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를 넘어 예술의 경계로, ‘그릴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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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반짝이는 미소를 치아 미백으로 만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금, 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악세사리인 그릴즈(Grillz)로 압도적으로 화려한 미소를 보여준다.
그릴즈는 치아 위에 덧씌우는 악세사리로, 금, 은,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과 보석을 활용해 제작된다. ‘치아 주얼리’ 또는 ‘덴탈 액세서리’라 불리며, 치아라는 신체 일부를 직접 장식한다는 점에서 목걸이, 반지, 귀걸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지닌다.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부와 함께 개성을 입 안에서 선명하게 드러내는 아이템.
과거에는 주로 힙합 아티스트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릴즈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의 무대, 화보, 뮤직비디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그릴즈는 더 이상 투스젬을 잇는 마이너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이제 국내 아이돌 씬에서도 하나의 강력한 스타일 코드로 자리 잡았다. 지드래곤을 비롯해 블랙핑크의 제니와 리사는 공연과 화보에서 자연스럽게 그릴즈를 착용했고, 에스파의 윈터는 신곡 ‘Dirty Work’에서 그릴즈를 활용한 파격적인 비주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신인 그룹 올데이프로젝트(Allday Project)의 타잔 역시 그릴즈로 자신의 독보적인 스타일에 포인트를 더했다.
이제 그릴즈는 대중에게도 힙합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콘셉트에 따라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링 언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입 속 장신구에 대한 욕망>
그릴즈는 힙합 문화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고대 이집트가 금니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당시 미라에서는 금속 치아가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2,500년경의 금선으로 묶인 치아 역시 장신구라기보다 부장품에 가까웠으며, 사후 세계를 위한 의례적 성격이 강했다. 이른바 그릴즈의 이집트 기원설은 오해에서 비롯된 신화에 불과하다.



그릴즈의 실질적인 기원은 기원전 800~200년경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부유한 여성들은 앞니를 뽑고 금띠로 장식한 대체 치아를 착용해 지위와 부를 과시했다. 이 작업은 치과의사가 아닌 금세공인이 맡았으며, 기능보다는 장식 효과에 중점을 뒀다. 에트루리아 여성들은 로마와 그리스 여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권리를 누렸고, 이와 같은 장식은 그 자유와 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정복과 함께 이 관습은 자취를 감췄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왕족 역시 치아 장식을 통해 정치적·종교적 메시지를 전했다. 서기 300~900년 사이, 왕과 왕비는 앞니에 작은 구멍을 뚫고 옥 등을 박아 넣었다. 옥은 농업과 생명의 상징으로, 이를 착용한 왕족은 백성의 번영과 풍요를 약속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외에도 바이킹은 치아에 홈을 새기고 검은색 안료를 채워 집단 정체성을 드러냈고, 필리핀 귀족층은 금못과 금판으로 치아를 장식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치아 장식은 부와 권력,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였으며, 이는 오늘날 그릴즈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현대 그릴즈 문화의 선구자, Eddie Plein>
고대에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금속 장식은 1970년대 뉴욕에서 ‘그릴즈’라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했다. 당시 일부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치아 결손을 메우기 위해 금니를 사용했는데, 이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스타일로 발전했다. 금니가 부와 성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점차 치아 전체를 덮는 장식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본격적인 문화의 출발점에는 수리남 출신 이민자 에디 플레인(Eddie Plein)이 있었다.


현대 그릴즈 문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꼽히는 에디 플레인은 고향을 방문했다가 치아가 깨져 영구 금니를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대신 탈부착이 가능한 금 크라운을 고안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치과대학에서 크라운 제작을 배운 뒤, 가족이 운영하던 보석 세공 기술을 결합해 브루클린 자택 지하실에서 본격적으로 그릴즈 제작을 시작했다.
그의 첫 주요 고객은 래퍼 저스트 아이스(Just-Ice). 1987년 앨범 ‘Kool and Deadly’의 홍보 포스터 속 금빛 그릴즈를 낀 그의 모습은 뉴욕 전역에 붙었고, 곧 많은 사람들이 에디의 작업실을 찾았다.

이후 그는 퀸즈 자메이카의 콜로세움에 ‘페이머스 에디스(Famous Eddie’s)’를 열었지만, 디자인을 모방해 저가로 판매하는 경쟁자가 늘면서 뉴욕에서의 사업은 점차 어려워졌다. 1992년, 에디는 애틀랜타로 거점을 옮겼고, 아웃캐스트(Outkast), 구디 마브(Goodie Mob), 루다크리스(Ludacris), 릴 존(Lil Jon) 등 당대 대표 래퍼들의 그릴즈를 제작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릴즈 문화를 힙합 문화에 정착시킨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됐다.
<악세사리를 넘어 예술 작품으로>



과시의 상징에 불과했던 그릴즈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 예술 작품으로 진화했다. 그 배경에는 개인화와 창의성이 있다. 초기에는 금으로만 제작되던 그릴즈가 이제는 재질, 색상, 보석 패턴, 조각 디테일까지 세밀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착용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담아내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맞춤 제작 문화의 확산은 그릴즈를 단순한 액세서리에서 ‘착용 가능한 예술’로 끌어올렸다. 제작자의 창의성과 기술이 결합된 그릴즈는 무대 위 아티스트들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으며, 개별적 표현이자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작 방식과 재료, 디자인의 다양화는 그릴즈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로 정착시켰다. 에디 플레인이 그릴즈 문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제작자들이 이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1.

휴스턴을 전 세계 그릴즈 문화의 중심지로 만든 주인공, 바로 ‘킹 오브 블링(King of Bling)’ 조니 댕(Johnny Dang). 베트남 닥락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보석 세공 기술을 물려받았다. 1996년, 23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온 댕은 휴스턴의 벼룩시장에서 보석 수리와 맞춤 제작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몇 년 뒤 샤프스타운 몰에 첫 매장 ‘TV Jewelry’를 열었고, 체인과 팔찌를 만들던 그는 휴스턴 래퍼 폴 월(Paul Wall)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파트너십을 맺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그릴즈를 힙합 씬에 본격적으로 퍼뜨렸다.


조니 댕의 그릴즈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화려함에 그치지 않는다. 수십 년간 다듬어온 세공 기술과 새로운 주얼러들이 따라오기 힘든 맞춤형 옵션, 그리고 빠른 제작 속도가 그의 강점. 자체 제작팀을 운영해 주문 후 며칠 만에 제품을 완성하는 속도는 물론, 세밀한 금속 세공과 보석 세팅 기술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인다. 덕분에 그의 제품은 힙합 스타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분야의 셀럽들이 찾는 ‘최고급 그릴즈’의 대명사가 됐다.

그가 작업한 고객 리스트는 그야말로 초호화다. 비욘세(Beyoncé),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 케이티 페리(Katy Perry), 드레이크(Drake),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제프 골드블럼(Jeff Goldblum), 카일리 제너(Kylie Jenner)까지. 그의 작품은 뮤직비디오, 라이브 공연, 가사 속에 등장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현재는 명실상부 가장 성공한 주얼리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2.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돌리 코헨(Dolly Cohen)은 그릴즈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꼽힌다. 원래 치기공사였던 그녀는 약 15년 전 유럽 유일의 그릴즈 디자이너로 과감히 커리어를 전환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그릴즈 문화가 거의 전무했기에, 경쟁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주류로 취급받던 그릴즈를 유럽 주얼리 시장에서 인정받게 만들기 위해 돌리 코헨은 세밀한 세공과 다양한 보석을 활용해 과시보다는 심미적 완성도를 높였다. 치기공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착용감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며, 고객 맞춤형 작품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고수했다.
이처럼 과시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그릴즈를 돌리 코헨은 절제된 세련미와 편안함이 공존하는 액세서리로 탈바꿈시켰다. 장식적인 화려함 속에서도 착용자의 개성과 품격이 묻어나며, 단순한 치아 장식을 넘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정교한 디자인과 뛰어난 착용감은 곧 미국 힙합 씬과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마돈나(Madonna), 리아나(Rihanna), 에이셉 라키(A$AP Rocky)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그녀의 작품을 착용하며 그 독창성을 입증했다. 또한 지방시(Givenchy)의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와 협업한 실험적인 마우스피스,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의 개구기 모티프 작품 등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고, 2022년에는 ‘ANDAM 액세서리상’을 수상하며 유럽에서도 그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최근에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을 비롯한 여러 브랜드와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그릴즈를 특정 문화나 세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주얼리로 확장시키고 있는 돌리 코헨은 그릴즈의 미래를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이름 중 하나다.
3.


‘Gabby Elan Jewelry’는 맨해튼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로, 커스텀 그릴즈와 파인 주얼리를 전문으로 한다. 1991년 이스라엘 출신 치기공사였던 갭비 피나쇼프(Gabby Pinhasov)가 창립했고, 이후 아들 엘란(Elan Pinhasov)이 합류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듀오로 발전을 거듭했다.
1990년 뉴욕으로 이주한 갭비 피나쇼프는 그릴즈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이 포착했다. 치기공사로서의 전문성과 창의적인 감각을 결합해 브랜드를 성장시켰으며, 오늘날 이 부자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음악 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뉴욕 최고의 프리미엄 그릴즈 메이커로 손꼽힌다.
역시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에이셉 라키(A$AP Rocky) 등 수많은 톱스타들이 이들의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는 루카 사바트(Luka Sabbat)가 착용해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천지창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을 담은 그릴즈.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세팅 위에 정교한 에나멜 페인팅을 더해,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미술 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외에도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가 22K 옐로 골드에 세팅된 화려한 풀 세트로 구성된 퍼렐 윌리엄스의 ‘무지개 그릴즈’ 등 다양한 재료와 극도로 섬세한 디테일이 담긴 작품들이 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디자이너들 외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개성적인 그릴즈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SNS는 이러한 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고, 래퍼를 비롯한 스타들은 그릴즈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덕분에 과거 힙합 씬의 상징에 머물렀던 그릴즈는 이제 문화와 세대를 넘어 즐기는 글로벌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그릴즈는 여전히 비싸고,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과잉’이야말로 그릴즈의 매력이다. 반짝임과 화려함, 그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과감히 시도하는 태도는 힙합의 정신이자 현대 패션이 추구하는 자기표현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입 안에서 빛나는 이 작은 장신구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Editor / 노세민(@vcationwithp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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