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스팟들: 서울 서브컬처의 과거는 왜 지워지는가?

d

우리는 한 도시의 문화를 기억할 때, 떠오르는 건 누구나 공유하는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순간순간의 장면들일 것이다. 도시의 온기를 만들어낸 건 보도블럭 위를 달리던 보드의 마찰음이었고, 굴다리 벽면에 덧칠되던 스프레이의 흔적이었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작업일지 모른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매끈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이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서브컬처는 점점 자리를 잃어간다. 더 늦기 전에, 사라져가는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해두고자 한다.


<비주류, 범죄, 낙서>

서울이라는 도시는 빠르게 리뉴얼되고 있다. 도시의 노후화는 늘 도시계획의 핵심 이슈였고, 그에 따라 이뤄지는 '환경개선 사업'은 외형상으론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도시의 가장 창의적인 면모를 형성해온 서브컬처의 흔적은 그 과정에서 너무도 손쉽게 지워지고 있다. '압구리'라 불리던 압구정의 굴다리, 스케이트 스팟 컬트를 포함한 문화를 담은 스트리트는 단지 낡은 공간이 아니라, 한국 서브컬처의 한 시대를 증명하는 물리적 기억이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서브컬처는 사회로부터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피티는 재물손괴로, 스케이트보드는 소음과 위험 요소로 간주됐다. 공공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소로 치부되며, 일탈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그래피티라이터들은 경찰의 단속과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야밤에 그림을 그려야 했고, 스케이터들은 쫓겨다니며 기물을 스스로 만들고 철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많은 브랜드들이 그래피티를 배경으로 화보를 찍고, 스케이트보드를 패션 콘텐츠에 활용한다. 스트리트는 더 이상 범죄의 상징이 아니라, 가장 쿨한 문화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문화가 실제로 자라난 '스팟'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브랜드는 그 공간의 감도를 가져다 쓰지만, 공간 자체는 보호받지 못한다.


<잊히는 장소들, 남겨야 할 이야기들>

One Drum Machine Live Set For [Abnormal Analog Audio] by bojvck / ⓒyoutube

그래피티나 스케이트 문화가 머무는 공간은 대부분 비공식적이다. 법적으로는 '허가받지 않은 장소', 즉 임시적인 점유일 뿐이다. 이는 행정 입장에서는 철거의 논리로, 시민 입장에서는 미관 개선의 이유로 쉽게 받아들여진다. '노후화로 인한 환경개선'이라는 명분은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문화의 시간은 행정의 속도와 다르다.

이제는 질문을 던질 차례다. "과연 우리는 이런 공간들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아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임시적이고 비공식적이라면, 사라짐도 그 운명일까?”

문화는 기록이 필요하다. 남겨진 공간을 물리적으로 보존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 발생한 이야기와 장면들은 기록되어야 한다. 서로서로가 아카이빙하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스팟'이 아닌 하나의 '현장'으로 존재하게 된다.


<서브컬처, 어떻게 남을 수 있을까>

Q. 당신에게 그 공간(스팟)은 어떤 의미였고, 그 장소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라이엇 팀 스케이터 송근엽. 스케이트 스팟이란 곳은 단순히 보드를 타기 위한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건 스케이터들만 아는 우리만의 의미이기에 그곳을 관리하든, 그 땅의 주인이든, 그런 사람들은 이런 의미를 알 수는 없겠지.

스팟의 의미는, 스케이트보드라는 걸로 마음이 맞고, 목표가 같고, 서로 피땀을 흘리고, 상대방의 성공에 함께 환호하고, 눈물까지 흘릴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웃음) 어떤 스팟이든 의미가 있다. 그런 한 장소가 사라진다는 건 스케이터에겐 동물의 영역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 거지.

스트릿 스팟은 그곳에서 쫓겨나고 더 이상 탈 수 없는 거에 있어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한 공간도 아니었고, 우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었기에. 하지만 스케이트 파크로 만들어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인원이 있는데도, 공지도 없이, 상의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설치 기물을 빼버리고, "언젠가 다시 해줄게."란 식으로 없애버린다... 얼마나 어이가 없나.

우리나라의 의식, 스트릿 기반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연스레 생겨나는 문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돈이 되는 문화에만 집중하는 너무 후진국스러움에 항상 애처롭다. 어쩔 수 없겠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SNS에 이슈가 되고, 공중파에서 떠들고, 대중화돼야 그 문화를 따라가는, 문화 후진국이니까.

NINE I Riot Skateshop / ⓒyoutube

Daily grind 조광훈 편집장. 컬트는 제게도 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이자, 한국 스케이트보드 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스팟입니다. 이곳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한 축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형들이 나서서 그런 공간들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애썼지만, 그 형들도 지금은 씬에 남아있지를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컬트를 지키는 것이 곧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역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Royyal Dog 심찬양. 압구정 굴다리는 부모님의 집 같은 곳이다. 항상 머물지 않아도 마지막에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곳. 고등학교 때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두근거리며 그 공간을 찾았던 첫 순간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늘 데리고 가서 보여주고 싶었던 공간이고,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날씨와 시기를 따지지 않고 만나기로 약속을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공간.

그림을 보거나 소유하는 타인의 입장이나 목적보다 그리는 이 본인의 욕구나 메시지가 앞서는 그림들로 가득했던 공간. 많은 작가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실력을 키우기도 하고 비보이들이 둘러서서 차례로 싸이퍼를 하듯이 나만의 새로운 색조합이나 스타일을 뽐내던 공간이다. 이 공간이 사라지면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기회도 그림을 관람하는 이들의 기회도 동시에 축소된다. 고향이 사라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이 그림들을 즐기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도 남는다.

DJ & 스케이터 보잭. 한국/서울에는 저만의 소중한 공간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항상 서울을 이야기하지만, 학창시절은 파주에서 보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부터 거리문화를 좋아하게 된 저에게 서울 및 다른 공간들의 소중한 공간들은 크나큰 의미였습니다. 항상 ‘지금은 너무 어리니까 어른이 되면 저기에 가봐야지’, ‘서울로 다시 돌아가면 저기를 가야지, 여기를 가봐야지’ 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 곳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런 공간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문화 외적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자연스레 이해되지만 정말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N5BRA. 압구정 토끼굴. 오랫동안 그래피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작업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압구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작게나마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그래피티 하는 사람들이 굳이 아쉬워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벽을 찾게 될 테니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라브로스 Paul. 내가 그동안 지켜봐 온 스케이터들에게 그곳은 단순히 ’연습하는 장소’ 혹은 ’놀이터‘그 이상이었다.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연대하며 한 문화를 키워 갔다. 스팟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들의 추억과 가능성까지 함께 밀려나는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Artime Joe.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했던 2001년에도 압구정 터널에는 이미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2000년대 다음 카페 문화로 그곳에서 그래피티를 먼저 시작했던 사람들을 처음 만날 수 있었으며 정모라고 불리던 커뮤니티, 유니온을 통해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소통하던 곳이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이곳에 많은 한국 그래피티 라이터들이 책임감 있는 'Hall of Fame (해외에서는 그래피티 합법 공간을 이렇게 부른다.)' 문화를 다져왔다.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으며 한국 그래피티 라이터들은 그것들을 구전으로 전하며 지켜온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그래피티를 하러 방문했을 때 <1. 오래되고, 색상이 바랜 작품들을 먼저 덮고, 작업을 한다.>, < 2. 나보다 훨씬 뛰어난 라이터들의 그래피티는 덮지 않는다.>, <3. 작품을 덮을 때는 책임감 있게 수성페인트로,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덮고, 작업을 한다.>  이러한 룰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룰들이 언제나 잘 지켜진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곳을 찾는 라이터들은 꽤 성의 있게 터널을 지켜왔고, 그것은 한국 그래피티 라이터들의 마인드와 스킬을 키워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2005년경에도 압구정 터널에서의 그래피티를 금지하는 서울시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벽을 다시 페인트로 깔끔하게 덮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래피티 라이터들이 하나둘 다시 그래피티를 하러 늦은밤 방문했었고, 서울시는 결국 그래피티 라이터들과 시간적인 협의를 하게 된다. 한강공원으로 나가는 시민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만 그래피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서울에서 그래피티를 하려는 사람들은 열심히 자신의 시간과 재료, 열정을 들여 그곳을 그래피티 성지로써 지켜왔다. 그것은 이제 근 30년의 역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최근 이곳에 매우 아쉬운 뉴스가 등장했었다. 올해 4~5월경에 예술인을 자처하는 인물이 사람들을 모집하여 스프레이로 당시 그려져 있던 그림들 위와 바닥에 엄청난 양의 낙서를 해버린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 한국 그래피티 라이터들은 공분했고, 그것들을 지우기 위해 또 그곳을 방문하여 새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정말 당시의 영상을 보면 처참하다. 유튜브에서 노노즈 NNZ의 <압구정 토끼굴 대 테러사건> 컨텐츠를 보면 참담한 그때의 상황을 볼 수 있다. 당시 테러 이슈를 일으킨 본인은 ‘너희의 낙서와 내 낙서가 무엇이 다른가?’ 하는 뉘앙스의 변호를 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정말 그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방아쇠인지는 모르겠으나 30여 년간 한국의 그래피티 성지로 불리던 압구정 터널은 최근의 잦은 민원으로 또 한 번 사라질 상황이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작업 활동을 한지 너무 오래되었으나 서울 그래피티 문화의 날개가 꺾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철물점에서 팔던 동서락카로 그래피티를 시작하던 2000년대를 훌쩍 지나 작년에 드디어 서울에도 공식적인 그래피티 샵 ‘호미캔즈’ 가 생겼고, 우리가 사랑하던 그래피티 문화에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고 느꼈는데 참으로 김빠지는 소식이다. 어쨌거나 모든 상황엔 시작이 있든 아쉬운 피날레도 있는 것이니 이 또한 다른 새로운 변화를 야기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련다.

압구정 토끼굴 대 테러 사건_FEAT: SAMBYPEN, FOC CREW / ⓒyoutube


Q.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예술이 보호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앞으로 도시 안에서 서브컬처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N5BRA. 애초에 제도권에 보호받을 생각이 없기에 선택한 길이 서브컬처다. 불안과 혼란 속, 자신을 증명하는 재미로 내가 세상을 알 때까지 계속하는 게 간지다.


라브로스 Paul. 제도권 밖 예술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권의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브컬처는 늘 가장자리에서 자리를 지켜왔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에너지와 창의성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드려면 당사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개발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그 안에는 주류만이 아닌 비주류가 숨 쉴 수 있는 틈도 함께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DOUBLE TIME Labros Seoul / ⓒyoutube

Royyal Dog 심찬양. 제도권 밖에 머무는 문화운동은 애초에 제도권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알아서 생존해나가야 하는 문화다. 보호를 요구할 수 없고, 단지 보호받지 못함을 스스로 감당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박쥐처럼 필요할 때만 찾는, 그 예술이라는 단어로 얼마나 많은 얼간이들이 자유롭게 똥을 갈겼는지 셀 수도 없다. 서브컬쳐라는 말을 메인스트림 컬쳐와 구분하려면 다른 두 나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무의 큰가지와 잔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서브컬쳐지, 카운터컬쳐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공존합시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존중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차이뿐이다.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내가 어떻게 존중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운동이 다수를 이롭게 한다면 공정한 구조에 따라 우리는 기회를 얻는다. 우리가 언제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는가?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게 억압당했는가? 애처럼 징징거리지 말고, 그 시간에 그림이나 더 그리라는 이야기다.


Artime Joe. 근래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예술가를 더 친근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각종 SNS와 크리에이터들이 자연스레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서브컬처라 불리는 문화들이 그 카테고리 안에 있는 이유는 꽤나 명확해 보인다. 소수가 좋아하는 문화이면서 또는 반대편 소수의 '싫어요'를 받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피티나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길거리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꽤 요란한 문화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해외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에 비해 서울은 꽤나 그래피티 문화에 대해 까다롭고 조금 부정적이라 자주 느껴왔었다. 하지만 또 과거를 생각해 보면 힙합, 랩, 댄스 문화도 그래피티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인식이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라이터들이 조금씩 뭉쳐가며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피티가 갖고 있는 본연의 즐거움과 도전, 빛과 어둠으로 나눠지는 Bombing과 Piece 의 대조적인 이야기, 흥미로운 각 라이터들의 여러 스타일과 가치관 같은 것들이 결국 새로운 그래피티 마니아를 자생하게 할 거라 믿는다.

DJ & 스케이터 보잭. 모든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시작하기 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어떠한 음식에 냄새를 맡으면 역해합니다. 누군가는 자신과 다른 이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그 음식을 파는 식당을 뺏거나, 그 이상을 표현하는 공간 자체를 사라지게 하진 않죠. 하나하나 조금 불편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세상 말고, 이해해 주고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비단 서브컬처 뿐만 아니죠.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웃어주세요.(웃음) 우리 다 한 지구에 살잖아요.


스케이트 필름메이커 김동희. 스케이트보드는 아직까지 소음과 위험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부분이 더 큰 것 같아요. 스트리트 촬영만 나가도 따가운 시선을 빈번히 받아봤기 때문에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격려와 응원도 많이 받아요 “멋있다. 다치기 않게 조심해라”등등. 행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길거리를 빌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려고 노력해요. 따가운 시선은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먼저 배려한다면 따가운 시선보다는 좋게 봐주시는 시선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믿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으로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게 여러 로컬들이 많이 활동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스케이트 필름을 찍기 시작할 때에 비해 로컬들의 활동이 다양해진 게 보여요. 너무 좋아요. 앞으로 더더욱 커지길 바라요.

Hide Out / ⓒyoutube

Daily grind 조광훈 편집장.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단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브컬처가 아무리 소수일지라도,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케이트보드는 도시의 구조물과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마찰 속에서 성장한 문화입니다. 굳이 파크가 있음에도 스케이터들이 길거리에서 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스케이트보드 전체의 이미지로 비춰진다면 언젠가는 외면받는 문화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케이터들은 항상 거리의 모든 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엇 팀 스케이터 송근엽. 사실 제도권 밖? 우리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스케이트보드를 탔다면 굶어 죽었을 거 같은데, 세계에서 인정받을 실력도 안 되는데 아직도 보드를 타고 있진 않았을 거다.(웃음)

“서브컬처”라는 말 자체가 웃기다. 우리가 주류에 밀려서 생긴 문화도 아닌데, 왜 굳이 그런 식으로 불려야 하나. 난 그런 말 안 쓴다. 서브컬처가 아니다. 코어컬처가 맞는 말이다. 우리는 대중문화랑 아무 상관 없다. 그냥 우리가 좋아서 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커지면 좋은 거다. 근데 개나 소나 유행처럼 건드렸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거 보면 진짜 애처롭다.

정부 지원? 있으면 당연히 편해지겠지. 환경도 나아지고, 사람들 관심도 늘고. 근데 그게 이 문화를 진짜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씬에 미쳐 있는 놈들을 얼마나 더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거다. 근데 그걸 과연 제도나 도시가 해낼 수 있을까?

살아남기 위한 방식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살아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시가 예술을 다루는 방식>

STRETCH - 우원재(Won Jae Woo) M/V / ⓒyoutube

예술은 제도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 밖에서 태어나는 감정과 몸짓들이 도시의 생명력을 만든다. 계획되지 않은 벽화(그래피티), 규정 밖의 움직임, 허가받지 않은 장면들 속에서 도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은 너무 많은 것을 지우고 있다. 너무 반듯하고, 너무 안전하며, 너무 예측 가능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문화라는 단어를 앞세운 개발은 종종 그 문화의 뿌리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결과 도시는 점점 더 ‘재현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진짜 감정과 저항, 공동체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러한 균형의 상실은 도시의 표정을 단조롭게 만든다. 도시는 더 이상 다양한 감정과 기록을 담는 장소가 아니라, 기능적 목적만을 담고있는 배경으로 축소된다.

서브컬처는 한 시대의 주류에 맞서는 용기이자, 다음 시대의 주류를 잉태하는 밭이다. 그건 일탈이 아닌 실험이고, 낙서가 아닌 목소리이며, 임시 점유가 아닌 존재의 흔적이다. 우리는 그 역사의 궤적을 어딘가에 남겨야 한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창한 사명이라기보단,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기록하고,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일. 그저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