론 프레스턴(Heron Preston)이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고 특별한 콘셉트 룩을 선보였다.
해당 협업은 에어백 발명 50주년이자 실제 차량에 적용된 지 40주년을 기념하며 기획된 프로젝트. 어릴 적부터 S500과 G-클래스를 동경해온 헤론 프레스턴은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음악, 영화, 스포츠 등 대중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말했으며 그에게 있어 해당 협업은 기술과 문화, 그리고 개인적 향수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작업이었다.
컬렉션의 핵심 소재는 충돌 실험에 사용된 실제 에어백.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선 창의적인 업사이클링 방식으로 완성된 이 컬렉션은, 패션이 어떻게 기술적 기능성과 환경적 책임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헤론 프레스턴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직접 에어백 소재를 받아 관찰하고, 만지고, 그 특유의 질감과 색을 체험한 뒤 컬렉션의 방향을 구상했다. 그는 소재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새로운 실루엣과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박시한 실루엣과 레이어링, 워크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을 더해 자신만의 미학을 고스란히 투영했다.
프레스턴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 대신 '환경적으로 덜 해로운 방식'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며, 정답 없는 시대 속에서도 디자인을 통해 끊임없이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해당 협업은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 그의 디자인 철학이 응축된 하나의 챕터이자 사회적 책임과 실험 정신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04. Sacai
도쿄 기반의 디자이너 브랜드 사카이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고 퍼포먼스와 디자인의 정수를 담은 특별한 협업을 선보였다. 사카이가 럭셔리 자동차 분야에 처음 진출한 이 프로젝트는 캡슐 컬렉션과 맞춤형 AMG GT 차량 랩핑으로 구성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컬렉션은 메르세데스-AMG의 전설적인 첫 레이스카인 ‘레드 피그(Red Pig)’에서 영감을 받았다. 1971년 스파 24시(Total 24 Hours of Spa) 레이스에 언더독으로 출전해 뜻밖의 성과를 거두며 상징적 존재로 떠오른 레드 피그의 이야기가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카이는 이 상징적인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레드 피그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였다. 특히 ‘S’ 로고와 레드 피그 스타일의 패치가 더해진 바시티 재킷, 밀리터리 무드의 올리브 컬러 봄버 재킷은 컬렉션을 대표하는 상징적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변형의 바시티 재킷, 양 브랜드의 협업으로 제작된 점프수트, 그리고 여러 의류 및 액세서리 아이템들이 포함됐다.
사카이의 창립자 아베 치토세(Chitose Abe)는 해당 협업에 대해 “사카이는 항상 본질적인 형태에서 출발해 새로움을 탐구해왔으며, AMG는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성과 순수한 우아함을 상징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공감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AMG GT 차량 역시 레드 피그의 데칼 패턴을 은은하게 엠보싱 처리하고, 미러드 크롬 피니시로 마감해 ‘아는 사람만 아는’ 감각적인 디테일을 더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사카이는 각자의 분야에서 럭셔리와 퍼포먼스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으며, 이번 협업은 두 브랜드의 정체성을 충실히 반영한 독창적이고 대담한 시도로 기억된다.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동시에 아우른 이 프로젝트는 양 브랜드가 지닌 유산과 혁신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05. AWGE
미국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에이셉 라키(A$AP Rocky)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컬렉티브 AWGE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와 손잡고, 90년대 감성을 담은 스트리트웨어 컬렉션을 선보였다.
에이셉 라키와 메르세데스-벤츠 간의 인연은 2016년 광고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꾸준한 파트너십을 이어오다 해당 협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특히 해당 컬렉션은 에이셉 라키가 성장기를 보낸 90년대의 레트로 무드를 패션으로 재해석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 메르세데스-벤츠 엠블럼이 지닌 향수를 담아내며, 자동차 문화와 스트리트웨어의 세련된 조화를 보여준다.



컬렉션에는 블랙 앤 화이트 풀오버 후디, 스냅백 모자, 조거 팬츠 등 다양한 아이템이 포함되며, 곳곳에 메르세데스-벤츠 커스텀 그래픽과 플로럴 트림이 디테일을 더한다. 특히 후디에는 전면, 후면, 소매까지 레트로한 그래픽이 더해졌고, 스냅백에는 로고 자수가 감각적인 포인트로 활용되었다.


협업의 비주얼 중심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콘셉트카 ‘F 200 이매지네이션’이 자리한다. 1996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이 차량은 조이스틱 조향 시스템, 전자식 루프, 비디오 카메라 사이드미러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기술이 집약된 미래지향적 모델이었다.
비록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에이셉 라키는 이번 컬렉션에서 이 콘셉트카를 전면에 배치하며 단순한 스타일링 오브제를 넘어, 과거를 기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으로 활용했다. 그가 컬렉션 전반에 녹여낸 90년대 특유의 레트로 무드와 함께, 이 차량은 이번 협업이 추구하는 미학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06. KidSuper
지금까지 소개한, 혹은 현재까지 진행된 메르세데스-벤츠와 패션 브랜드의 협업 중 가장 동화 같은 프로젝트라면 단연 키드수퍼(KidSuper)의 콜름 딜레인(Colm Dillane)과의 협업일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CLA 모델을 기반으로, 딜레인의 유년 시절 기억과 키드수퍼 특유의 유쾌한 감성이 더해져 ‘슈퍼히어로 카’라는 독창적인 형태로 재해석됐다. 풍차 날개에서 착안한 윙 디테일, 풍선 장식, 전면 윈치, 랠리 스타일 루프, 그리고 1996년의 F 200 콘셉트카를 떠올리게 하는 휠 등 다채로운 요소들이 더해져 하나의 조각품 같은 비주얼을 완성했다.



이 콘셉트카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 전시되었고, 같은 장소에서 키드수퍼의 2026 S/S 컬렉션 런웨이와 함께 공개되며 예술과 패션, 모빌리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지니어링 유산과 키드수퍼의 레트로 감성을 결합한 이번 협업은 총 13피스로 구성된 한정판 캡슐 컬렉션도 포함한다. 재킷, 셔츠, 팬츠, 트렌치코트는 물론 모자, 가방, 캐리어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제작되었으며, 면, 캔버스, 저지, 비건 레더 등 여러 소재를 활용했다. 역사적인 메르세데스 로고와 “Patent Motorwagen”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는 이번 컬렉션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 중 하나다.
평소 만화 같은 컬렉션으로 주목받아 온 콜름 딜레인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한 협업을 넘어, 자동차와 패션,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유쾌하면서도 정교하게 그려냈다. 그의 세계관은 자동차와 의류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메르세데스-벤츠 협업 프로젝트 중 가장 따뜻하고 상상력 넘치는 사례로 남게 됐다.



Editor / 노세민(@vcationwithp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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