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계의 금서 목록

금서

금서(禁書)는 정말 위험한 책인가? 사람들은 일단 금서라 하면 대개 외설적이거나, 체제를 위협하거나, 신성을 모독한 내용을 상상한다. 물론 그 수위 역시도 만만치 않다고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실제로 금지당했던 책들의 내용이 단순히 선정적이거나 불온해서만은 아니었다. 어떤 책은 신의 권위를 흔들었고, 어떤 책은 국가가 감추고 싶었던 기억을 집요하게 적어두었으며, 또 어떤 책은 인간의 욕망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그렇기에 금서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책이 ‘당시 사회의 무엇을 정확히 건드리고 말았음’을, 하지만 그것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었음을 역으로 증명하는 흔적인 셈이다.

결국 금서의 역사는 그저 위험한 책들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끝내 직면하길 꺼려했던 무언가 들의 기록에 가깝다. 어떤 시대는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했고, 어떤 시대는 특정 사상이 기존 질서를 위협할까 경계했으며, 또 어떤 시대는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과 규범을 바깥의 욕망과 충동을 거세게 검열하려 했다. 때문에 금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히 검열의 역사를 훑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안에서, 당시 사회가 가장 감추고 싶어 했던 공포와 불안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금서계의 근본,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의 [소돔의 120일]의 원본 / ⓒwhitehotmagazine

“14세기 팬데믹 속에서 태어난 이야기”

[데카메론 / The Decameron]
저자 : 조반니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

14세기 흑사병의 팬데믹 속에서 탄생한 금서 데카메론. 작품의 내용 역시 흑사병이 휩쓴 피렌체를 피해 떠난 젊은 남녀 열 명이 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집이다. 작품은 성직자의 위선과 인간의 욕망, 사랑과 기만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대담하게 묘사했는데, 다소 진취적인 내용 때문에 훗날 카톨릭 교회의 금서목록에 오르게 된다.

ⓒnewyorker

하지만 [데카메론]이 진정 위협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조롱과 풍자적인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죽음이 도시를 뒤덮은 상황 속에서, 신의 권위보다 인간의 본능과 현실을 지나치게 생생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 의 영화 데카메론(1971) / ⓒmubi

“조선 최초의 금서”

[설공찬전 / 薛公瓚傳]
저자 : 채수(蔡壽)

한국판 호러 서사의 원형. 설공찬전은 죽은 설공찬이 귀신이 된 뒤, 이승의 사촌형제의 몸속에 빙의되어 저승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기이한 구조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조선 최초의 금서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문제는 단순히 귀신이 등장해서만은 아니었다.

ⓒncms.nculture

이야기 속 저승 세계에서는 생전의 삶에 따라 왕조차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고, 폭정을 저지른 임금 역시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세계관이 배경이었다. 이는 절대적인 왕권과 성리학 질서를 유지하던 조선 사회에서 매우 위험한 상상력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조정은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금서로 지정한다. 이 덕분에(?) 설공찬전은 조선 최초의 금서라는 희귀한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
저자 :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출간한 이 책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대화 형식으로 비교한 책이다. 당시 카톨릭은 지동설이 신의 권위와 기존 세계관에 크게 어긋난다고 판단했고, 결국 이 책은 교황청 금서목록에 등재된다. 저자인 갈릴레이 역시도 종교재판 끝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지만, 훗날 이 책의 내용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wikipedia

“책 한 권 때문에 피습까지 당한 사연”

[악마의 시 / The Satanic Verses]
저자 : 살만 루슈디 (Salman Rushdie)

1988년 살만 루슈디가 발표한 [악마의 시]는 이슬람 역사와 그에 따른 종교적 상징을 환상적이고 풍자적 방식으로 다룬 픽션이다. 역사서나 종교 비평서가 아닌, 그저 종교적 상징을 문학적으로 변형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간 후 엄청난 정치, 종교적 파장을 일으킨다.

ⓒreddit

일부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를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인도, 이란 등 여러 국가에서 판매 및 수입이 금지되었다. 이에 더해 이란 최고지도자가 루슈디에게 사형을 요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루슈디는 10년 간 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엔 뉴욕에서 진행한 한 강연 도중, 피습으로 중상까지 입었다고.

Salman Rushdie to release memoir about attack in Chautauqua / ⓒYoutube

“국가를 고발하다”

[수용소 군도 / The Gulag Archipelago]
저자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1973년,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이 발표한 [수용소 군도]는 스탈린 시대, 소련의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폭로한 기록문학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수백 명의 수감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곳의 참혹한 실태를 세세하게 기록했으며, 소련 정부는 이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출판을 금지한다. 원고는 비밀리에 해외로 반출되어 출간되었고, 솔제니친은 결국 소련에서 추방된다.

ⓒpenguin

“체제를 흔드는 위력”

[게 가공선 / 蟹工船]
저자 :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북태평양 게잡이 배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와 폭력을 그린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 선원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 속에서 위험한 노동에 내몰리고, 관리자들은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작품은 자본과 국가 권력이 노동자를 어떻게 소모하는지 노골적으로 묘사하는데, 당시 일본 제국은 이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퍼뜨리는 위험한 내용으로 간주했고, 검열과 탄압의 대상으로 몇 번이나 발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amazon

이후 작가 고바야시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뒤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하게 되는데, 이로서 [게 가공선]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당시 체제의 폭력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게 된다.

고바야시 다키지 / ⓒbungakukan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인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 / Lady Chatterley's Lover]
저자 : D.H 로렌스 (D. H. Lawrence)

귀족 여성인 콘스턴스(코니)는 클리포드 채털리라는 젊은 귀족과 결혼하지만, 클리포드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되며 마음의 병을 얻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사냥터지기인 멜러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 작품은 이 둘의 관계를 통해 사랑, 성, 계급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다. 당시로선 노골적 성묘사와 불륜 설정 때문에 여러 국가에서 외설 문학으로 검열되었다. 특히 1960년 영국에서 벌어진 재판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있는데, 출판사인 펭귄 북스가 승소함으로써 검열되지 않은 판본이 출간될 수 있었다.

ⓒesquire

“감정을 전염시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저자 : 괴테 (Goethe)

1774년 괴테가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청년 베르테르의 절실한 감정을 편지 형식으로 그린 소설이다. 괴테의 풍부한 감수성이 담긴 수려한 문장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베르테르에게 이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동시에 주인공을 모방한 자살 사례, 일명 베르테르 효과가 잇따르기 시작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 금지와 검열 조치가 이루어졌다. 교황청 역시도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 이런 책이 지금 현재엔 청소년 필독서가 되었다.

ⓒwikipedia

“음란물과 문학의 경계에서”

[북회귀선 / Tropic of Cancer]
저자 : 헨리 밀러 (Henry Miller)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가난과 성, 방황을 거침없는 문체로 그려낸 자전적 이야기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주제와 수위를 넘나드는 표현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판매와 유통도 금지되었으나, 이후 몇 번의 외설 재판을 거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출간된 후에는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이 작품을 두고 ‘근대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순간’이라 평한다.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것은 물론이며, 자극과 에로티시즘이 넘쳐나는 내용인지라, 이 작품의 문학성은 항상 논쟁 위에 있을 수밖에 없을 듯.

ⓒstanforddaily

“포르노그래피의 예술적 성취”

[눈 이야기 / Story of the Eye]
저자 :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프랑스의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가 필명으로 1928년에 발표한 소설. 굳이 필명으로 발표한 이유는 책의 내용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름 없는 화자가 시몬이라는 소녀와 함께 점점 더 위험하고 파괴적인 욕망에 빠져드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성적 충동과 폭력, 죽음과 신성모독이 뒤섞인 기괴한 행위들을 반복하며 금기를 넘어선다. 이야기엔 후퇴가 없다. 점점 광기와 파멸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penguin

과도한 외설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첫 출간 당시에는 프랑스 내에서 제한적으로 유통되었다. 단순한 선정성이 아닌, 인간 내부의 존재하는 욕망과 파괴 충동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점이 검열의 화두. 반면,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예술 평론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내가 읽은 모든 포르노그래피 소설 가운데 가장 예술적 성취를 거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범죄자 키우기 마스터”

[아나키스트 쿡북 / The Anarchist Cookbook]
저자 : 윌리엄 파웰(William Powell)

폭발물 제조, 사보타주, 무기 제작, 마약 제조법 등 각종 불법 행위와 관련된 메뉴얼이 담겨있는 책. 미국의 아나키스트인 윌리엄 파웰이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 탄압에 격분해 1971년 출판했다. 이럴 거면 무정부 상태가 낫지 않냐는, 일종의 선언인 셈.

ⓒabebooks

물론 여러 국가에서 판매 제한은 물론 검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실제 범죄 사건과 테러 사건에서 이 책이 언급되며 주목을 받았다. 심상치 않은 책의 내용 때문에 CIA와 FBI, 미국 정부는 이 책을 금서화할 것을 원했지만, 미국 수정헌법 제1조 -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슈퍼 파워 조항 덕분에 출판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저자인 윌리엄 역시도 훗날 이 책의 출간을 후회했다고.

윌리엄 파웰 / ⓒwarontherocks

우리가 금서에 매료되는 건 필연적이다. 앞서 말했던 한 시대가 가장 숨기고 싶어 했던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권력은 늘 그 책들을 읽지 못하게 수를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금지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그 책들은 더욱 강렬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이었겠지만, 금서를 들여다본 독자의 머릿속엔 정제되지 않은 진실만이 남았다. 결국 금서의 역사는 검열의 역사가 아닌,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질문들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Editor/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