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던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어쩌다 무너졌는가

리셀

2020년 국내 시장에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크림’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개인간의 거래와 정가품 구별, 매물 찾기 등 번거로웠던 과정을 해결해주어 돈주고도 못 구하던 스니커즈들을 누구나 쉽게 원하는 신발을 돈만 지불하면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무언가 하나 유행을 타면 모두가 메가 트렌드에 편승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와 스니커즈 붐이 겹치면서 리셀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리셀이 돈이 된다는 걸 안 일반인들도 래플과 드로우에 적극적으로 리셀 시장에 뛰어들어 용돈벌이를 시작했고 비주류 모델들도 두배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뜨겁게 불타오르며 전국을 달궜던 리셀 시장과 가격 거품이 어느샌가 가라앉아 지금은 정가 이하에도 팔리지 않고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오프라인에선 찾아볼 수도 없던 모델들이 매장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어쩌다 무너진 것인지, 스니커즈 문화를 되짚어보려 한다.

스니커 헤드?

문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단어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스니커즈'와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을 뜻하는 ‘헤드’의 합성어인 ‘스니커헤드’, 1980년대 후반 미국 도시 하위문화와 농구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나이키 에어 조던 시리즈 출시와 올드스쿨 힙합 문화가 맞물리면서 단순한 신발 수집가를 넘어 특정 신발의 역사, 디자이너, 협업 배경, 희소성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수집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크림 이전에 나이키 매니아가 있었다.

국내의 스니커즈 시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었다. 서울 각지에 위치한 스니커즈 리셀샵을 통해 사거나, 네이버 카페 ‘나이키 매니아'를 통해 발품을 팔고 원하는 모델을 찾아 직접 판매자와 연락해 거래하는 형식이 주된 거래 방식이었다.

게다가 이 시절의 거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약속 장소는 지하철역 출구였고, 박스와 사이즈, 택 사진을 미리 주고받았고, 가품 여부는 결국 눈과 감으로 판단해야 했다.

가격 또한 수치가 아니라 입소문을 통해 가격이 책정됐다. ‘어디서 얼마에 거래됐더라’ 그래서 값을 아는 것 자체가 정보력이었고, 스니커즈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야 좋은 물건을 제값에 데려올 수 있었다.

만화 <슬램 덩크> 속 조던 1 브레드
크림의 등장과 함께 범고래는 죽었다.

크림의 등장과 동시에 구매와 판매가 쉬워지며 성행한 조던 1 시리즈의 유행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던 덩크를 향해 번졌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컬러웨이검정과 흰색 배열의 덩크 로우 범고래 모델은 두배 이상 리셀가가 붙게 된다.

하지만 나이키는 과열된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매주, 매달 범고래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면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범고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희소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매주 등장하는 색칠놀이에 질려버린 소비자들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근간은 다름아닌 희소성과 멋이다. 하지만 각종 콜라보 슈즈와 색깔만 살짝 바뀐 스니커즈가 매주 발매됐고, 소비자들은 점점 웃돈을 주고 구매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크림의 성장과 함께 슈프림을 비롯한 스트릿 브랜드의 의류들까지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자 전신을 로고와 브랜드로 무장한 이들을 비하하는 밈으로 소비되며 멋까지 잃어버린 스니커즈 문화는 결국 사형선고를 맞게 된다.

모두가 떠나갈 때 스니커 헤드들은 웃고 있었다.

냄비처럼 달아올랐던 모두의 관심이 사라지던 시기 나이키는 오래도록 높은 인기를 끌던 시카고와 같은 대장급 모델들을 복각해서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행의 끝물에 다다랐던 조던이기에 더이상 가격에 거품이 끼지 않았고, 순수하게 스니커즈 문화를 좋아하고, 머릿속에 신발이 가득한 스니커헤드들은 그제서야 웃으며 자신이 원하고 그리던 스니커즈들을 적당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새로이 하입받는 스니커즈들은 여전히  높은 수요와 적은 공급으로 인한 품귀현상 으로 인해 높은 리셀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인 스니커즈 열풍과 리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서비스가 들어오며 여러 과도기를 겪었던 소비자들은 유행에 편승하는 경향 이 줄고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소비를 이어가며 메가 트렌드가 사라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