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Jaegwang(박재광)

[ISSUE No.2] Park Jaegwang(박재광)

박재광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A. 안녕하세요. 해외 출판 만화를 중심으로 광고, 라이브드로잉, 일러스트 등, 그림과 관련된 일은 모두 하는 슈퍼애니 소속 작가 박재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세계적인 드로잉 작가 ‘김정기’와 같은 스튜디오 슈퍼애니 소속이다. 슈퍼애니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A. 세계적인 드로잉 작가 김정기 선생님은 저의 미대 입시 선생님이시기도 했고 아직도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주시는 분입니다. 슈퍼애니 대표님과 대표작가인 김정기 작가님이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하시면서, 실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여 섭외하고 다양한 작가들과 관계를 쌓아나감과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지금의 슈퍼애니라는 창구를 만드셨습니다. 현재 슈퍼애니는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유명 아티스트들이(약 60명) 소속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계약적인 관계보다는 일종의 크루 같은 스튜디오입니다. 덕분에 유명 작가님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Q. 그림을 그리게 된 시작점에 대해 궁금하다.

A. 제 또래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드래곤 볼’ 영향이 가장 큽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였고, 여러 만화를 찾아서 읽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처음 기억나는 저의 그림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린 과학 상상화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으로 담임선생님께 칭찬받으면서 딱히 잘하는 게 없었던 저에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또한 6학년 때는 특이한 담임선생님(당시를 떠올리면 시대를 앞서간 대단한 교육자셨습니다)을 만나 생각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로 발명 만화 그리기 지역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기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작은 성취들을 이루며 많은 자신감을 얻었고, 그로 인해 만화가라는 꿈은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웃음)

Q.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된 이유 또한 궁금하다.

A. 학교에 한두 명은 항상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이 있지 않나요. 그게 저였습니다. 초중고 시절 항상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고, 세상에 나와보니 대단한 사람 천지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나 운동 같은데는 승부욕이 별로 없었는데 그림에 대한 승부욕은 엄청났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혹은 더 잘 그려서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계속 그 과정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잘 그리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된 이유는 딱히 꼽을 게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태어난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제 목표는 꾸준히 발전해나가면서 오래도록 그림을 업으로 하는 것입니다.

Q. 해외 만화를 막론하고 국내에서는 라이브드로잉, 일러스트, 광고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성격이 다른 분야의 작업들을 본인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과정이 있다면?

A. 사실 오래 작업 활동을 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웃음) 제 그림이 다양한 작업에 쓰일 수 있는 이유는 만화를 기반으로 사실적인 드로잉 스타일의 작업을 하다 보니 한 장면을 그려도 이야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필요한 광고, 라이브드로잉, 만화, 일러스트 등의 다양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평소에 자료를 습관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하는 편입니다. 그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이미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모두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국내외 작가 그림, 영화, 패션, 타투, 피규어 등 평소에 관심 있는 것들을 머릿속이나 핸드폰, 컴퓨터 등에 차곡차곡 수집하고 필요에 따라 꺼내어 시간을 들여 그림 스킬에 따라 풀어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요점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그림에 관련된 무언가를 습관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의 일대기 또는 국가 기관, 기업 관련 일을 하면, 해당 단체의 역사 등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나 자료들을 받아 자연스럽게 공부가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그것들이 제 그림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떤 분야를 특정하기보다는 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Q. 최근 DC코믹스가 글로벌 합작 프로젝트 <배트맨 : 더 월드>를 진행했고, 14개국의 작가진 중 국내에서는 박재광 만화가가 작업을 진행했다.

A. DC 코믹스의 국내 독점권을 <시공출판사>가 갖고 있습니다. 이미 DC 코믹스, <시공출판사>와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 해오던 와중에 배트맨 : 더 월드 이벤트에 대해 제의가 들어왔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배트맨이라니! 어렸을 적 버킷리스트에 DC, MARVEL과 작업하기가 있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만 즐거웠고, 막상 작업을 마주하니 배트맨이라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팬덤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국적인 것을 세련되게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부담이었고 작업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DC코믹스 전문 번역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신 전인표 작가님의 전문적이고 촘촘하며 찰진 구성의 시나리오와 김정기 작가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압도되는 그림으로 협업해주신 덕분에 부담을 덜고, 만족스러운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프랑스 글레나, 델쿠르 출판사와의 만화 작업 및 국내 라이브드로잉, 일러스트, 광고 등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작업을 하는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을 것 같다.

A. 제가 만화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출판 만화할 때는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국가별로 출판 시스템이나 만화 연출 방향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고려하며 작업합니다. 출판 만화뿐만 아니라 라이브드로잉, 광고, 일러스트 등 작업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단 하나입니다.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일을 제안하기 위해 저를 선택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열심히 발품 팔면서 자신을 어필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선택은 상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나의 몫으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다가 도달한 결론은 스스로 잘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취향, 노력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뿐만 아니라 현업 작가들이 봐도 진짜 ‘잘’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림이 어렵고, 실력이 향상된 느낌이 들 때 매우 즐겁습니다.

Q. 지난 작업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업물이 있다면?

A. 모든 작업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물이라면 제 졸업 작품이었던 <연어>입니다. 할머니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한 만화로, 당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웹툰으로 향하고 있던 시기라서 저 또한 졸업 작품으로 웹툰 창작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현재 슈퍼애니 대표님께서 “너는 남들과 다르게, 그냥 네가 잘하는 걸 해봐라”라고 하셔서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출판형식의 수작업 만화를 진행했습니다. 그 작품은 졸업 작품으로 통과함과 동시에 제13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현재 프랑스, 미국 출판 만화와 다양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데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연어>는 아주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여담으로 졸업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 학교 복도에는 <연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정부X박재광 작가]

Q. 프랑스 단편 만화 ‘킬리워치’, 장편 만화 ‘코난’ 등을 출간하였다. 해외 출판 만화의 수요에 비해 국내 시장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다. 국내 만화가로서 해외 만화 시장과 국내 만화 시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프랑스 만화 시장을 좋아하고 정식 데뷔까지 하게 된 이유는 프랑스 만화에 대한 첫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1년 내내 지역별 또는 동네별로 열리는 크고 작은 만화 축제, 그리고 조부모, 부모, 어린 자식들까지 모두 각 연령대에 맞는 만화를 즐기고, 각자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두세 시간씩 기다리는 모습은, 제가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보았던 어른들이 만화를 대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굉장히 부럽다고 느꼈고, 감명 깊었습니다. 물론 현재 만화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 만화 문화가 더 다양해지고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요적 측면에서는 드넓은 만화 시장에 속해 활동하는 작가로서 양 시장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국내 만화 시장은 현재 출판 만화보다는 웹툰이 주류입니다. 웹툰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고, 또한 산업의 규모와 웹툰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크고, 세계에서 한국의 콘텐츠 영향력도 더욱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주류였던 출판 만화 시장 또한 웹툰 쪽으로 시장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고, 웹툰 작업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편입니다(실제로 웹툰 제의가 몇 번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현재 해외 출판 만화 시장에서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다행히 해외 출판 시스템이 잘 맞기도 합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한쪽으로 치우쳐 출판시장이 아예 사장되는 것보다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서 출판 만화도 더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저 같은 작업을 하는 작은 작가들도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Q. 많은 작업들 가운데 만화만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

A. 사실 만화는 정말 힘듭니다. 물론 만화뿐만 아니라 어떤 작업이든 모두 부침이 있고 힘들겠지만, 만화는 정말 지루한 작업입니다.

라이브드로잉, 일러스트 작업의 경우 양이 한정적이고 즉각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만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도 많고 완성할 때까지 꾸준히 시간을 쓰는 일이다 보니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낸 후 완성된 원고를 보며 스스로 ‘이건 완성도도 있고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 때 어떤 작업보다 만족도가 높습니다. 웃기죠. 라이브드로잉, 일러스트 작업들이 작업시간 대비 금전적으로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장면과 그림이 어우러져 이야기로 읽히며 얻는 만족감은 다른 작업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림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더라도 만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꾸준히 말하는 이유는 만화 자체가 저에게는 더 재밌고 값진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Q. 사실적인 인체 드로잉 표현과 마카를 활용한 작업이 많다. 자연스러운 인체 드로잉과 마카라는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함에 있어 박재광 님만의 몇 가지 팁이 있다면?

A. 아주 쉽습니다. 오랜 기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숙달하면 됩니다. 또한 일단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예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재료의 이해나 표현이 어느 정도 숙련되었고, 기본기가 생긴 후 재료는 자기에 맞게 표현해내는 도구로 사용하다 보니 특별한 팁 또는 노하우라고 말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저는 ‘관찰’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스킬과 팁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싶은 것,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알고 싶은 것 등 관심을 가지고 많이 보고, 그리고, 저장해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된다면 그다음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Q. 그림을 그리는 작가 또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무엇이 있을까?

A. 앞서 말씀드렸듯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찾아주는 곳이 많은 것도 좋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작가 개인으로써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항상 어떻게든 더 ’잘’하려고 노력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쪽 일을 평생 하기로 마음먹었다면요.

Q. 그림을 그리는 작가 또는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 아직 저도 길 위에서 발버둥 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입장에서 조언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같이 이 길을 가는 동료로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 일을 막 시작한 사람들, 전공으로 택한 사람들,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 모두, 지금 걷고 있는 여기가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잘 가고 있는 건지 불안할 때가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계속 나아가셔야 합니다.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다.” <머털도사>, <임꺽정>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 이두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결국 진득하게 앉아 성실하게 그려야 한다는 뜻으로, 오래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따금 찾아오는 불안에서 헤매게 됩니다. 결국 계속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는 뜻이겠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저희 매거진에서 ‘FAKE’라는 의미는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하였다. 박재광에게 'FAKE'란?

A. 잘 완성된 결과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나의 ’FAKE’가 있다면, 100%의 결과물처럼 보이기 위해 항상 모든 일을 120%, 140%로 하려는 ‘FAKE’를 씁니다.

농구에서 페이크라는 것은 슛을 잘 넣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동작입니다. 슛을 잘 넣는 연습도 중요하고 득점률 또한 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슛 못지않게 페이크 동작 연습이나 계산이 철저히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동작이 진심으로 슛을 넣기 위한 것이라고 상대를 속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슛보다 페이크 연습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건 그 이면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제가 그림에서 사용하는 ‘FAKE’는 제 작업물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100% 좋다고 느끼게 하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120%, 140% 더 노력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그런 ‘FAKE’가 저를 항상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