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복수를 사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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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용서보다 복수에 더욱 열광한다
누군가를 미워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든 사적 정의 실현에 대한 갈망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복수심’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감정 중 하나이자, 악한 사람들에 대한 응징의 동기가 되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실제로 복수를 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문학과 예술에 등장하는 복수 서사를 통해 사적 정의 실현에 대한 결핍을 해소해왔다.
복수의 플롯
지난 수천 년간, ‘복수의 플롯’은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일정한 형태로 많이 반복되어 문학과 예술에서 자주 채택되어 왔다. 그렇다면 ‘복수의 플롯’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복수의 플롯’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주인공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범죄로 구성된다. 악랄한 범죄자에 의해 주인공과 그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끔찍한 일을 겪으며, 행복을 빼앗기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단계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의해 주인공이 복수를 계획하게 되는 단계이다. 이때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범죄자를 추적한다.
세 번째 단계는 대결의 국면이다. 범죄자는 주인공에 의해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 관객은 복수의 과정을 통해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 것이 해소되는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일컫는다.
일상을 빼앗아간 옛 동료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영화 <킬 빌(Kill Bill)>, 단 하나뿐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을 통렬하게 소탕하는 <아저씨>, 딸을 납치한 조직에 무자비한 응징을 가하는 <테이큰(Taken)>, 유년 시절 폭력으로 무너진 한 여자가 처절한 복수를 자행하는 <더 글로리> 등, 복수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고전적인 ‘복수의 플롯’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찬욱은
복수라는 요소를 가장 독특하고 탁월하게 사용한 감독, 박찬욱. 흔히 ‘복수 3부작’이라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는 박찬욱이 ‘복수’를 주제로 다룬 일종의 연작 시리즈다.
이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복수라는 감정을 중심 소재로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에서 ‘복수’가 지닌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박찬욱은 과연 ‘복수’를 통해 무엇을 표현했으며, 어떠한 영화적 미학을 드러냈을까.
박찬욱의 복수극은 <복수는 나의 것>으로 시작된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 중에서 세상에 가장 먼저 나온 작품, <복수는 나의 것>. 이 작품은 앞서 언급했던 고전적인 복수의 플롯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프로타고니스트(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 흔히 ‘주인공’이라 일컫는다)가 안타고니스트(작품 속에서 주인공에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인물)에게 응징하며, 이를 목도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류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를 위해 장기밀매업자들을 찾아갔다가 이들에게 사기를 당해 자신의 신장 하나와 돈 1000만 원을 잃게 된다. 결국 류는 누나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유괴를 꾀한다. 하지만 류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된 누나는 회의감에 자살하고, 누나를 묻으러 간 강가에서 유선(유괴된 아이)은 우연한 사고로 물에 빠져 죽는다. 동진은 유선의 아버지로, 류로 인해 유선을 잃었다.
즉, <복수는 나의 것>은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나뉘는데, 류는 장기밀매업자들에 대한 복수를, 동진은 류에 대한 복수를 그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장기밀매업자들을 찾아간 류는 손쉽게 이들 세 명을 살해한다. 그 후, 동진 역시 전기 기술자였던 경력으로 쉽게 류의 애인 영미를 죽이고, 류를 잡는 데도 성공한다.
영화는 류의 집에 가서 류를 기다리는 동진과, 동진의 집 앞에서 동진을 기다리는 류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대결을 예상하게 하지만, 류는 자신의 집 문에서 감전됨으로써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동진에게 사로잡힌다. 류는 어떠한 몸부림과 탈출의 시도도 없이 동진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동진마저 영미의 동료들에 의해 복수 직후 허망하게 살해를 당하며 모든 복수 서사는 막을 내린다.
누나의 죽음과 유선의 죽음을 목도하며 관객들은 류와 장기 밀매업자들의 대결, 류와 동진의 대결을 기대하게 된다. 특히 복수의 플롯의 핵심은 마지막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결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들의 대결은 너무나 허무하다. 그렇다 할 몸 다툼과 피가 말리는 추격전 역시 존재하지 않고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범죄가 시작되어 프로타고니스트가 그를 추적해 나가는 숨 막히는 과정 속에서 마침내 안타고니스트와 대적하여 그를 물리치고 정의를 세운 다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전통적인 복수의 플롯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복수는 나의 것>은 고전적인 ‘복수의 플롯’을 따라가고 있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나와 있다.
‘착한’ 사람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의 플롯 3단계 중, 주인공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행복을 빼앗기게 되는 상황인 1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전체 러닝타임 118분 중에서 동진의 딸, 유선의 죽음이 일어나는 시점이 영화 시작 후 51분경에 일어나니, 1단계가 차지하는 상당한 시간이 실감될 터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 기나긴 1단계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류는 아나운서 이금희를 통해 “전 착한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소개된다. 그는 선천적인 청각장애자이며, 부모 없이 오직 누나와 살고 있는 안타까운 처지임에도 영화에서 류는 길가에 앉은 할아버지의 바지를 입혀주기도 하고, 심지어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간 자리에서는 돌팔이 의사를 대신해 마약 주사를 놓아주기도 하는 순박한 사람이다. 그의 누나는 신부전증으로 신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힘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 류는 수술을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장기밀매업자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현실에 처해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류는 장기밀매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해 신장과 1000만 원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존재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유괴라는 범죄가 죄질이 나쁜 짓임에도 류가 ‘착한’ 유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류는 참 운이 나쁘다.
그렇다면 동진은 어떠한가. 동진 역시 ‘착한’ 사람이다. 게다가 동진은 아내가 없는 남편이며, 그에게는 소중한 딸만이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 동진은 그토록 사랑했던 딸을 잃고 휑한 커다란 집에서 혼자 외롭게 몸부림치는 불쌍한 사람이다. 최반장이 유선의 죽음을 놓고 누구에게 원한 산 일이 없냐고 물을 때, 동진이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착한’ 사람임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동진 역시 참 운이 나쁘다.
프로타고니스트이자 안타고니스트, 붕괴되는 선과 악의 구도
류는 장기밀매업자들에게 복수를 행하고, 동진에게 복수를 당한다. 동진은 류에게 복수를 행하고, 영미의 동료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이로 인해 류와 동진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위치에 놓인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이 상황에서, 관객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철저하게 감정 이입을 배제하게 되고, 영화 속에서 난무하는 복수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착한 사람들은 없다
또한, 영화에서 3분의 1이 넘는 시간 동안 강조되었던 ‘착한’ 사람들이었던 류와 동진이 복수를 행하는 방식에도 쉽게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렵다. ‘착한’ 사람이라던 이들의 복수는 모두 과도하고 지나치다. 류는 장기밀매업자 3명의 신장을 꺼내 씹어 먹었고, 전기기술자 동진은 영미를 전기고문으로 죽였으며,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 류의 아킬레스건을 잘라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때 피해자였던 이들이 행하는 복수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들이 어떤 도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보면서 과연 관객이 이들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결국, <복수는 나의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혼란스럽고 모호하게 만들면서 관객에게 불쾌한 복수극을 체험하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 된다.
이토록 ‘착한’ 사람들의 잔혹함과 모순, 복수심이라는 치졸한 감정 앞에서 남겨진 동물적 감각만이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쳇바퀴처럼 순환되는 구조적으로 어둡고 건조한 복수의 정서적 충격. <복수는 나의 것>에서 드러나는 모든 요소들이 만들어낸 시각적 이미지는, 고도로 정제된 박찬욱만의 미장센이자 세련된 복수 서사인 것이다.
Editor / 김성욱(@wookk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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