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권력을 쥔 인간은 왜 악마가 되는가
루시퍼 이펙트
사람 안 변한다. 선조 때부터 내려오던 수많은 옛말 중, 아마 가장 신빙성이 높은 말이 아닐까. 임상만 아무리 못해도 몇 백 년은 훌쩍 넘는 데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누리꾼들이 입을 모아 외쳐대던 그 말.
하지만 모든 일엔 예외가 있는 법이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소속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한 실험을 위해 평범한 대학생들을 모집한다. 70명의 지원자 중 24명이 선발되었는데, 조건은 특별할 게 없었다.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고 범죄나 약물 남용 이력이 없는, 소위 ’건실한‘ 중산층 가정의 청년들이었다.

고용된 학생들은 2주간 감옥에서 생활하는, 다소 파격적인 환경에 놓이게 된다. 사실 진짜 감옥은 아니고, 대학 건물 지하실에 임의로 지어진 세트 같은 곳이었다. 일당은 15달러로 당시로선 꽤 괜찮은 조건. 그러나 그 내용은 단순한 감옥 생활 체험 같은 게 아니었다. 모인 학생들 중 임의로 절반을 나누어 무작위로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부여하고, 구조적 환경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실험은 불과 6일 만에 중단되었다. 각자의 역할에 너무 충실해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교도관 역의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가학적인 행위로 수감자들을 대했고, 공포와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결국 통제 불능의 폭력 사태와 돌발 행동들로 인해 2주는 커녕 일주일도 채우지 못한 채 실험은 막을 내렸다.

니가 알던 내가 아냐 : <엑스페리먼트, Das Experiment (2001)>

그런데 만약, 이 실험이 도중에 중단되지 않고 끝까지 계속되었다면? 영화 <엑스페리먼트, Das Experiment (2001)>는 실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택시기사인 '타렉(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은 높은 일당에 홀려 제 발로 실험에 참여하는데, 하필이면 죄수의 역할에 당첨된다. 그러나 타렉은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다. 특유의 반골기질로 교도관의 권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코웃음으로 응답한다. 반면 영화 초반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등장했던 '베루스(유스투스 폰 도나니)'는 교도관 제복을 입는 순간 180도 변해버린다.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역할‘이라는 장치를 통해 배분된 집단 내의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지. 타렉과 베루스는 서로 정반대의 인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부여된 권력으로 인해 전혀 다른 아웃풋을 선보인다. 소심했던 베루스는 ’질서 유지‘라는 명분 아래 죄수들을 통제할 정당성을 얻게 되면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타렉의 정당한 저항은 구조적 열세에 밀려 ’처벌의 사유‘로 치부된다. 과연 베루스의 폭력성은 본래 그에게 내재되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권력의 위치가 순진한 그를 타락시킨 것일까. 영화는 권력이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조롱한다.

권력의 전이와 폭력의 연쇄 : <킬링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의 2017년 작, <킬링디어> 역시 권력과 폭력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성공한 심장외과 전문의 '스티븐(콜린 파렐)', 그리고 그 곁을 끈질기게 맴도는 한 소년 '마틴(배리 케오건) '사이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말이다. 겉보기에 둘은 친족처럼 다정해 보이지만, 그 이면엔 과거 마틴의 아버지를 수술대에서 죽게 한 스티븐의 죄의식과 오만한 선민의식이 서려있다. 자신의 실력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음주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이 마틴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듯 보여도,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건은 스티븐이 마틴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어울리지 않던 과한 친절이 화를 부른 것이라고나 할까. 마틴이 다녀간 뒤, 스티븐의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이상 증세를 보인다.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며, 눈에 띄게 기력을 잃어간다. 현대 의학의 정점에 선 스티븐조차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한 가운데, 마틴이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다짜고짜 망연자실한 스티븐에게 이상한 규칙들을 전달한다.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당신 역시 가족 중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 그 선택은 당신이 한다. 반드시 아내와 아들, 딸 중 한 명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세 사람 모두를 잃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완전히 예측 불허 상태에 돌입한다. 마틴은 우리가 흔히 폭력이라 여기는 물리적 위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자를 고르는 ‘결정권’마저 스티븐에게 양보하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친절한 복수자의 미덕을 보인다. 그러나 이 선택은 사실 ‘대안‘이 없는 절대적 구속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가족은 기필코 파괴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굴레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결국 강제로 부여된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스티븐은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마치 주사위를 던지듯 우연에 모든 이의 생사를 맡겨버린다.


이 비극의 순환은 참으로 경이롭다. 생명을 좌지우지하던 의사의 권력이 마틴을 향한 폭력으로, 이에 응답하듯 마틴은 마치 신처럼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을 통해 다시 스티븐에게 폭력을, ‘선택’이라는 허울뿐인 권력에 포획된 가장 스티븐은 결국 제 손으로 가족에게 폭력을... 그렇게 영화는 전이되는 권력 속에서 폭력의 연쇄를 완성한다. 이 가학적인 게임 속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명분 없는 유희와 무력한 관객 : <퍼니게임, Funny Games (2007)>

감독이 얼마나 집요했으면 직접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했을까. 불편한 영화 만드는 데엔 도가 튼 독일의 감독 '미하엘 하네케'의 <퍼니게임>은 1997년 작과 2007년 작, 약 10년의 터울 속에 있지만 설정과 전개는 거의 흡사하다. 유명 영화 별점 사이트의 한줄평을 죽 훑어보면, 불편함을 넘어 짜증이 밀려온다는 의견이 대다수.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앞선 두 영화가 공들여 쌓아 놓은 권력과 폭력의 인과관계를 가뿐하게 짓밟아 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매우 비정상적이며 또한 비상식적이라는 경고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평화로운 휴양지. 별장을 찾은 한 가족에게 하얀 장갑을 낀 단정한 차림의 두 청년이 찾아온다. 달걀 몇 개만 빌릴 수 있느냐는, 아주 사소하고 정중한 부탁과 함께 말이다. 주인공인 '앤(나오미 왓츠)'은 이들에게 기꺼이 달걀을 건네지만, 그 대가로 상상조차 불가능한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앞선 영화들이 역할 수행이나 복수란 덕목으로 폭력의 극악무도함을 최소한이나마 방어했다면, <퍼니게임>은 말 그대로 유희, 게임이다. 여기서의 폭력은 그 어떤 동기도, 맥락도 없는 순수한 악의에 가깝다. 생각해 보라. 그런 순수한 악의를 품고 있는 자가 권력을 쥐었을 때의 상황을. 두 청년은 총과 칼로 무장한 채 압도적인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공포에 질린 가족들에게 생명을 건 내기를 제안하며, 그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즐긴다. 여기서의 폭력은 육체적 가해를 넘어,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품격과 실낱같은 희망까지도 부수어버리는 가학적인 놀이나 다름없다. 결백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저항하지만, 무력으로 이뤄낸 절대적 권력 앞에선 모든 노력이 허망한 물거품으로 전락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미치광이 두 청년의 권력이 영화 속 인물들을 넘어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둘 중 리더 격인 '폴(마이클 피트)'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끈질기게 저항하던 앤이 극적으로 반격에 성공하려는 찰나 리모컨을 집어 영화 자체의 장면을 되돌려버리는 초현실적 권능을 행사한다. 이는 지켜보는 관객조차 무력감에 빠지게 하며, 정의와 구원의 실현마저 가해자의 손 끝에 달려있음을 선언하는 섬뜩한 장치다. 결국 권력과 폭력 앞에는 그 어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과율도 존재하지 않음을, 그 무자비한 관계를 기필코 증명해 낸다.
앞서 소개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주도했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그 잔혹했던 실험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목격한다. 평범하고 선량했던 인간이 특정 상황과 권력 속에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몸소 체감하고 여기에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현상은 권력 속에서 뻗어 나오는 악의 실체가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악은 그저 구조와 명분 뒤에 숨어 마땅한 때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비밀스럽게 작동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권력이 안정적이면 안정적일수록 폭력의 색채는 더욱 짙어진다. 폭력은 단순히 누군가를 해할 때가 아니라, ’해쳐도 괜찮다‘고 모두가 납득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Editor / 주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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