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Coming and Going》

Coming and Going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장면을 기억하게 될까. 100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안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남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장면의 인상일 때가 많다. 창가에 들어오던 빛, 식탁 위의 물건, 누군가의 표정처럼 사소한 장면들이다.

시간이 흐른 뒤 삶을 돌아보면 거대한 사건보다 이런 이미지들이 더 오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대신 파편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떠오른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장면들을 평생에 걸쳐 기록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삶을 설명하는 책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짐 골드버그의 사진집 <Coming and Going>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기록해왔다.  한 사람의 삶이 지나온 시간을 사진과 메모, 폴라로이드와 기록의 조각들로 엮어낸 이 작업은 사건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삶의 기록에 가깝다.

ⓒgoldbergjim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계>

다큐멘터리 사진은 오랫동안 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시각적 언어로 기능해왔다. 사회적 문제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강력한 매체로서 사진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가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다는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이야기를 선택하고 배열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고, 피사체는 종종 그 이야기 속에서 해석되는 존재로 남겨졌다.

결국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사진가가 바라본 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현실을 보여주는 매체이면서도, 특정한 시선에 의해 구성된 서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짐 골드버그식 다큐멘터리>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텍스트’는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쓰이기보다 감정적 반향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일방적 재현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와 함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타자의 말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진 위에 남겨진 문장들은 때로는 고백처럼 읽히고, 때로는 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텍스트는 사진이 전달하는 의미를 단순히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로 인해 그의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직접 새로운 맥락을 생성하기도 하고, 기존의 맥락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적인 구조를 뒤흔든다. 사진가의 시선이 모든 의미를 결정하는 대신,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짐 골드버그는 일방향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규범을 전복시키고, 감상과 해석의 주도권을 온전히 관객에게 넘겨주었다.


<사진집이라는 형식>


짐 골드버그의 작업은 한 장의 사진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사진집이라는 형식 안에서 비로소 온전한 구조를 갖는다. 사진과 텍스트, 낙서와 메모, 폴라로이드와 인쇄된 이미지들은 책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리듬으로 배치된다. 이미지들은 연대기적으로 정리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배열된다.

이러한 구조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삶을 시간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특정한 장면과 감정들이 서로 다른 시점에서 불쑥 떠오르며 우리의 시간을 구성한다. 골드버그는 이러한 기억의 구조를 사진집이라는 형식 속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


<타인에서 ‘나’, 그리고 ‘우리’>


그중에서도 책 <Coming and Going>은 짐 골드버그가 타인의 서사를 비추고, 삶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 방식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전까지의 작업이 사회적 약자나 주변인의 삶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 책에서 그는 그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옮겼다.

골드버그는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기억을 폴라로이드로 촬영하고, 사진 위에 또 다른 사진을 덧붙여 복합적인 이미지 구조를 만들며 서사를 파편화했다. 이러한 비연속적인 병렬 구조는 삶을 이루는 우발성과 불가피함을 드러내며, 굴곡진 시간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이의 탄생. 성장해오는 딸, 그녀의 흔적이 스민 물건들. 부모의 죽음. 결혼과 이혼 그리고 새로운 사랑. 격렬하고도, 완만했던 1980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록들.

촬영보다는 삶을 수집하는 데 가까운 그의 작업 방식은, 기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골드버그는 이것을 삶의 경험적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며, 가장 보편적인 시각적 언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초상을 말하고 있었다.


<보편적인 삶의 초상>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사를 기록한 작업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골드버그가 기록한 장면들은 결국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시간의 일부이기도 하다. 가족과의 관계, 사랑과 이별, 삶의 시작과 끝.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는 과정 속에서 흘러간다.

그래서 《Coming and Going》을 보고 있으면 특정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기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일부를 다시 바라보는 느낌에 가깝다. 짐 골드버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결국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시간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개인적인 기록이 결국 가장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