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너머의 패션, 우주 영화 속 패션의 미학
SPACE ODYSSEY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대우주의 시대. 우리는 언제나 지구 너머 새로운 영역에 매료되어 있었다. 머나먼 미지의 공간이 무한한 상상을 펼치게끔 만들었기 때문. 특히 인류의 달 착륙 전후로 우주에 닿은 미래를 그려보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그중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여 선보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스탠리 큐브릭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솔라리스‘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작.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두 감독은 모두 의상을 중요시했다. 과거에서 미래로 향한 우주 비행을 배경으로 삼은 만큼, 시간을 관통하는 시각적 감각을 구현해야 했다. 어떻게 의상으로 영화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들의 작품 속에 그 해답이 존재한다.

* ‘우주복’을 다루는 내용이 아니다. ‘우주에서의 의상’을 다루는 이야기임을 유의할 것.
<2001: SPACE ODYSSEY (1968)>

스탠리 큐브릭이 의상 디자이너로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하디 에이미스. 영화계의 괴짜로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스탠리 큐브릭과 달리, 하디 에이미스는 깔끔한 디자인으로 포멀 한 패션을 중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디자이너일 정도로 말이다. 이 둘의 조합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인 셈.
그러나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하던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스탠리 큐브릭에게 가장 미래적인 것은 가장 고전적인 것이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과하지 않은 절제된 아름다움. 이로써 그들은 클래식이라는 공통점으로 손을 맞잡게 된다.

하디 에이미스는 소재에 주목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패턴보다 영화와 어우러질 수 있는 단순함이 그의 주무기였으니. 그는 옷이 가진 최소한의 형식만 남긴 채 불필요한 것을 지우는 작업에 돌입한다. 훗날 인간이 우주를 마주한다면, 무중력의 자유 속에서 몸의 움직임과 감각 같은 본질에 집중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립 슈즈를 신은 우주선 내 승무원과 그립 슈즈의 모양
“문제는 색다르면서도 새로운 원단 기술을 반영하고, 그렇다고 너무 동떨어져서 관객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에게 하디 에이미스가 제시한 것은 당시 옷에 사용되지 않았던 벨크로였다. 그는 우주선의 승무원이 신는 신발의 밑창을 벨크로로 한 일명 ‘그립 슈즈’를 제작했다. 또한 임원의 유니폼에 단추 대신 벨크로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스케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장이 주는 격식과 실루엣은 유지하되 미래 지향성을 한 스푼 첨가한 것.




영화에 나오는 회의실 브리핑 장면을 다시 살펴본다면, 한 참석자가 재킷을 여밀 때 벨크로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획기적임과 동시에 영화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무언가, 깐깐한 스탠리 큐브릭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하는 답이었다.


<Solaris (1972)>

“30년 후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 테니 영화에 우주복을 만들 필요가 없다. “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의상 디자이너인 넬리 포미나에게 한 말
흔히 공상 과학 패션이라 하면 메탈릭 한 광택의 전위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실루엣을 통해 퓨처리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SF 영화 대부분이 차용하는 대표적인 문법이 된 것.
그러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이러한 기존 관습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가 전하려는 주제는 시대와 무관한, 모든 인간이 느끼는 내면의 감정이었다. 미래를 ‘지향’하는 건 결국 종착지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미래를 ’ 초월‘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의상이다. 그에게 옷은 시간을 영원히 정지시켜 주는 시각적 장치와 같았다.



의상 디자이너 넬리 포미나의 작품을 확인해 보자. 그녀는 등장인물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색과 질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인간 심리를 다루는 만큼, 옷에도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필요했으므로.



주인공 켈빈이 우주에서 만난 죽은 아내 하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의상에 사용된 스웨이드는 넬리 포미나가 직접 제작한 원단으로, 유연한 착용감과 동시에 연한 갈색빛을 띨 수 있도록 물감에 희석한 결과물이다.
이는 켈빈이 지구에서 입고 있던 바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같은 원단은 둘 사이 연결 고리로서, 하리가 지구에서의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환상임을 나타낸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크로셰 숄과 원피스의 패치워크도 마찬가지. 서로 다른 조각을 엮어내는 디자인은 하리가 크리스의 파편화된 기억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완전한 하리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눈으로 인식시켜 주는,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표현 방식인 것.

따뜻한 색감과 상반되는 직물의 무게감도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갈색과 초록색은 지구의 색깔로 생명력을 의미하지만, 켈빈에게는 하리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고통일 뿐이다. 도망치듯 떠난 우주에서조차 불안정한 켈빈. 그의 슬픔과 복잡한 감정은, 두꺼운 실과 묵직한 스웨이드와 함께 더 가라앉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우 미묘한 질감을 갖는 것입니다. 전체 작품은 최대한 이성적인 산물이어야 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그동안 SF 영화가 그려온 과장된 실루엣을 걷어낸 순간, 시간은 그 옷 위에서 흐르지 않게 된다. 영화계의 두 거장 모두 반짝이는 은빛 슈트보다 클래식한 의상을 선보이지 않았는가.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은, 본질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감정과 감각이란 인류의 역사가 끝나기 전까지 평생 유효할 테니 말이다. 머나먼 우주에서조차도.
Fake Magazine Picks
웨스 앤더슨이 제작한 단편 영화 같은 광고 6선
YELLOW HIPPIES(옐로우 히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