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인의 손맛, 준야 와타나베와 캐피탈

준야와타나베

옷에도 손맛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오늘날 패션 세계에서, 아직도 천천히 수작업을 하는 이들이 존재하니까.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가 ‘딸깍’ 한 번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지금, 인간의 감각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진정한 장인정신이란 바로 이런 태도이다.

패션계의 장인정신 하면 단연 일본이 떠오를 것이다. 일본의 고유한 문화가 접목된 의복 디자인은 전 세계를 사로잡았고, ‘장인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전통 기법은 누더기를 깁고 덧대는 보로(Boro)일 터. 그러나 같은 음식이어도 가게마다 강조하는 맛이 다른 법. 준야 와타나베와 캐피탈은 같은 보로를 기반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미학을 추구하며 각자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보로가 계승되었을지, 지금부터 두 브랜드의 손맛을 비교해 보자.


<일본의 전통 의복 문화 ‘보로(Boro)’>

먼저 보로(Boro)란, 누더기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일본의 전통 의복 문화이다. 해진 천 조각들을 겹겹이 기워 옷을 수선하는 것. 이러한 문화가 생긴 배경에는 과거 일본 농민들의 생존이 서려 있다. 19세기, 일본 북부 지역에서 새 상태의 옷감은 오직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었다. 땅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에서 면화를 재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농민들에게 수입되는 옷감은 사치품일 뿐. 이들은 어떻게든 기나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가지고 있던 천 조각을 덧대기 시작했다. 즉, 보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찢어진 소매, 구멍 난 무릎, 온갖 부분 위에 계속해서 이어 붙인 흔적은 농민들의 혹독한 고난과도 같았다.

그러나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 가난이라는 현실을 이겨내고 살아간 일본 선조들의 태도는 시간이 흘러 긍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닳고 해진 옷을 끝까지 고쳐 입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삶의 지혜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직물의 배열과 사시코 자수로 수놓은 기하학적 패턴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기 충분했다. 이렇게 보로는 단순한 누더기를 넘어 두 가지 아름다움을 품게 된다. 하나는 시간의 흔적을 증명하는 ‘낡음’의 미학이며,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천 조각과 바느질이 만들어내는 ‘구조’의 미학이다.


<패치워크의 상징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 시절부터 지금까지, 준야 와타나베는 패치워크라는 큰 틀 안에서 디자인을 전개했다. 그에게서 본격적으로 보로가 언급된 것은 2015년 S/S 준야 와타나베 남성복 컬렉션. 여러 종류의 데님과 패브릭이 붙어있는 그의 작품은 마치 완성된 퍼즐처럼 보인다. 각자 다른 조각들이 원래 하나였다는 듯 정교한 모양새를 갖추기 때문. 실제로 패치의 원단과 크기는 의도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사각형과 직선이 반복되는 면 분할의 배치는 철저한 계산의 결과였다. 무작위한 패치워크에 정돈된 질서를 부여한 것. 이와 같이 준야 와타나베는 보로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조각이 모여 하나의 옷을 완성하는 보로의 아름다운 구조를 현대적 언어로 번역했다. 기존의 패치워크가 추가로 덧대는 리폼(reform)이었다면, 그의 패치워크는 형태와 실루엣의 뼈대인 폼(form)으로 작용했다.

이런 방식은 이후 Levi’s 협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기존 데님 팬츠를 해체한 뒤 다른 원단과 결합하거나 여러 개의 데님을 하나의 의복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조립이 아닌 해체 후 재조립의 작업이었던 것. 자세히 살펴보면 각 데님 조각에 원래 속해있던 청바지의 박음질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여러 파편을 연결한 준야 와타나베의 디자인이 보로의 구조를 확장한 것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낡음’의 미학, 캐피탈>

서로 얽힌 직물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축적된 삶이 깃들어있다. 이러한 조상들의 시간을 오늘날 이어가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캐피탈이다. 미국 워크웨어와 데님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 빈티지의 정수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이들의 태도에 존재했다. 캐피탈은 닳고 해진 보로를 결함으로 취급하는 대신, 과거의 전통적인 흔적으로서 그대로 이어가는 길을 택했다. 일본 데님 산업의 중심지인 오카야마현 고지마에 브랜드를 위치시킨 것 또한 존중의 의미와 같았다. 그렇게 장인 정신 그 자체인 낡음의 미학을 옷에 담기 시작했다.

이름부터 당당한 보로 스프링 1st 재킷. 고작 빈티지스럽기 위해 아무렇게나 기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수차례 덧댄 바느질과 색이 바랜 인디고 원단은 여러 세대에 걸쳐 수선된 옷처럼 층위를 형성한다. 패치마다 색감과 마모 상태를 다르게 하며 세월의 깊이를 표현한 것. 그 위를 빼곡하게 수놓은 사시코는 더욱더 수공예적 질감을 만들어낸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적 직물 기술을 현대에 불러온, 하나의 아카이브인 셈이다. 캐피탈은 낡음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뒤집어버렸다. 구멍이 뚫리고, 올이 나갔음에도 견고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패션의 손맛은 이렇게 계승된다>

불균일할지언정, 낡을지언정, 그것만이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옷을 직접 더듬으며 손길을 더하는 과정을 고집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매번 달라지는 손끝의 압력은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이다.




Editor / 김어현(@sonicplast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