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s Young(윤지영)

Whys Young

청춘을 담아내는 데 윤지영만큼 탁월한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나의 정원에서>로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그녀가 2년 만에 새로운 EP <시지프 신화>로 돌아왔다. 미성숙함을 인정하고자 했던 첫 EP <Blue bird>를 시작으로, 미숙함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하나의 정답에 도달했다고 믿었던 <나의 정원에서>, 그리고 그 확신에 균열이 생기며 비롯된 부조리를 담아낸 <시지프 신화>에 이르기까지. 윤지영은 결과에서 과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불완전한 청춘 그 자체를 비료 삼는 가장 진솔한 뮤지션을 만나볼 참이다. 이어질 내용은 기어코 실존한 그녀가 팬들에게 건네는, 이토록 애틋한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다.

Whys Young / ⓒfake magazine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EP앨범 <시지프 신화>로 돌아온 뮤지션 윤지영이라고 합니다. 영문 활동명으로는 ‘Whys Young’이고요.


Q. 최근 영문 활동명이 ‘Yoon Ji Young’에서 ‘Whys Young’으로 바뀌었다. 계기가 무엇인가.

A. 윤지영을 영어로 표기할 때, 그냥 알파벳의 긴 나열처럼 보이잖아요. 아무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이름이라는 게 조금 이상했어요. 노래를 듣지 않아도 먼저 닿는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뜻을 가진 영어 이름을 만들게 됐어요. 제 나름대로 의미를 한번 부여해보고 싶었죠.

Q. 최근 발매한 EP앨범 <시지프 신화>를 기념한 단독 공연을 마쳤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A.
현장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어두웠어요. 드레스 코드도 블랙이었는데, 다 같이 옷을 맞춰 입으면 스스로 인지하지 않아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았어요. 조명도 일부러 낮추고, 공연 전에 트는 배경 음악도 굉장히 어두운 노래로 골랐었죠. 저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꼭 신나고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로 공연을 함께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실제로 공연 중에 호응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가라앉아 계셨었죠. 저는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았고요.


Q. 가라앉은 분위기가 되려 좋았다니. 의외다.

A.
이번 앨범의 내용과도 연관이 있고, 사실 제 공연은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분위기가 늘 다운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그 상태 자체를 즐기면서 한 번쯤은 제대로 대화해 보고 싶었거든요.

윤지영 (Whys Young) - 1 Chance (Official Lyric Video) / ⓒyoutube

Q. 윤지영의 디스코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각각 앨범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져있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주인공을 마주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윤지영에게 ‘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A.
앨범을 그렇게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동했어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를 성장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고, 그냥 흘러간다고 느껴왔어요. 사실 ‘성장’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거창하게 느껴져요. 그냥 나이를 먹어간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아주 자연스럽게요.


Q. 이번 앨범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

A. 앞서 언급해 주셨듯, 사실 첫 EP <Blue bird>부터 첫 정규 앨범 <나의 정원에서>, 그리고 이번 <시지프 신화>까지 앨범 소개글이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어요. <Blue bird>에서는 나의 미성숙함을 인정했고, <나의 정원에서>에는 20대에 겪는 혼란과 어려움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어요. 특히 <나의 정원에서>를 마칠 때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죠. 노래들도 비교적 희망적인 방향이었고, 앨범을 ‘정답을 찾았다’는 방향으로 끝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앨범을 내고 난 뒤 지금에서는 정답 따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원했던 완벽한 모습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게 됐고요. 동명의 알베르 카뮈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는 ‘부조리’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고, 그 감정에서 이번 앨범이 시작됐어요.

Whys Young / ⓒfake magazine

Q.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역시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고 말하듯, 이번 앨범 역시 마냥 염세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부조리함을 의식한 상태에서 앨범이 시작됐다’는 말은 심지어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A.
사실 희망을 캐치하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만드는 입장에서는 희망 같은 활기찬 키워드를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요. 저에게는 오히려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염세적인 감정에 더 가까웠어요. 제 앨범 안에는 분명히 행복이 없었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그 해석도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웃음)


Q. 이번 앨범 커버가 특히 예쁜 것 같다. 어떤 이미지를 토대로 구상하게 되었나.

A.
연약함을 담고 싶었어요. 왜 〈나의 정원에서〉에서 했던 다짐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고 되돌아오는지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전에 당당함이나 희망을 표현하려고 했던 콘셉트들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제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를 찾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옷도 내추럴했고, 카메라도 바라보지 않았고, 공간 역시 광활한 자연 속에 그냥 한 인간으로 서 있는 느낌을 의도했어요.

Q. 지금의 윤지영이라는 아티스트를 규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순간이 있을까.

A.
음악 자체를 접한 건 정말 어렸을 때부터였어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비롯해,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사춘기 즈음에 대중음악의 재미를 알아버린 거예요. 제가 라디오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밤새 라디오를 들으면서 심야 코너에서만 나오는 희귀한 곡들을 접했어요. 그때 이런 음악도 있구나 싶었고, 언젠가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작곡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지금의 윤지영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것 같아요.


Q. 노래에 건반이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어릴 적 클래식을 배운 영향일까.

A.
맞아요. 그런데 한동안은, 특히 〈Blue bird〉 앨범까지는 기타로 하는 음악이 더 멋있게 느껴졌어요. 근데 기타는 제가 피아노보다 잘하는 악기가 아니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잘 안 나오더라고요. 결국 제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제일 멋있고, 제일 좋은 음악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은 피아노를 사랑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Q. 앨범 발매 전, 선공개곡을 <차원론>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A.
그간 소속된 회사도 나왔고, 활동명 역시 달라졌어요. 이미지적으로도 변화가 많았던 만큼, 그 변화가 팬들에게 너무 급진적으로 닿지는 않기를 바랐어요. 첫 번째, 두 번째 트랙인 <1 Chance>와 <Hollow Face>는 평소 제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의 트랙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사가 영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비교적 기존의 윤지영과 익숙한 곡을 먼저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서 <차원론>을 선공개했죠.


Q. 첫 정규 앨범 〈나의 정원에서〉가 평단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후속 앨범인 <시지프 신화> 작업에 부담은 없었을까.

A. 명확한 두려움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알게 모르게 부담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시지프 신화〉를 시작하기까지 주저한 시간이 꽤 길었죠. 그래서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고, 초연한 상태로 이 앨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만 솔직하게 쏟아내기 위해 노력했죠. 여느 아티스트가 그러하듯.

윤지영 (Yoon Ji Young) - 언젠가 너와 나 (feat.카더가든) *ENG [MV] / ⓒyoutube

Q. 2019년 발매한 싱글 <언젠가 너와 나>의 뮤직비디오 댓글창에는 각자의 사연이 가득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는지.

A.
특정한 댓글 하나가 떠오르진 않는데, 흥미로웠던 건 대부분 이 노래를 좋아하던 ‘누군가’를 계속 소환하신다는 점이었어요. 각자 어떤 사람을 이 노래 안에서 찾고 계시더라고요. 아마 ‘그 사람이 다시 이 노래를 들으러 들어오면 이 글을 보겠지’라는 마음으로 적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대자보처럼 남기신다는 게 신기하고 또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Q. 사람들이 이 곡에 공감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일단 화자가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노래다 보니까, 듣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자아를 이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사가 조금은 뭉뚱그려져 있어서 더 그렇게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노래라서, 아마 전혀 다른 각자의 이유들로 공감하고 계실 것 같아요.


Q. 스스로 윤지영의 입문곡을 하나 꼽는다면.

A.
〈언젠가 너와 나〉인 것 같아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악기들이나 곡의 구조가 그 노래에 가장 잘 담겨 있고, 한글 곡이기도 해요. 이미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고 계셔서 처음 듣기에도 비교적 쉬운 곡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Q. 팀 버튼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언젠가 ‘추구미에 가깝다’ 고도 말한 바 있다.

A.
팀 버튼 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지금의 제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줬어요. 특히 저는 그게 제일 좋아요. 징그럽게 그려놓고 ‘귀여운 거야’라고 포장하는 그 태도가.


Q. 팀 버튼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A.
정말 많은데,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제일 좋아해요. 지금도 핼러윈 때 한 번, 크리스마스 때 한 번씩 매 년 꼭 두 번 봐요.


Q. 오늘 윤지영의 착장에서 팀 버튼 감독의 <웬즈데이>가 떠오른다. 의도한 걸까.

A.
맞아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의도한 거 맞아요.

Whys Young / ⓒfake magazine

Q. 윤지영의 음악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솔직한 편인가.

A.
엄청 솔직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어떨 때는 오히려 음악이 일상보다 진짜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일상에서는 그렇게까지 제 마음을 들여다볼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할 때 드러나는 모습이 더 진짜 같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Q. 너무 솔직해서 부끄럽거나, 후회한 적은 없나. 언젠가 인터뷰에서 앨범을 내자마자 후회했다고 들었는데.

A. 아마 <Blue bird>였을 거예요. 그 시절이 암흑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감정조차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금방 잊어버린 것 같아요. 노래를 쓸 때도 이게 공개될 거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될 거라는 걸 자주 잊어요. 근데 이건 타고난 성향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Q.  윤지영은 좋아해서 꾸준히 모으는 게 있나.

A.
오늘따라 유독 제가 팀 버튼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긴 하는데, 팀 버튼 감독 관련 굿즈를 계속 모으게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팀 버튼 캐릭터로 다녔어요. 슬리퍼도, 수영복도 전부요.


Q. 비비안(윤지영의 반려견)이 질투할 것 같다.

A.
그러게요. 다 들었나 봐요. 갑자기 옆에서 짖기 시작하네요.(웃음)


Q. 윤지영의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붙인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A.
제가 직접 떠올린 단어는 아니고, 언젠가 평론가 조혜림 님과 인터뷰를 하다가 ‘관조적’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생각해보지 않는 단어였는데, 곱씹어보니 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잘 짚은 말인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거리를 두고 드라이하게 표현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가사 방식이나 멜로디의 태도가 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Ji young Christmas (Last Christmas. cover) / ⓒyoutube

Q. 윤지영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오히려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진짜로요. 저를 좋아해 주시는 방식이 되게 좋아요. 그냥 “좋아요”가 아니라, “너무 힘든 시기에 이 노래를 만났어요” 같은 이야기를 해 주시거든요. 그럴 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Q. 윤지영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A. 저는 캐릭터처럼 기억되고 싶은 것 같아요. 영화나 소설 속 인물에게 자아를 투영하듯, 윤지영이라는 존재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요. 같은 음악만 반복하거나, 같은 메시지만 던지는 캐릭터가 아니라 서사가 계속 쌓이고 이어지는 인물로요.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이게 내 이야기인가?” 하고 잠시 착각할 만큼, 그렇게 가까운 존재였으면 해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윤지영이라는 이름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Whys Young / ⓒfake magazine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했다. 윤지영에게 ‘fake’란?

A.
솔직함. 제 음악이 세상에 공개될 거라는 상태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진짜 날 것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낼수록 사람들은 그걸 자기 이야기처럼 착각하면서 듣게 되는 것 같고요. 그게 제일 큰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