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제, 작은 브랜드를 입는다

요즘, 소위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무엇을 입을까. 지난 몇 시즌을 지배했던 키워드 ‘조용한 럭셔리’, ‘올드머니’, ‘드뮤어’를 떠올려보자. 이는 미니멀리즘 패션의 주류의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실제로 팔로마 울, 기마구아스, 가브리엘라 콜 가먼츠, 마리암 나시르 자데와 와 같은 브랜드들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더 나아가, 올해 LVMH 프라이즈(프랑스 명품 기업 LVMH 그룹이 주최하는 신진 디자이너 발굴 및 지원을 위한 권위 있는 패션상)의 영예는 정교한 테일러링을 기반의 소시 오츠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모두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험블한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몇 시즌 째 ‘옷 잘 입는 사람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라는 점이다.

타임리스한 실루엣과 흔들림 없는 아이덴티티는 원래 하우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명품 수요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지금, 럭셔리 업계는 흔들리고 있다. 샤넬은 작년 대비 영업이익이 30%나 감소하였고, 버버리는 주가가 70%나 폭락하면서 영국 증시 대표지수 FTSE 100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구찌의 모기업 케어링그룹도 주가는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아시아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시아의 큰 손, 중국의 명품 시장은 20%나 감소하며 13년 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하우스들은 매출을 견인할 젊고 신선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연이어 교체하고 있다. 결국, 최근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평균 재임 기간은 2년 미만으로 급감했다. 이는 과거에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36년의 장기간 동안 재임했던 사례를 떠올려본다면, 2년이라는 기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이제 소비의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그리고 그 흐름은 자연스레 스몰 브랜드로 향했다. 단순히 브랜드 파워로 소비를 자극시키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것. 소비자들은 더욱더 진보적인 가치를 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전통적인 럭셔리 하우스와 스몰 브랜드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스몰 브랜드는 럭셔리 하우스의 브랜딩 이미지에 필적하는 위치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소위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무엇을 입느냐고? 이제부터 소개해 보겠다. 몇 시즌 째 꾸준한 팬층을 확보해 오고 있는 스몰 브랜드들이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자.


마리암 나시르 자데(@maryam_nassir_zadeh)

디자이너 마리암 나시르 자데가 2008년에 오픈한 뉴욕 베이스의 브랜드.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중심으로 시크한 뉴욕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다. 10년 넘게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한 뒤 2021년부터는 남성복 컬렉션도 선보이고 있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실제로 최근에 이곳의 니트를 구매했다.


후미카 우치다(@fumika_uchida)

후미카 우치다가 2014년 설립한 우먼웨어 브랜드로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옷 잘 입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 고품질의 원단, 독창적인 실루엣, 섬세한 뉘앙스에 중점을 둔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니, 잇걸들은 주목할 것.


타이가 타카하시(@taigatakahashi)

2018년 타이가 타카하시가 본인의 이름을 딴 동명의 브랜드 타이가 타카하시. 그는 1920~50년대까지의 빈티지를 수집하며 10대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빈티지를 재해석해서 부드러운 곡선과 날렵한 테일러링으로 완성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T.T의 매력이라면,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기본에 대한 충실함과 정교한 실루엣일 것이다. 2022년, 그는 불과 27세의 나이로 부정맥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팀은 그가 남긴 브랜드의 정신을 이어가는 중. 필자는 작년부터 이곳의 레더 재킷을 눈여겨보고 있다. 상당히 비싸다. 근데 가격은 둘째치고 재고를 도무지 구할 수가 없다. 언젠간 꼭 구매하리라.


요한나 파르브(@johannaparv_)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도시적이고 기능적인 여성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자전거 출퇴근 라이프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인 디테일이 특징이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브랜드.


케이시 케이시(@caseycaseyworks)

2008년 프랑스 브랜드로 파리에 위치한 아틀리에서 장인의 수작업으로 완성한 레디 투 웨어를 선보이고 있다. 섬세한 제작 공정과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미니멀리즘과 기능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감성을 더했다. 미니멀한 디자인에 케이시 케이시만의 독특한 감성이 매력 포인트.


가브리엘라 콜 가먼츠(@gabrielacollgarments)

스페인 출신의 가브리엘라 콜이 전개하는 스페인 기반의 브랜드. 스페인 지중해 역사에서 영감을 받아 영구성과 절제를 토대로 옷을 디자인하며, 계절에 구애 받지 않는 시즌리스 제품을 선보인다. 전통적 시즌이 아닌 ‘시리즈’ 개념으로 컬렉션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현 시점 가장 하이프한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 중이다.


플로어 플로어(@floreflore.world)

2021년 설립된 암스테르담 기반의 여성복 브랜드 플로어 플로어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실루엣과 고품질의 소재가 조화를 이룬 베이식 웨어를 선보인다. 플로어 플로어 옷은 포르투갈에 있는 가족 소유의 공장에서 소재부터 생산까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전개되고 있다.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베이식 웨어를 만나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곳에서.


베이스레인지(@baserange)

2012년 프랑스와 덴마크를 기반으로 미니멀한 의류를 만들어내는 베이식 라인 브랜드. 천연 섬유와 재활용 섬유를 활용하며 생산 각 단계에서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윤리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편안하고 이지한 실루엣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듯했다. 필자 기준, ‘지속가능성’이란 키워드가 가장 어울리는 브랜드.


요코 사카모토(@yokosakamoto_official)

요코 사카모토는 2016년 도쿄에서 시작된 유니섹스 브랜드다. 일본 각지의 공방과 협업해 천연 염색과 더불어 자가 개발 원단을 사용하고 있다. 소재나 실루엣의 성질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하고 있어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는 브랜드 중 하나. 과거 필자는 이곳의 실크 스카프를 구매한 바 있다.


익스트림 캐시미어(@extreme.cashmere)

2016년에 론칭하였으며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리미엄 캐시미어 브랜드다.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중국 내몽고 지방의 최고급 캐시미어만을 재료 삼아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과잉 생산을 피하고자 기능적인 기본 아이템들로 구성된 다계절 컬렉션은 제한된 수량으로 제작되고 있다고. 국내에선 지난 3월 한남동에서 개최된 팝업에서 증정된 팝업 백은 웃돈을 주고 거래될 만큼 국내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다.


오토매틱 포더 피플(@automatic_for_the_people)

필자가 소개하는 브랜드 중, 유일한 한국 토종 브랜드다. 작업복을 매개로 이 브랜드는 유니폼의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디테일을 복원하고, 다양한 직업을 통해 작업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브랜드를 전개한 첫 시즌부터 눈여겨봤던 브랜드인데, 필자의 위시리스트에 항상 들어와 있는 곳. 아직 구매하진 않았으나, 언젠간(아마 조만간) 구매할 듯하다.


소시오츠키(@soshiotsuki)

도쿄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소시 오츠키가 2015년에 론칭한 브랜드.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 철학을 결합한 소시오츠키는 세련된 디자인, 우수한 실용성을 겸비한 남성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2025년, LVMH 프라이즈 수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바잉하고 있는 숍은 아직까진 없다.


리에르(@rierofficial)

프라다, 루이비통 등 메인 럭셔리 하우스에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이탈리아 디자이너 안드레아스 스타이너가 2019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최근 살로몬과 협업한 정글 부츠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높은 품질의 원단, 핏, 색감, 정제된 브랜드 무드 등 뭐 하나 모난 데 없이,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보유 중이다.


팔로마 울 & 기마구아스(@palomawool & gimaguas)

둘을 왜 묶었느냐고? 필자에게 이 둘은 마치 쌍둥이 같은 브랜드다. 두 브랜드 모두 스페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개하는 프로젝트나 전반적인 무드에서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필자가 소개한 브랜드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을 듯하다(아마도). ‘옷 잘 입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트렌드의 최정점에 위치한 브랜드들이니 앞으로의 행보를 눈여겨보시길.






Editor / 김성욱(@wookk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