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ree(비프리)

비프리

사람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한국 힙합 씬을 이끌어온 베테랑 래퍼, 한국 힙합 역사에 남을 프로듀서, 그리고 레이블 ‘뉴웨이브’의 수장 등. 하지만 이런 거창한 수식조차 필요없을 정도의 이름을 가진 남자도 있다.

B-Free’. 이 자유를 갈망하는 이름은 여유나 과시가 아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마이크를 잡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의 좌표로 달려오고 있는 남자. 누구도 꺾지 못하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타협 없는 고집과 뜨거운 오기로 힙합이라는 바다에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 비프리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B-free. 이 자유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음악하고 있는 B-free, 아니 ‘비 짝대기 프리’입니다.

B-free / ⓒfake magazine

Q. 최근 강북생활체육복싱대회에 나간 것으로 알고있다.

A. 사실 이번 대회는 서울 전체 대회가 아니라 강북에서만 대회라서 토너먼트도 아니었어요. 체육관을 다닌 지 10년이 넘었는데 딱 일주일 준비하고 나간 대회였거든요. 몸이 굉장히 무거웠고 생각처럼 안 된 것 같고 그러네요.



Q. 우승까지 차지했다. 짧은 준비에 비해 결과가 좋았던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

A. 제 마지막 대회가 십 년 전이었어요. 그 전에 두 번 정도 대회를 나가긴 했었는데 이번이 10년만에 다시 운동을 하게 된거에요. 그동안 음악만 하느라 운동을 안했거든요. 다시 체육관을 다녀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나간 첫 대회에 좋은 결과가 있어서 좋네요.

ⓒB-free

Q. 취미로 즐기는 바이크부터 복싱까지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가는 성격인 것 같다. 어쩌면 묵묵하고 성실한 것이 비프리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꾸준함이 주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A. 그렇죠. 뭐라 그래야 되지 본성이라고 그래야 되나, 하나에 꽂히면 그걸 좀 끝까지 집착해야 되는게 있어요. 이게 뭐 절대 완벽주의는 아니고 그냥 이기고 싶은 욕망이 강해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슈퍼 마리오 게임을 처음 할 때도 느낀 게 “이거 무조건 깨야 된다”였어요. 그래서 그게 며칠이 걸리든 얼마나 어렵던 간에 잠도 안자고 열두 시간씩 그것만 했던 기억이 있네요. 꽤 어린나이였는데 그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쉽게 중독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쉽게 무언가에 빠지고 끝을 볼때까지 가는거죠. 한번 시작하면 “올인을 해버려야 되겠다” 이런 느낌. 그래서 오토바이도 그렇고 뭐 복싱도 그렇고 오랫동안 깊게 파고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뭘해도 음악만큼은 오래 안 가네요.



Q. 과거 SNS를 통해 일명 ‘학사모 비프리’라는 이름의 라이브 영상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당시 삶을 대하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듯한데, 지금의 비프리는 어떤 형태로 삶을 대하고 있나.

A. 요즘은 좀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어쨌든 일을 안 하고 있고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어쨌든 저는 그런 일이든 음악이든 마음가짐은 똑같으니까 태도는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아요. 그냥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니까. 음악도 눈 뜨자마자 작업하고 쓰러질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라 기절하기 직전까지 하다가 잠들곤해요. 지금도 매일 그러고 있고요.

노가다론(인력소 Freestyle) - 학사모 비프리 / 김씩씩 / ⓒYoutube

Q. 본격적으로 음악 얘기로 들어가보고 싶다. 데뷔 이후 거의 매년 공백기 없이 정규 앨범을 비롯한 수많은 작업물을 내왔다. 끊임없는 음악적 행보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A. 돈이죠. 제가 하는 음악은 돈이 안 되니까 그만큼 다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앨범을 내는 당시에 최선을 다했으면 그냥 “오케이, 릴리즈한다.”라는 형태로 작업을 하다보니 많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이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당시엔 최선을 다했다라는 마음이에요. 모든 것들이 경험이고 연습이고 하니까, 또 그만큼 열정을 쏟았으니까. “백 원이든 이백 원이든 삼백 원이든 들어와도 그런 것도 쌓이고하면 괜찮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Q. 자타공인. 명반으로 꼽히는 3집 ‘Korean Dream(2014)’부터 7집 ‘FREE THE BEAST(2020)’의 사운드까지 장르적 스펙트럼이 엄청나다. 이런 장르적, 사운드적 변주들의 기원은 어디일까.

A. 제가 샘플링을 하다 보니까 정말 다양한 장르를 들을 수 밖에 없어요. 힙합을 만든다고 힙합만 들으면 질릴 때가 있거든요. 새로운 걸 아무리 찾아도 장르의 한계 때문에 식상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장르에서 느낌을 찾으려고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펑크 소울, R&B, 재즈 같은 클래식한 장르를 듣다 보면 그냥 거기서 제가 흥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좋은 음악은 장르가 어떻건 좋은 음악이니까. 저한테 시동이 걸려요. 샘플링을 할때 ‘루프(Loof)’를 딴다고 그러거든요. 어떤 부분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면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건데, 다른 장르의 노래를 듣다가 제 몸이, 고개가 움직이면 끝이에요. 내가 직감적으로 반응을 했으면 그건 됐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그걸 믿어요.

또 새로운 장르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사운드 클라우드에서도 많이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전  집에 그냥 제 사운드 클라우드를 그냥 하루 종일 틀어 놓고 사는 버릇이 있거든요. 계속 수많은 신인들이나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운드를 들으면서 영감도 받고, 일종의 경쟁심도 느끼려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팔로우 하는 아티스트가 유독 요즘 열심히 한다 그러면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러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제가 좋은 것을 들었으면 “나도 이 커뮤니티에 한 곡을 보태야 되겠다”라는 마음도 드는거죠.

[FREE THE BEAST(2020)]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그런 자극이 되게 많았던 것 같고 그 당시에 사운드 클라우드에 ‘퐁크(Phonk)’라고 샘플링의 위주인데 트랩을 섞는 음악을 하는 디제이들이나 막 프로듀서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같이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런 장르를 다루는 친구들이 우리나라는 많지 않았지만 러시아, 유럽 쪽 친구들은 꽤 많이 있었거든요. 그때 “얘네 너무 멋있다 그냥 나도 뭔가 따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비프리 (B-FREE) FREE THE BEAST BEHIND THE SCENES / ⓒYoutube

Q. FREE THE BEAST 3에 대해 한 네티즌이 “누군가는 가야할 길이었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았다. 어쩌면 대중이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앨범인 것 같기도 한데, 이토록 온전히 자신의 음악을 하게된 계기가 있나?

A. 저는 음악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제가 이곳(scene)에서 할 수 있는게 뭔지를 느꼈어요. 당시에 제가 느끼기엔 대중적인 힙합이 많고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많이 안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소울 컴퍼니’도 그렇고 ‘리오 케이코와’ 형도 그렇고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지만 당시 제가 느끼기에는 “내가 진짜 최대한으로 솔직한 음악을 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있었죠.

그리고 저는 어릴 때 안 좋은 상황으로 미국을 갔다 왔는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진짜 밑바닥의 삶 말이에요. 나같이 진짜 밑바닥인 사람들을 위해 “내가 목소리가 되어 줘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Q. 이처럼 ”모두를 위한 음악이 아닌 들을 사람만 듣는 음악”을 하는 비프리.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사람이 본인의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가.

A. 저같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제 음악은 진짜 이 사회의 가장 바닥층이지만 그래도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음악을 해왔던 거고요.

Q. 비프리의 라이브는 수많은 관객들은 물론 동종 업계의 아티스트 및 관계자까지 그 에너지에 대해 논하곤 한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라이브 공연은 비프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또 어떤 태도로 임하고자 하는지.

A. “그냥 죽여버려야겠다. 무대를 부셔야 되겠다”라는 느낌. 여기서는 내가 아무리 과격하게 행동하고 미쳐도 허락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의 저는 정말 행복과 자유를 느끼는 것 같아요. 또 제가 남들에게 충격을 주는 걸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들 고상하게 음악을 들으려고하면 그 사람들을 좀 불편하게 하던가 흥미없다는 듯이 지켜보는 사람들한테 들이대고 싶어요. 이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겠다는건 전혀 아니고요. 충격과 재미를 주고 싶다는 마음. 되게 복합적인 감정인거에요. 얼마 전에 파티 했을 때도 사실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뻘쭘하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가지고 다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더 잘하려고 해요. 싸이먼디 같이 잘생긴 사람이면 몰라도 저같이 이제 좀 이렇게 험하게 좀 생겼으면 몸으로 떼워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웃음) 제가 가진 장단점을 잘 이용하는 편이죠.

그리고 저를 처음 무대를 세워주신 분이 ‘리오 케이코와’라는 형인데 그 형이 무대를 정말 가지고 놀았어요. 그 형 뿐만 아니라 옛날에 활동하던 형들은 진짜 공연을 잘했어요. 지금 애들이 공연하는 거를 형들이 봤으면 진짜 욕 많이 먹었을 거예요. 하루 종일 놀림당하고 욕 먹고 바보 취급 당했을걸요. 무대가 귀한 걸 그땐 모두가 아니까 다시는 못 섰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봤던 아티스트 ‘DMX’. 그 사람의 폭발적인 모습과 어떤 식으로 무대를 누비고 다녔던 걸 봤기 때문에 제가 무의식적으로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모습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지금과 그때가 연결되는 세대에 있거든요. 두 모습을 다 봐왔기 때문에 제가 무대에서 어떤식으로 해야하는지를 아는거죠. 워낙 터프하셨고 진짜 되게 마초적인 형들이었기 때문에 형들한테 제대로 보고 배웠어요.

B-free / ⓒfake magazine

Q. ’DJ NIEBI’라는 이름의 프로듀서 페르소나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로듀싱에 대한 강한 애착이 보여지는데, 작업물들에서 'DJ NIEBI'라는 예명으로 보여준 프로듀싱에 가장 뚜렷한 철학이 있다면?

A. 아, ‘DJ NIEBI’는 그냥 그때 앨범에만 사용한 거에요. (웃음) 그때는 이름을 뭐로할지 고민하다가 그게 너무 웃겨 가지고 가볍게 오케이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제가 쓰는 프로듀싱 프로그램인 ‘에이블톤(Ableton)’에서 따와서  ‘DJ 에이블어턴(DJ ableaton)’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많은 것들이 실행 가능한 사람” 이라는 뜻이니까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어쨋든 전 래퍼보다 프로듀서를 꿈꾸고 오히려 프로듀서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가하는 음악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을 사람들이 종교처럼 숭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려려면 돈과 명예 이런 걸 다 떠나서 순수하게 음악이 좋고 이거 즐거워야 자기가 즐거워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진짜 간절하게 진실되게 해도 될까 말까니까.

음악이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즐거워야 한다. 행복해야 된다. 자기 표현을 해야 된다.”라는 철학으로 하고 있고 사람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음악을 전파하려고 하죠.

[MV] B-Free - KTM EXC-F (Prod. by DJ NIEBI) / ⓒYoutube

Q. 아티스트를 넘어 '새로운 파도 음반사(뉴웨이브)'의 대표이기도 한데, 비프리가 아닌 대표 최성호가 생각하는 '새로운 파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A. 저는 제 자신을 ‘새로운 흐름’으로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한국 힙합신의 새로운 파도를 일으킨 존재라고 믿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함께 하는 친구들도 그런 마음가짐과 신에 대해 새로운 보탬이 될 친구들만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죠. 그러니까 말그대로 저 자신을 포함한 회사의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파도 그 자체인거에요. 기존의 움직임이 아닌 새로운 움직임으로 신의 큰 흐름을 가져올 친구들이죠.



Q. 씬에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신인들을 초창기부터 알아보고 서포트해왔다. 이들의 잠재적인 포텐셜을 주목하는 것 역시 레이블의 대표로서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비프리만의 기준이 있다면?

A. 음악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어야 돼요. 음악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게아니라 일부터 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러려면 다작이 필수적이죠. 이게 잘 되든 못 되든 그건 나중 문제고 그냥 계속 이 씬을 안고 이 이 씬을 서포트하고 이 문화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저는 계속 그런 사람들을 찾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죠. 이런 이유들은 그 친구나 저를 위한게 아니라 오로지 힙합씬을 위한 거예요. 제가 홍대에서 놀던 20대 때 진짜 멋진 클럽 네다섯 개가 모두 꽉 차 있고, 너나 할거 없이 다 힙합을 틀고 소비하고 있는 그 장면. 저는 그걸 다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거에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모습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봐도 감히 따라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렵게 잘 놀았던 때니까요. 그때 저도 음악을 한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형들이 잘해주고 보살펴주셨기 때문에 저는 그냥 오로지 보답하는 거죠.

Q. 비프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도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음악적 행보가 끝나는 시점에 대한 질문을 하고싶다. 비프리의 음악이 멈추는 날은 언제일까.

A. 음악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이 생긴다거나, 음악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아요. 지금도 제 머릿속에선 항상 그걸 찾고 있어요. 기다리고 있죠.

사실 음악은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거든요. 음악을 하는 순간 세상과 단절이 돼야 되고 나의 감각에 집중해야하니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보니 작업이 끝나고 나면 더 아무도 없어지고 그러는거죠. 그래서 가끔 가다보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지 모를 때도 분명히 있어요. 음악을 한다는 건 즐거운 것만은 아니까요.

그래서 저는 음악을 ‘좋은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하게되는 것도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가족을 위해 충분히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미래를 꿈꾸니까요.



Q. ’B-FREE’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아주 강한 '자유'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순간이 오면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고 느낄 것 같은지? 또 그때의 비프리는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 것 같은지.

A. 돈이 엄청 많아서 시골 같은 데 오토바이 경기장도 만들 때가 오면 엄청 자유로울 것 같아요. 느낌으론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저를 끌고온 모든 영감의 원천은 ‘헝그리 정신’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돈이 들어오면 그냥 다 써버려요. 회사에 투자하든가 동생들한테 다 써버리고 그러는거죠. 그러면 또 힘들잖아요? 그럼 또 다시 이겨내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게 저한텐 큰 자극이 돼요.

근데 저도 모르죠. 돈이 정말 많아지면 어떤 음악을 해야 될지. 저도 한때는 전혀 여유로운 게 아닌데 여유롭다고 제 자신을 착각한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음악들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재미없어요. 여유로운 삶의 내가 자랑하는 듯한 음악이 진짜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마 돈과는 상관없는 태도를 가지려 노력할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은 뭔가를 자랑하거나 과시하는게 아니라 어쨋든 ‘라임 놀이’니까. 돈이 있다고 음악의 색이 바뀌는 작업이 아니라 돈이 많아도 그렇게 풀어가보고 싶어요. 애들한테 새로운 라임을 보여주고 애들은 또 그거에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라임을 쓰고 하는 건강한 경쟁의 방식이 제가 사랑하는 힙합이거든요. “내가 돈이 많아서 어쩌고저쩌고,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이래서 멋있는 사람이야”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아무리 돈이 많아도 뭐 그냥 계속 헝그리한 상태로 제가 좋아하는 힙합을 하고 싶어요.

Q. 곳곳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B-Free’들과 또 다른 ‘B-Free’를 동경하고 꿈꾸는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한다면?

A. “움직여야 된다. 그냥 죽을 때까지 일해야 된다.” 남자는 일을 멈추는 순간 되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좀 잘생기고 그러면 사람들이 빨아주고 불러주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남자가 안 움직이잖아요. 진짜 불쾌하고 민폐 끼치는 존재인거에요. 그러지 않기 위해 죽을 때까지 우리는 가족이나 주변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된다"라는 거죠.

나아가서 그렇게 쓸모없는 시체가 되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 하고 정신과 마음이 항상 건강해야 되는거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 일종의 전투를 준비하는거죠. 우리는 원래가 동굴에서 살면서 나가서 사냥 좀 해오라하면 나가서 사냥하다가 죽든, 살아서 식량을 구해오든 하는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본성을 계속 살려야 되는거에요. 뭐 웃자고 한 얘기지만 결론은 여유 부릴 수 없고 게을러선 안 된다는거죠.

그리고 신기한 게 제가 이 말을 하도 오래 하다 보니까 지금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이제 제가 주변 친구들에게 자극 받고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드디어 세상이 변하긴 하는건지 거의 하늘에 혹은 그냥 벽에다 외치는 것 같던 말들이 이제야 들리는 거 같아요. 이 나라는 부유해 보이고 삐까뻔쩍한 건물들은 많아지지만 오히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저희랑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거죠. 이 사회의 한편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떤 메시지를 듣고 지금 캐치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주변에 있고 그 사람들은 지금 절대 멈추지 않고 있어요. 어딘가에 있는 ‘B-Free’들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잘 살아남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해 보았다. 비프리에게 'fake'란 무엇인가?

A. ‘오기’인 것 같아요. 멋도 없고 진짜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도 내 꿈을 충분히 이룰 끈기가 있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건강한 몸이 있으니까. 어렸을 때 하도 고생해가지고 오히려 이젠 그 ‘고생’을 좀 반기고 즐길 줄 알게된 느낌이에요. “나는 절대 쉽게 안 지겠다. 나는 루저가 아니다. 보여주겠다”하는 오기가 기본값이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