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일 옷장 속에서 ‘실존주의’를 꺼내입는다

실존주의

그렇게 1950년대, 물질주의와 획일성에 반기를 든 비트닉이 탄생했다. 그들은 보란 듯이 옷장을 전부 검은색으로 채웠다. 현란한 장식 하나 없는 최소한의 옷가지만이 허용된 채로. 올블랙의 차분한 실루엣은 허황된 소비를 따르던 당대 가치를 향한 냉소 그 자체였다. 대중이 좇는 경제적 성공과 정상성의 기준을 당당하게 거절하며, 지적 발전을 중시하는 그들의 무심함을 연출한 것이다.

또한 정장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소재의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격식에 얽매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새까만 터틀넥과 시가렛 팬츠가 대표적인 그들의 유니폼. 이후 이브 생 로랑을 비롯한 디자이너들의 재해석을 통해 비트닉이 계속 호출되면서, 패션계에 실존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


<더욱더 거칠게, 펑크(Punk)>

ⓒviviennewestwood

두 번째 실존주의의 후예가 그 유명한 펑크이다.

1970년대, 영국의 경제 불황을 씨앗 삼아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꽃피운 펑크. 영국 왕실과 체제를 대놓고 비난하는 외침은 젊은 세대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의 좌절에 공감하고, 이를 외면하는 기성세대와 계급 사회를 향해 앞장서 분노해 준 것이 그 이유. 게다가 그 방식은 아주 시끄럽고 폭력적이었다. 비트닉이 침착한 반항이었다면, 펑크 문화는 열정을 포함한 격한 반항으로 실존주의를 퍼뜨렸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빼놓고 펑크 패션을 언급할 수가 있을까. 섹스 피스톨즈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실제 펑크족의 최전선에 있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녀는 노골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을 미학으로 창조했는데, 이는 체제와 규범을 모욕하는 대담한 도발과 같았다.

먼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사회에서 금기로 여기던 섹슈얼리티를 해방하고자 했다. 본디지 팬츠와 라텍스 드레스 등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John Lydon

그다음은 기존 질서를 뒤집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투박한 가난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옷의 찢어진 부분을 감추는 대신 오히려 강조되도록 덧대며 망가진 형태를 드러냈다. 구멍 위에는 노동자들의 값싼 물건인 안전핀을 장식하는 등 공산품을 액세서리로 과시하기도 했다. 철없는 일탈로 치부되던 펑크는 끝내 거리를 장악했고, 상류층만이 누렸던 고급 패션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다시 한번 옷장에 있던 검정 터틀넥과 펑크 티셔츠를 꺼내어보자. 실존주의자들의 반항 가득한 외침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방까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들이 쟁취한 승리는 역사 속에서 생명력을 가지며 패션에 정체성을 선사하였다.

즉, 패션이란 실존주의의 시각적 선언이자 영원한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