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술의 아이러니, <카모플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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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 변화, 미의식은 물론, 문화 전반을 속속들이 담고 있다. 밀리터리 패션은 그러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시다. 1·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본격화된 밀리터리 패션은 군복에서 비롯된 디자인을 통해 남성복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후 단순한 의복의 개량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발전하며 전쟁터가 아닌 우리의 삶에 들어왔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카모플라쥬’다. 카모플라쥬란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색을 만들어 식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위장 혹은 위장 패턴을 뜻한다. 즉, 생존이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카모플라쥬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아이템으로 자리 매김 했다.


<위장의 세계 ‘카모플라쥬’>
얼룩덜룩. 한국인들에게 일명 ‘개구리 군복’으로 불리며, 촌스러움의 상징이었던 카모플라쥬. 당연하게도 카모플라쥬의 종류는 하나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지형이 다르므로, 각국의 군대는 지형적 특성에 맞는 패턴을 채택해 왔다. 같은 듯 다른, 비슷한 카모플라쥬 패턴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 대한민국의 경우, 산과 숲이 많은 지형 특성상 ‘개구리’라고 불리는 우드랜드 패턴이 채택되어 보급된 것이다.
1. 우드랜드 패턴
가장 범용적으로 사용된 패턴은 우드랜드다. 1981년 미국이 처음 개발, 채택하여 2000년대 중반 교체될 때까지, 세계 각국의 위장 패턴으로 활용됐다.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이 개발한 하이랜드 ERDL 패턴을 확대해 제작한 것으로, 세로 방향으로만 반복되는 패턴, 지형적 특성을 고려한 4가지 색의 불규칙한 반복이 특징이다. 기존 패턴을 확대한 우드랜드 패턴은 작은 무늬들이 뭉쳐 보이는 ‘블로빙(blobbing) 현상’을 줄일 수 있었으나, 큰 단점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오히려 대비가 커져 위장 효과가 떨어졌던 것. 사활을 다투는 전장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 이러한 특징이 새로운 패턴으로의 세대교체를 앞당겼다.

이 불완전한 패턴은 패션계에서 더 사랑받았다. 라프 시몬스의 2001 A/W 컬렉션 ‘Riot! Riot! Riot!’에서 선보인 플라이트 재킷이 대표적인 예시다. 상징적인 컬렉션 피스로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자랑하는 재킷을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리한나 등 업계 최전선의 셀럽들이 선택했다는 사실. 위장을 위해 만들어진 카모플라쥬가 가장 눈에 띄어야 하는 패션 업계에서 사랑받은 아이러니한 사례로 기억된다.



2. 텔로 미메티코
우드랜드가 가장 많이 활용됐던 패턴이라면, 텔로 미메티코(Telo mimetico)는 최초, 최장기 타이틀을 보유한 패턴이다. 192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발되어 1990년대 초 사용이 중지되었으니,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위장 패턴으로 사랑받은 것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도입 당시, 전투복이 아닌 텐트 천막 개념의 ‘Telo Tenda’에 활용되었다는 것.

이 위장 패턴이 전투복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나서의 일이다.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독일군이 이를 노획해 사용했는데, 그 부대가 바로 나치의 무장 친위대 ’Waffen–SS’. 다만 텔로 미메티코를 나치의 상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등 다양한 나라가 채택하여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 뿌리는 이탈리아에 두고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회색빛 녹색, 갈색, 황토색이 적절하게 섞여 풍부한 색조를 자랑하던 텔로 미메티코. 반세기를 걸쳐 군의 위장을 책임지고, 이탈리아 예술가 Alighiero Boetti의 예술 운동에도 활용되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사랑받은 패턴으로 기억되고 있다.


<카모 사랑, 스톤아일랜드>
텔로 미메티코가 예술가에게, 우드랜드가 패션계 인사들에게 사랑받은 것처럼, 카모플라쥬를 사랑한 브랜드가 있다. 이탈리아의 스톤 아일랜드. 스톤 아일랜드에게 카모플라쥬는 디자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집요하게 소재 연구에 몰두하며 브랜드의 기술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아이스 재킷에 카모플라쥬를 입힌 ICE JACKET CAMOUFLAGE(1991), 나일론 모노필라멘트를 사용해 내부 구조를 드러내는 mONOFILAMENT CAMO(2002), 지구의 위성 사진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EARTH MAPPING CAMO(2024)까지. 스톤 아일랜드는 모두 최초였다.
물론 스톤 아일랜드의 카모플라쥬는 전술적으로 뛰어나지 않다. 이미 너무나도 발전한 현대전에는 도입될 수 없는 ‘위장’이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 개발과 끝없는 실험 정신을 통해 전장이 아닌 의류계에 혁신을 일궜다는 것은 분명 모두가 아는 사실. 회색 도시 속 인간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의 카모플라쥬란>
위장을 위해 태어난 카모플라쥬는 더 이상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대신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정체성을 표현하며, 때로는 저항과 개성을 상징하는 패턴이 되었다.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자연의 흔적을 빌려온 무늬는, 역설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패턴으로 기능한다. 전장에서 태어나 도시의 거리로 옮겨온 카모플라쥬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새로운 의미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Editor / 권혁주(@junyakimchi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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