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코미디가 건네는 요상한 위로들

김씨표류기

“헛웃음도 웃음이 될 수 있을까”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은 피하며 살고 싶지만, 삶은 기어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 앞에 세워두곤 한다. 공들여 쌓은 탑이 허망하게 무너질 때,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앞길을 막아설 때, 우리는 그 상황에 깊이 가라앉기보다 차라리 ‘어처구니없음’이라는 감정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때 무방비하게 터져 나오는 헛웃음은 무거운 현실을 잠시 가볍게 바꿔놓는 가장 무해한 반격이 된다. 그러니 헛웃음은 단순한 허탈함이나 체념만은 아니다. 팍팍한 현실과 나 사이에 잠시 거리를 만들어주는 유쾌한 비상구일지도 모른다. 블랙코미디적 감각은 바로 그 틈에서 작동한다. 현실을 애써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괜찮아질 거라 쉽게 다독이지도 않은 채 “너무 깊이 빠져들면 더 버거워지는 일은, 한 번쯤 웃어넘기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고 툭 던진다.

여기, 현실의 논리를 살짝 비틀고 비극을 희극의 감각으로 받아치는 여섯 가지 작품을 소개한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김씨 표류기》, 애니메이션 《은혼》의 항도관 에피소드와 《러브, 데스 + 로봇》의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했을 때〉,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등산은 왜 할까〉와 Talking Heads의 〈Once in a Lifetime〉. 각기 다른 형식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헛웃음이 현실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희망을 버려”, 이 지독하고도 상냥한 주문〉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괜찮아”라는 말을 가장 이상한 방식으로 건네는 영화다.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은 음식을 거부하고 전기 충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병원 사람들의 눈에는 명백히 이상한 행동이지만, 영화는 그 믿음을 단순히 고쳐야 할 오류로만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의 웃음은 명랑한 농담이 아니라,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지독한 역설에서 시작된다. 일순은 영군을 현실로 억지로 끌어내리는 대신, 그녀의 언어를 빌려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통로를 만들어준다. 황당한 거짓말이지만, 그 거짓말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다정한 발명에 가깝다.

결국 이 영화의 헛웃음은 “이게 말이 돼?”에서 멈추지 않는다. 말이 안 되더라도, 그 방식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 고장 난 방식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누군가를 살게 만든다면 더더욱.

사이보그지만 괜찮아(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 ⓒYoutube

<HELP? HELLO!>


《김씨 표류기》는 삶을 끝내려던 남자가 한강 밤섬에 표류하면서 시작된다. 죽는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이보다 더 허망한 출발도 드물지만, 영화는 이 비극을 지나치게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도시 한가운데에서 조난자가 된 남자의 생존기를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게 그려낸다.

그의 표류는 실패한 인생의 연장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다시 살아보는 실험이 된다. 짜장면 한 그릇을 꿈꾸고, 모래밭에 글자를 남기고,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와 연결된다. 특히 ‘HELP’가 ‘HELLO’로 바뀌는 순간, 살려달라는 외침은 어느새 인사가 된다.

이 영화의 웃음은 거창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망했다고 생각한 자리에서도 뜻밖의 연결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피식 웃음이 나는 이유는 상황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그 어이없음 속에서도 아직 살아볼 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씨표류기 / ⓒYoutube

<웃음은 슬픔의 반대편이 아니라>


《은혼》의 항도관 에피소드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를 연상시키는 ‘빔 사벨’ 패러디로 비튼다. 소중한 스승이자 형 같았던 오비 하지메, 일명 오비완이 반은 기계가 된 살인 병기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충분히 비장한 신파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혼》은 그 엄숙한 순간마다 어이없는 농담을 끼워 넣으며 슬픔이 한 방향으로만 가라앉지 않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오비완의 말에 있다. 인생에는 눈물로도 흘려보낼 수 없는 슬픔과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아픔이 있고, 정말 강한 사람은 울고 싶을 때야말로 웃는 사람이라는 것. 여기서 웃음은 슬픔의 반대편이 아니라, 아픔을 안고도 계속 걸어가기 위한 태도에 가깝다.

마지막에 오타에 남매가 오비완의 유산으로 하와이에 다녀오고 마카다미아 초콜릿을 나눠주는 결말은 황당할 만큼 가볍다. 하지만 그 가벼움 때문에 오비완은 비극으로만 남지 않는다. 슬픔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기억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은혼》식 애도다.

銀魂 264話 一本 / ⓒYoutube

〈이쯤 되면 요거트에게 맡기자〉


《러브, 데스 + 로봇》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는 제목부터 어이없다. 지능을 갖게 된 요거트가 인간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세계를 운영한다는 이야기. 터무니없는 설정이지만, 이 짧은 애니메이션은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인간 사회의 비효율과 오만을 가볍게 찌른다.

이 에피소드의 웃음은 “설마 요거트가?”라는 헛웃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인간이 자랑해온 정치와 문명의 시스템이 요거트보다 못하다는 농담은 너무 과장되어 웃기면서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블랙코미디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현실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설정 하나로 인간의 진지함을 무너뜨리는 것.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농담 앞에서 우리는 피식 웃지만, 그 웃음은 결국 우리가 만든 세계를 조금 떨어져 바라보게 만든다.

LOVE, DEATH & ROBOTS (WHEN THE YOGURT TOOK OVER) / ⓒYoutube

〈어차피 내려올 거라면, 왜 올라가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등산은 왜 할까〉는 우리가 당연하게 반복해온 삶의 행위들을 향해 헛웃음 섞인 질문을 던지는 곡이다. 힘들게 올라가도 결국 내려올 산을 왜 오르는지, 깨버릴 걸 알면서도 왜 취하려 드는지 묻는 이 노래는 단순히 등산이나 술을 비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뻤기 때문에 다시 슬퍼지고,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외로워지는 마음. 우리는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고, 내려올 걸 알면서도 올라가고, 다시 외로워질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곁에 둔다. 생각해보면 꽤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장기하는 그 어이없음을 과장된 비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덤덤한 목소리로 “도대체 왜 그럴까” 하고 묻는 순간, 삶의 반복은 잠시 우스운 모양이 된다. 이 노래의 헛웃음은 체념이 아니라, 결국 계속 무언가를 하게 되는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웃음에 가깝다.

[EBS 스페이스공감] 장기하와 얼굴들 - 등산은 왜 할까 / ⓒYoutube

<어쩌다 이런 삶 한가운데 서 있나>


Talking Heads의 〈Once in a Lifetime〉은 장기하의 〈등산은 왜 할까〉와 나란히 두기 좋은 곡이다. 장기하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종종 함께 언급되는 밴드이기도 하지만, 두 곡의 진짜 연결점은 삶을 정답 대신 이상한 질문으로 비틀어 바라본다는 데 있다. 장기하가 “어차피 내려올 걸 왜 올라가?”라고 묻는다면, Talking Heads는 “어쩌다 내가 이런 삶 한가운데 서 있지?”라고 묻는다.

이 곡은 좋은 집, 멋진 차, 안정된 일상처럼 보이는 것들 한가운데에서 문득 자기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순간을 다룬다. 성공처럼 보이는 삶조차 어느 순간 남의 옷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 깨달음은 꽤 황당하고, 그래서 헛웃음에 가깝다.

〈Once in a Lifetime〉은 울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반복적인 리듬과 기묘한 보컬로 그 낯섦을 밀어붙일 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삶을 잠시 낯설게 만든다.

Talking Heads - Once in a Lifetime (Official Video) / ⓒYoutube

〈헛웃음도 생존기술입니다.〉


헛웃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도망이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상황과 나 사이에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기술에 가깝다. 너무 깊이 빠져들면 더 무거워지는 일들을 잠시 떨어져 바라보게 하고,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현실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받아칠 수 있게 만든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김씨 표류기》가 이상한 방식으로 삶의 통로를 만들고, 《은혼》과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했을 때〉가 비극과 현실의 우스꽝스러움을 비틀며, 〈등산은 왜 할까〉와 〈Once in a Lifetime〉이 반복되는 허무 앞에서 피식 웃게 만들듯이, 헛웃음은 우리를 아주 조금 덜 무너지게 한다. 헛웃음도 웃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중요한 건 그 웃음이 우리를 잠시라도 덜 무겁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Editor / 정세원(@312in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