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영화 속 그 선글라스, <올리버 피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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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은 단순한 시력 교정 도구를 넘어, 이제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제2의 얼굴’이라 불린다. 이처럼 안경은 ‘보는 기능’을 넘어, ‘보여지는 방식을 설계하는 아이템’으로 진화해왔다. 단순히 개성 있는 디자인이나 패션 요소로 소비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자신의 철학과 취향을 담아낼 수 있는 브랜드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실제로 수트 한 벌보다 비싼 안경테를 구매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만큼 이제는 멋스러운 외형뿐 아니라, 편안한 착용감, 우수한 내구성과 디테일, 얼굴형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인체공학적 디자인까지 두루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며,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가 착용한 브랜드로도 잘 알려진, 조니 뎁, 제이크 질렌할, 제프 골드블럼 등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올리버 피플스(OLIVER PEOPLES)’이다.

<익명의 아름다움에서 피어난 절제의 미학>
'올리버 피플스'는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되었다. 창립자인 '래리 레이튼(Larry Leight)'은 1987년, 캘리포니아 헐리우드의 한 빈티지 상점에서 우연히 한 상자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로고 하나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경 프레임들이 담겨 있었고, 유행과는 무관하지만 단정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체불명의 안경들은 곧 브랜드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올리버 피플스'는 브랜드를 과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프레임 어디에서도 쉽게 로고를 찾을 수 없고, 컬러와 형태 또한 시선을 끌기보다 착용자의 분위기 속으로 조용히 녹아드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개성을 덮기보다는,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돕는 안경, 이것이 바로 '올리버 피플스'가 추구하는 정체성이다.

이러한 철학은 디자인 전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빈티지에서 영감을 받은 클래식한 라인과 티타늄 소재의 얇은 프레임, 그리고 붉은색, 보라색, 옅은 그레이 등 은은한 틴트 렌즈는 브랜드만의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완성한다.
특히 틴트 렌즈는 착용자의 인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개성과 정체성을 한층 더 섬세하게 부각시킨다. 프레임은 대부분 일본과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이 깃든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며, 고품질 아세테이트와 금속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 안경들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는 하나의 오브제로 여겨진다.
디자인뿐 아니라 착용감에도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올리버 피플스'는 안경사와 의사가 함께하는 독특한 협업 시스템을 운영하며, 시력 보호와 피부 자극 최소화는 물론, 인체공학적 균형을 통해 장시간 착용해도 편안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철학과 품질 덕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빌 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올리버 피플스'를 즐겨 착용해왔으며, 그들의 이미지 속에서 이 브랜드는 단순한 안경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로 작용해왔다. 즉, '올리버 피플스'는 단순한 아이웨어를 넘어, 개인의 태도와 철학, 세계관을 담아내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빛난 프레임>
'올리버 피플스'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데에는 '영화'라는 매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순한 아이웨어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미학을 드러내는 영화적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올리버 피플스'는 스크린 속에서 더 깊이 있는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 Gregory Peck (OV5186)]
1962년 개봉한 영화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Harper Le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인종차별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낸 미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배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은 극 중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극장 개봉 50주년을 앞둔 몇 년 전, '올리버 피플스'는 그레고리 펙이 영화 속에서 착용했던 상징적인 안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그의 아들 '앤서니 펙(Anthony Peck)'과 함께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Gregory Peck (OV5186)’은 복고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으로, 영화 팬들과 안경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세테이트 소재로 제작된 이 안경은 지적인 인상과 절제된 멋을 동시에 담아내며, 브랜드의 미니멀하고 빈티지한 미학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이 되었다.


[파이트 클럽(Fight Club) - OP- 523 / Aero 54 / Sunset]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1999년 영화 〈파이트 클럽〉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란과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파격적이고도 철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시대의 컬트 클래식이다.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Tyler Durden)'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관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는 극 중 총 3개의 '올리버 피플스' 제품을 착용하며, 반항적이면서도 세련된 캐릭터의 정체성을 강렬한 시각적 언어로 완성해냈다.


01. OP- 523
일명 ‘타일러 더든 선글라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얇은 메탈 프레임과 눈썹을 덮을 만큼 넓은 레드 틴트 렌즈는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더하며, 타일러 더든이라는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이 선글라스는 이후 올리버피플스를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02. Aero 54
앞서 소개한 OP-523 모델과 마찬가지로, 핏빛 렌즈가 인상적인 Aero 54 모델 역시 타일러 더든이 착용한 아이템이다. OP-523보다 렌즈 크기는 다소 작지만, 여전히 대담한 비주얼과 유려한 메탈 프레임이 조화를 이루며, 세련되면서도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타일러 더든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담아낸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브래드 피트'가 영화 촬영 이후에도 이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며, 렌즈를 초콜릿빛으로 교체해 사적인 자리에서도 즐겨 썼다는 사실.


03. Sunset
이번에도 어김없이 붉은 렌즈가 인상적인 선글라스를 착용한 타일러 더든. 이전 모델들과 Sunset의 차이점은 렌즈가 물방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 은색 프레임이었던 것과 달리 이 모델은 브러시드 골드 컬러로 마감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올리버 피플스'의 제품들은 타일러 더든이라는 캐릭터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완성시키는 핵심적인 스타일링 장치로 활용되었다.
아쉽게도 해당 모델들은 이미 단종된 지 오래이며, 간혹 빈티지 아이웨어 숍이나 개인 수집가를 통해 정품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 가격은 최소 1,200달러 이상에 달하며, 대부분 중고 제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파이트 클럽> 개봉이 약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모델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타일러 더든의 스타일을 찬양하는 댓글들이 SNS에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타일러 더든이라는 상징적인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아메리칸 싸이코 American Psycho – O'Malley OV5183 1011 RAINTREE]
2000년 개봉한 〈아메리칸 싸이코〉는 '브렛 이스턴 엘리스(Bret Easton Ellis)'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영화로,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이 연기한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Patrick Bateman)'은 뉴욕 월스트리트의 엘리트이자, 이중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극 중 그가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올리버 피플스' 제품은 ‘O'Malley OV5183 1011 RAINTREE’ 모델. 얇고 둥근 형태의 이 안경은 반투명한 호박색 줄무늬와 짙은 갈색이 섞인 거북이 등껍질 무늬를 모방한 아세테이트 소재로 제작되어,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자아낸다.
이 안경은 겉으로는 완벽하고 세련된 외모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에는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본성을 숨기고 있는 베이트먼의 캐릭터성을 시각적으로 부각시키며, 그의 위선적인 완벽주의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올리버 피플스의 영향력>
이처럼 '올리버 피플스'의 안경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영화 속 캐릭터를 재현하고, 캐릭터의 내면과 상징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시각적 장치로 활용된다. 특히 앞서 소개한 세 편의 영화는 '올리버 피플스'가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닌 이들을 위한 브랜드인 '올리버 피플스'. 강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조용히 스며들고, 과장된 표현보다 절제된 미학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초월하며, 존재를 앞세우기보다는 착용자의 개성을 빛나게 하는 철학을 담아냈다.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올리버 피플스'를 사랑하는 이유도 단순히 ‘멋’ 때문만은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도, 일상의 순간 속에서도 무게감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스며드는 존재감, 바로 그것이 '올리버 피플스'가 지닌 진짜 힘이다.
Editor / 노세민(@vcationwithp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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