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awol(김사월)

김사월쇼

"한 번 무대를 통과한 사람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무대의 입장과 퇴장은 이별, 죽음을 상징합니다."

얼마 전 열린 열세 번째 김사월쇼 <도망자>의 소개글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매년 죽음의 과정을 전해왔던 것인가? 내가 알던 김사월의 음악 세계가 의문투성이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사월을 처음 마주한 날은 이제 막 봄이 와 날이 따듯해진 시기였다. 공원에서 만난 그녀는 자신이 해야만할 일을 마친 베테랑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오랜시간 무대를 꾸며온 그녀가 생각하는 ‘무대’는 완성을 증명하는 장소가 아닌, 남김없이 소모하여 통과해야만 하는 두려운 의례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김사월’만의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음악가 김사월입니다.

Kim Sawol / ⓒfake magazine

Q. 매년 직접 기획해 온 브랜드 공연 [김사월 쇼]의 열세 번째 공연 <도망자>를 최근 마쳤다.

A. 공연이 끝나고 나서의 느낌이 매번 다른데 이번 공연은 마치고 나니 특히 더 이상한 기분이네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깨어나고 나니 기억이 잘 안나는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몸이 아픈 줄 몰랐는데, 이런저런 정리를 끝내고 나니 뒤늦게 몸살을 앓았습니다. 공연을 만드는 건 너무나 고생이고 동시에 기적 같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사실을 자꾸 잊어서 겁도 없이 또 다음 공연을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웃음)

ⓒ김사월 쇼 <도망자>

Q. [김사월 쇼]는 다른 공연들보다 ‘김사월’을 보고 듣기 위해 온 팬들을 위해 가장 좋은 걸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전했다. 가장 좋은 걸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요즘, 가장 나다워져야 가장 좋은 걸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열세 번째 공연 <도망자>는 모두 포크 재즈 쿼텟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들로 구성됐다.

A. 작년 김사월 쇼는 저의 1집 <수잔>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고, 아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름답고 쉽게 이해되는 편성을 가진 음반이고 데뷔 앨범이라는 성장 서사도 있거든요. 그 공연을 하려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어쩌면 하나의 목표 같던 공연을 마치고 나니 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이전과는 반대되는 걸 하는 게 맞다 여겼습니다. 마침 회사도 나와서,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요.

작년 연말 콘서트를 쉬며 요즈음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상실을 겪으며 어떻게 그걸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고, 이런 내가 슬퍼해도 되는가 같은 자기 의심을 하는 나날이었거든요. 마음속 무언가는 어질러진 채 평소처럼 웃었고 멀끔한 척 일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좀 징그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결국 받아들여야겠지. 직면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나 직면은 너무 아프다…”와 같은 상념 속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 것 같아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다가 결국 죽음의 품에 안기는 사람”인거죠.

Q. 의복을 입은 여성(손나예 님)의 등장에 따라 시각적인 복장의 변화와 내적인 감정의 변화를 담고 있었다. 다만, 다른 설명이 없이 말 대신 곡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이번 사월쇼에서는 어떤 디테일이 숨겨져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는가?

A. 제가 이 공연에서 가장 보고 싶었고, 보여드리고 싶었던 장면은 모든 출연자가 모인 앵콜에서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는 인물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창작물에 대해서 제가 어느 정도로 수다스러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후회되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이건 내부 창작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쓴 공연 소개글인데 공유하고 싶네요.

[김사월쇼 내부 소개글]
“한 번 무대를 통과한 사람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무대의 입퇴장은 이별,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 입퇴장을 도와주는 역할이 ‘움직임’이에요. ‘움직임’의 안내로 연주자들은 무대 위를 퇴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도망치려 하는 사람이 ‘사월’입니다.

무대 위 인물들이 겪는 헤어짐과 함께 있음이 그리 슬프지 않게 섞여 있는 모습을 연출하며 지금 함께 있음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일반인은 무대를 오르는 일이 많지 않다. 사실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김사월 쇼]를 비롯해 여러 무대에 서오며 느낀, 무대 위에서의 감정과 무대를 내려온 이후의 상태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A. 무대는 여전히 제게 두려운 곳이에요. 지금 가진 걸 남김없이 사용해야 무대를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도 공연 가장 마지막 순간쯤이 되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상태가 되거든요. 그 즈음의 잠깐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저는 무대를 좋아하는 것 같네요. (웃음)

나의 어떤 부분을 사용하면서 공연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성장도 하고 소모도 됩니다.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10년 이상 무대를 하고 나서 되돌아보니 어느 순간 제가 약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Q. 지난 ‘수잔’ 공연은 [5202]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이어졌다. 이번 <도망자> 역시 하나의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 있는지, 혹은 공연 자체로만 남겨두고 싶은 작업인지 궁금해졌다. 또 라이브 앨범으로 기록하는 개인적인 기준이 있다면?

A. 명확한 기준은 없고 제 마음으로 정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제 생각에 뭔가 “지금이 변곡점인가?”라고 느껴졌을 때 라이브 앨범을 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라이브 앨범을 낼 때마다 소스 확보와 여러 허락들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공연을 하고 나서야 그걸 남기고 싶은지 알게 되는 되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말하진 못하겠네요.

아무튼 이번 공연의 라이브 앨범은 없고, 영상 아카이빙은 할 거에요. 편곡이 아깝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뭐… 이 편성으로 다시 공연을 하면 되니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웃음)

Suzanne- Kim Sawol (Live) / ⓒYoutube

Q. 음악 안에서 사랑과 혐오, 따뜻함과 냉정함 같은 여러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김사월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김사월이 감정을 마주하는 방법과 이런 모순을 굳이 정리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A. 음.. 잘 모르겠어요. 어떤 감정을 명확하게 단언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네요. 기쁘다, 라고 했을 때도 거짓 없이 모두 기쁠 수 있을까 파고드는 성격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에서 여러 불순물과 모순도 포함되어 있을 때 완전하다고 느껴요. 아니 그게 더 사실에 가까운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Q. 김사월의 가사를 보면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문장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A. 쉽고도 풍부하게 읽힐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렵게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계속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인 단어를 통해 좋은 걸 만들고 싶거든요. 진짜 생각난 것, 정말 느꼈던 것을 쓰면 문장이 세련되지 않아도 재미있으니까.. 그런 힘을 믿으려고 해요.



Q. 글이나 음악 모두 끝맺음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느껴진다. 곡 작업을 하면서 끝맺음을 하는 시점이 명확한 편인가? 그리고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삭제하거나 버리는 기준도 궁금하다. 어떤 문장은 남기고, 어떤 문장은 지우는지.

A. 별다른 노하우는 없고 정말 현실적으로 마감일과 납품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끝맺음을 해요.(웃음) 쓰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짜인 표현들이 있다면 거칠어도 남겨두려고 노력하고요. 그렇지만 그것도 미련없이 삭제해야 더 좋아질 때도 있고, 글마다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쉽고도 풍부하면 좋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에세이와 가사를 포함해서 제가 쓰는 문장에 대해 문법적인 것도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주술관계가 꼬이지 않았는지, 논리가 맞는지 체크를 하고, 같은 단어가 반복되면 유의어로 바꾼다거나 하는 일종의 편집을 한답니다. 글쓰기 측면에서 아직도 더 잘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Q. 과거에는 감정에 많이 의존해 작업했다면, 최근에는 관찰을 기반으로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A. 제가 그런 말도 했었군요.(웃음)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또 잊었네요. 사실 감정적인 것을 참지 못해 폭발하듯 쓰는 일이 적어지긴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건 감정이 일어서는 순간입니다. 그 마음을 더 관찰하게 된 것도 맞아서 일부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해요.



Q. 사월님의 음악에는 사람과의 거리, 혹은 세상과의 거리감이 자주 느껴진다. 본인은 그 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예술을 업으로 하며 주변에 창작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 안에서는 내가 능숙하게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잠깐만 세상 밖에 나가도 저 스스로의 ‘사회성 없음’을 통감하게 돼요. 그게 수치스럽기도 한데… 그런데 이제 다들 세상과의 거리감을 제각각으로 느끼는 시대가 온 것 같아서 나름 괜찮네요.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이 되기도 하니까요.



Q. 요즘의 김사월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A. ‘나 자신의 노예’



Q. 책을 많이 읽고 싶어도 못 읽고 영화도 잘 잊는다. 오히려 노래 가사 보는 걸 좋아한다고 답변한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가사들이 있다면

A. 책도 영화도 못 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데뷔하고 3집까지의 약 5~6년간 정도의 시간이었는데요. 그때 인풋은 못 하는데 아웃풋은 내야 하니 압박감이 심했어요. 그래서 꾸역꾸역 노래 가사라도 읽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아마 ‘산울림’이나 ‘어떤날’의 가사 같은 걸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지금은 다행히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나서 책도 영화도 잘 볼 수 있는 시기가 왔어요. (웃음)

Kim Sawol / ⓒfake magazine

Q. 인디, 포크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감정과는 또 다른 문제일 것 같다. 지금 이 위치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시작할 때의 고민은 다들 비슷하지만 어느정도 성장한 이후의 고민은 제각각인 것 같아요. 저도 말하기 어려운 저만의 현실적인 고민이 있어요. 그래도 오래 전부터 “좋은 노래를 쓸 수 있다면 다 괜찮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걸 만들고 나서 어떻게 하면 청자들이 좋아해줄까? 이런 질문의 반복으로 음악 생활을 이어갑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이제 음악을 안 하기엔 너무 멀리 왔습니다.

Kim Sawol / ⓒAbi Raymaker

Q. 사월쇼가 지나면 한 해의 1/3이 지나간다. 남은 26년은 어떤 한 해를 보내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A. 작년 늦여름쯤부터 신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1집을 프로듀싱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마스터링이 끝났고 아마 곧 여러분을 찾아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3년 정도 작업하고 작년에 마무리한 영화 음악이 여름에 장편 영화로 개봉을 해요. 여기까진 예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거니까.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글쎄요, 전 이제 뭘 하면 좋을까요? (웃음)



Q. 김사월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김사월’의 노래를 매개로 저와 사람들이 만난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김사월의 노래는 청자들의 것입니다. 어쩌면 관객들의 것인 이 노래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제가 단독 공연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만든 사람 입장에서 노래는 발표를 하고 나면 내 품에 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을 하게 되거든요. 가끔 먼 시간을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예전의 그 애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내 노래를 예전처럼 만날 수 없게 된 저는, 제 노래를 좋아하는 청자들을 좋아하는 식으로 노래와의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제가 만든 노래가 필요해서 일 년에 두 번 모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고, 전 그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공연을 만들어요. 그래서 청자들에게 고맙다거나, 힘이 된다거나 (물론 무척 고맙고 힘이 됩니다.) 그런 말로는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껴요. 염치없지만 계속 김사월의 노래를 좋아해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이걸 계속해볼게요.

Kim Sawol / ⓒfake magazine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했다. 김사월에게 ‘fake’란?

A. 여자 배구를 보러 갔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스파이크를 때리는 선수 옆에서 페이크로 상대 블로커를 속이는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이었는데요.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허용할 만한 가짜도 서슴지 않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의미로 제게 페이크는 ‘미소’인 것 같아요. 힘들거나 곤란할 때,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 때도 저는 그냥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