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1번이 남겨진 이유
ROSE
마이클 조던이 GOAT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영광의 시절을 온전히 체감한 세대는 아니다. 내가 농구에 관심을 갖고 TV를 켰을 때, 코트 위에는 이미 다른 시대의 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걸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같은 화면 안에 있는데도, 혼자만 두 배속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보이던 선수. 누구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시선이 먼저 따라갔다.
이름은 어렵지 않았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도 단번에 읽혔다. ROSE, 장미. 그 짧은 순간부터 그는 ‘선수’라기보다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발처럼 빠른 스텝, 궤적이 보이지 않는 돌파, 그리고 코트 위에서 피어나는 장미라는 상징. 곧이어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장미를 앞세운 시그니처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의미로 통했다. 데릭 로즈는 그렇게, 농구를 넘어 하나의 이름이 됐다.
가장 빠르게 피었고, 가장 느리게 사라진 이름. 어떤 선수의 커리어는 숫자로 요약된다. 우승 반지의 개수, 평균 득점, 커리어 하이라이트. 하지만 데릭 로즈의 농구 인생은 통계로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얼마나 이겼는가’보다 ‘어떻게 버텼는가’에 가깝다. 너무 이르게 정상에 올랐고, 그만큼 가혹하게 추락했으며, 끝내 다른 방식으로 농구를 이어간 선수. 그래서 그의 서사는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시대 기록처럼 남아 있다.
<골목에서 시작된 속도, 시카고가 기다린 얼굴>
'데릭 로즈(Derrick Rose)'는 시카고 남부에서 자랐다. 미국 내에서도 범죄율이 높기로 알려진 지역,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농구는 꿈이기 이전에 탈출구였고, 로즈의 속도는 재능이자 생존 방식이었다. 느리면 밀리고, 망설이면 끝난다. 그의 플레이가 항상 직선적이고 폭발적이었던 이유다.
시카고는 오랫동안 한 이름의 그림자 아래에 있었다. 마이클 조던 이후,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는 왕조의 기억만 남은 팀이 됐다. 스타는 있었지만 도시를 대표할 얼굴은 없었다. 그런 시점에 등장한 ‘시카고 출신’ 포인트가드. 로즈는 실력과 서사를 동시에 갖춘 존재였다. 그는 단숨에 팀의 중심이 되었고, 팬들은 다시 불스를 자신의 팀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최연소 MVP, 너무 빨리 도착한 정상>
로즈의 상승 곡선은 비정상적으로 가팔랐다. 루키 시즌부터 공격의 첫 옵션이었고, 경기 운영보다 돌파가 먼저 나오는 가드였다. 수비는 그의 첫 스텝을 따라가지 못했고, 림 근처에서의 균형 감각은 포지션의 상식을 벗어났다.
2011년, 그는 NBA 역사상 최연소 MVP가 된다. 조던 이후 하락하던 불스의 그래프 위에 갑작스럽게 찍힌 상승점. 시카고는 다시 챔피언을 꿈꿨고, 리그는 새로운 얼굴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데릭 로즈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정상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무너진 무릎, 무너진 시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첫 경기. 무릎이 꺾였다. 그 장면은 단순한 부상이 아니었다. 로즈의 농구 자체가 부정당한 순간이었다. 그의 장점은 모두 폭발력 위에 세워져 있었고, 무릎은 그 모든 속도의 출발점이었다.

수술과 재활, 그리고 복귀. 하지만 몸은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뛰려 하면 다쳤고, 조심하면 리듬이 무너졌다. 그는 반복해서 쓰러졌고, 불스는 끝내 기다림을 멈췄다. 시카고를 떠난 이후의 로즈는 여러 팀을 전전했다. 한때 리그의 얼굴이었던 MVP는 어느새 ‘과거형’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그를 ‘져니맨’이라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만약 부상이 없었다면”이라는 문장 속에 가두었다.





<다른 기어로 전환한 두 번째 농구 인생>
로즈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방식을 바꿨다. 더 이상 림 위에서 싸우지 않았고, 속도를 내려놓았다. 점프와 스텝대신 운영을, 폭발 대신 타이밍을 택했다. 그의 농구는 다시 설계되었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이 미네소타에서의 50점 경기였다. 부활이라기보다 증명이었다. 로즈는 여전히 NBA 선수였고, 여전히 경기를 지배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커리어 후반의 로즈는 스타가 아니었다. 대신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을 아는 베테랑이었고, 경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선수였다. 가장 빠르게 피었던 흑장미는 그렇게 천천히 저물어 갔다.
<시카고는 기억을 선택했다>
시카고 불스는 지난 1월 25일, 보스턴과의 홈경기에서 로즈의 등번호 1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마이클 조던(23번), 스카티 피펜(33번), 제리 슬로언(4번), 밥 러브(10번)에 이어 구단 역사상 다섯 번째였다. 숫자 1번. 최연소 MVP의 번호이자, 한 도시가 다시 꿈을 꾸게 했던 상징. 우승 반지의 개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록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가장 높이 올랐던 순간보다, 가장 아프게 내려왔던 시간을 함께 견뎌낸 선수에 대한 도시의 답장이었다.
그날, 불스는 셀틱스를 상대로 114-111 승리를 거뒀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케빈 허터의 위닝 3점슛이 림을 갈랐고, 체육관은 환호로 뒤덮였다. 마치 그날의 승리가 로즈를 위해 준비된 장면처럼 보였다. 그의 어깨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기 위한, 늦은 답장 같았다.
데릭 로즈는 시카고에서 가장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기대를 안고 등장했고, 가장 긴 시간을 노력한 선수였다. 그래서 1번은 더 이상 불리지 않는다.
그 번호는 이제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는 표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리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의 NBA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선수들이 있다. 누군가는 아직 전성기를 향해 달리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데릭 로즈의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그 다음 페이지를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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