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중독은 한 끗 차이

내기할래? 너 그거 못 자른다.

한 번 틀면 절대 멈출 수 없는 영화, '타짜(2006)' 속 '아귀(김윤석)'는 공중 화장실에서 손가락을 자르려 낑낑대는 '고니(조승우)'에게 이런 대사를 날린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고니는 손에 쥔 칼을 버리고,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스승 '평경장(백윤식)'에게 곧장 달려간다. 그리곤 대차게 선언한다. 인생, 관뚜껑은 닫아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연히 뛰어든 도박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평경장의 기술까지 고생고생 전수받아 목표했던 누나 돈의 다섯 배를 채우는 데 성공한 고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저히 화투를 버릴 수 없다. 그런 고니에게 보내는 아귀의 마지막 경고. 때 되면 다 알아서 잘라준다... 그 손가락.

ⓒcinematicpanic

하느님도 못 말려

그렇다. 이제 고니는 '정마담(김혜수)'의 말대로 '하느님도 못 말릴' 지경이다. 역시 모든 건 겪어봐야 안다고, 이 표현이야 말로 '중독' 그 자체가 아닌가.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마주하면서도, 득보다 실이 많은 비효율의 끝판왕임을 감지하면서도, 기꺼이 배드 엔딩의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 이런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정키(1953) / ⓒpenguin

50년대의 힙스터,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의 자전적 소설인 정키(Junkie, 1953)엔 마약 중독자였던 작가 자신의 상태가 가감 없이 담겨있다. 이러한 진솔함 덕분에 버로스는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은 것은 물론, 당시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 방치되어 있던 젊은 세대를 칭하는 '비트 세대'(Beat: 지치다)의 핫한 예술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종종 들리는 질문이 있다. '왜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답은 ‘스스로 중독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이다. (중략) 중독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니 중독자가 되어 아픈 것이다.
- 윌리엄 버로스, '정키'

중독에 있어 가장 위험한 점은 무엇일까. '정키'는 개인의 판단을 유보시키고, 이윽고 선택의 자유조차 앗아가 버린 중독의 피폐한 뒷면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백 번 양보해서, 쾌락을 좇는 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를 추구할수록 약물에 종속되어 가는 이 아이러니함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제 한 몸조차 제어할 힘을 잃어버린 중독자에겐 다음과 같은 씁쓸한 의문만이 남는다. 나는 불행해서 쾌락을 좇았나? 아니면 쾌락을 탐했기에 불행해졌나.

50년대 힙스터, 작가 윌리엄 버로스 / ⓒimdb

사랑과 중독은 한 끗 차이

일반 사람이 중독자의 기분을 이해하는 건 꽤나 어렵겠지만, 사실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이라는 감정이 우리 뇌에 일으키는 반응과 마약 중독의 반응 패턴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으니. 핀란드의 한 연구팀이 fMRI를 활용해 뇌 영상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 활동과 마약 중독자의 뇌 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던 것이다. 그들은 특히 도파민과 관련된 보상 체계가 활성화되는 양상이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허나 이게 끝이 아니다. 이별 후의 뇌 역시 중독자들의 금단 현상과 비슷한 뇌 반응을 보인다. 생각해 보라. 많은 이들이 이별 후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데, 마약을 중단한 이들이 겪는 증상 역시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식욕부진과 불면증, 불안과 우울감, 심하면 신체적 통증까지. 연구진은 이런 사랑과 중독의 유사한 매커니즘을 인간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 해석한다. 사랑의 감정을 대표하는 강력한 유대감과 애착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에, 마치 중독과 같은 매커니즘으로 작동되도록 설계된 것이라 본다.

* 참고: 사이언스 타임즈,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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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내 삶에 들어온 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람. '히스 레저(Heath Ledger)'의 중독자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 '캔디(Candy, 2008)'는 이런 사랑과 중독의 테마를 함께 다룬다. Heaven, Earth, Hell이라는 총 세 개의 챕터로 영화를 구성한 게 인상적. 이 제목들 만으로도 감이 오지 않는가.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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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Heaven에선 말 그대로 사랑을 만끽하는 청춘의 에너지에 집중한다. 시를 쓰는 댄(히스 레저)과 그림을 그리는 캔디(애비 코니쉬). 둘은 서로에게 빠져 하루하루가 즐겁다. 이런 그들에겐 같은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헤로인. 공원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놀이공원에 갈 때도, 심지어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밀크 셰이크를 나눠 마실 때도, 그들은 약에 취해있다. 사랑과 마약. 이 둘이 함께 있으니 쾌락은 배가 된다. 누구 한쪽 말리는 이 하나 없다. 말 그대로 천국과 같은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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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arth. 천국의 생활 중 불현듯 찾아온 새 생명.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그들은 마치 날개 잃은 천사처럼, 지상에 추락해 살벌한 현실을 마주한다. 마땅한 직업도, 미래도, 꿈도 이미 헤로인과 맞바꾼 지 오래다. 그럼에도 둘은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쾌락을 반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다. 마침내 헤로인을 끊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둘의 결심은 단 5일 만에 수포로 돌아간다. 극락의 쾌락만큼이나 극단의 금단 현상이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부풀어 오른 배를 붙잡고 약을 달라고 울부짖는 캔디의 모습은 이미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연약한 아이가 이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아이는 결국 사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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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Hell. 지옥이 시작된다. 약은 약대로, 삶은 삶대로, 모든 것이 무심하게 계속되지만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관계는 이미 예전과는 다르다. 그동안의 넉넉한 쾌락의 대가는 현실에선 전혀 쓸모없는, 무능력한 둘의 상태를 낳았다. 나의 결핍을 채워준다 믿었던 상대가 어느새 나의 치부임을 깨달았을 때 이별은 곧장 찾아온다. 사랑이냐 중독이냐 갈림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랑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면, 중독은 오직 자신의 감각만으로 결핍을 체험하는 것.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변형되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사랑이라면, 중독은 같은 자극과 반복으로 폐쇄적인 쾌락을 끊임없이 좇는 것. 영화는 댄과 캔디의 끈질긴 관계를 끝내 실패로 이끌며 사랑과 중독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순식간에 내 삶에 들어온 네가 좋았어.
- 영화 '캔디'


욕망을 이루는 가장 위험한 방법

지금은 거장에 반열에 오른 '대런 애러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초기작,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2000)' 역시 중독에 관한 서사를 기본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캔디’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마약에 의지하는 앳된 커플이 등장한다. 아마 중독은 젊음의 부작용, 미성숙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최적의 도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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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퀴엠'은 '캔디'와는 달리 욕망이라는 묵직한 덕목이 가미되어 있다. 주인공인 '해리(자레드 레토)'는 돈을 벌기 위해, 그의 애인인 '마리온(제니퍼 코넬리)' 역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자신의 가게를 꾸리기 위해, 해리의 어머니인 '사라(엘렌 버스틴)'는 TV 쇼 출연을 위한 다이어트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마약을 다룬다. 그들에게 마약은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의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대박을 쳤던 해리의 마약 사업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으며 점점 내리막으로 치닫고, 그는 점점 더 깊은 중독의 삶으로 침잠한다. 마리온 역시 마찬가지다. 가게는 커녕 약을 구하기 위해 거물 마약상에게 몸을 상납하고,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셋 중 가장 불쌍한 사라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다이어트 약 때문에 중독 증세를 경험하게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만다. 불행했기에 중독되었는가, 아니면 중독되어 불행해졌는가. '레퀴엠'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심스레 그 해답을 예측해 본다. 끔찍한 일을 경험한 세 인물, 해리와 마리온, 그리고 사라가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 아무래도 그들은 한참 과거로의 회귀를 무심코, 어쩌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scenebygreen

절대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하지 말 것

사랑과 중독의 차이가 결핍을 인지하는 방식에 있다면, 사랑과 중독의 지독한 공통점은 아마 모든 과정이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 1996)'에서 등장하는 알콜 중독자 '벤(니콜라스 케이지)'은 의지박약 중독자의 끝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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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유명 극작가인 그는 심한 알콜 중독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명예도, 직업도, 가족도. 온통 상실 뿐인 상황 속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인 중독을 극복하기보단 아예 몸을 던져버리는 쪽을 택한다. 직업이 이야기꾼이다 보니 중독자의 삶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을 자신의 삶에서 감지한 그는 그동안 번 돈을 전부 들고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그러나 사막에서도 꽃은 피어나는 법. 벤은 우연히 만나게 된 콜 걸 '세라(엘리자베스 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imdb

하지만 모든 문제의 구원책이 되어줄 것만 같은 사랑도 중독 앞에선 영 맥을 못 춘다. 벤은 자신을 걱정하는 세라에게 단 하나의 조건을 제시하는데, '절대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하지 말 것.' 놀랍게도 세라는 이 잔인한 조건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대체 세라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혹은 세라 자신도 이 관계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의외로 둘의 기묘한 인연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지속된다. 마지막을 예감한 후에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는가. 파국이 예정된 여정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벤과 세라의 결심을, 당신은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가. 그들의 의지는 '함께 생존하기'에서 '무사히 소멸하기'로 방향을 튼다.

술을 마셔서 아내가 날 떠난 건지, 아내가 날 떠나서 술을 마시게 건지.
제길, 아무런 차이가 없잖아.
-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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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없어야만 하는 이야기

중독은 곧 파멸의 과정이다. 그 허무한 파멸로 향하는 주제에, 이상하게 중독의 문장들은 섬뜩할 정도로 사랑의 표현들을 닮아있다. 날아갈 듯 황홀하고,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며, 끊임없이 원하고,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렇기에 나약하고 섣부른 영혼을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수많은 증언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결말을 궁금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궁금해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사랑과 중독의 구별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Editor /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