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라
1984
"전쟁은평화, 자유는예속, 무지는힘... "
- 조지오웰의 <1984> -
오늘날 당신이 소설 <1984> 속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빅 브라더의 절대 권력 아래 모든 것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당하고 통제된다. 답답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하나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뿐이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당신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참아보기로 했다. 2+2=5라고 교육받기 전까지는. 간단한 덧셈마저 틀리는 국가에 어떻게 세뇌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당신을 포함한 모두가 당당히 말할 것이다. 21세기 사람들이 전체주의 따위에 복종할 리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전체주의는 아주 용의주도하게 움직인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사회 내부로 침투하려 든다.
그렇다면 전체주의는 무엇인가. ‘전체주의’는 국가, 민족, 이념 등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통제·종속시키는 정치 이념이자 사회 체제이다. "국가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말처럼, 정치가 사생활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완전히 통제하려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재의 시작, 패션>
독재자를 꿈꾸는 일명 ‘빅 브라더’의 첫 번째 간섭은 다름 아닌 복장이었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설교하며 우리에게 유니폼을 선물했다. 유니폼을 입으면 결속력이 생길 것이며,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고, 질서 있는 사회가 갖춰진다는 이유까지 덧붙이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꽤나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직업군마다 작업복을 맞춰 입지 않는가. 그렇게 우리는 옷을 착용했다. 유니폼이 전투복이 아니라 수갑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푸코의 규율 권력>
어떻게 복장 따위가 수갑이 될 수 있는 것일까? 20세기 구조주의 인문학 분야의 상징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론을 보면 이해가 쉽다. 그는 본인의 저서 ‘감시와 처벌(1975)’에서 “권력은 더 이상 강제적으로 동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저항하는 신체를 직접적으로 고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주어진 틀에 신체를 가두기로 했다는 것. 여기서 주어진 ‘틀’은 수갑이 될 수도, 감옥이 될 수도, 패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원활히 통제하기 위해선 이처럼 어느 정도의 규율이 필요하고, 권력은 바로 이 ‘규율’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우리의 신체를 통제하기로 했다는 것이 ‘규율 권력’ 이론의 기초 개념이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작용하며 더욱더 교묘하게 저항을 눌러간다. 그러니 표출될수록 표면적으로는 한층 덜 ‘신체 *중심적’으로 되는 ‘권력’인 것이다.”
-푸코의 규율 권력-

그러니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전체를 통제한다는 이념을 가진 전체주의에선 이처럼 효율적으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규율 권력’이 가장 완벽한 형태의 통제 방식이었을 수밖에. 학교에서는 주어진 교복을 입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정형화된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와 같이 집단을 통솔하기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는 인간의 역할에 따른 옷을 규정하며, 자연스럽게 규율 중심적인 장치를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갇혀있는 현대판 ‘판옵티콘’이 아닐까.
[중앙의 높은 감시탑을 둘러싼 원형 감옥, 판옵티콘]

판옵티콘(Panopticon)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의 감옥 양식으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의 합성어이다. 이름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이 건축물은 중앙에 위치한 높은 감시탑을 중심으로 원형 둘레에 죄수의 감방을 배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감시탑 내부의 감시자는 어두운 조명 뒤에 숨어 있어 죄수들을 완벽하게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탑 안이 보이지 않아 자신이 지금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시각적 불균형으로 인해 죄수들은 언제나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며, 결국 스스로 일종의 ‘틀’을 만들고 규율을 준수하도록 유도된다.
이 개념은 미셸 푸코의 ‘규율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하는 유용한 비유로 확장되었다. 그는 판옵티콘이 단순히 감옥에 그치지 않고 학교, 공장, 병원 등 현대 사회의 제반 기관으로 확산된 '감시 사회'의 메커니즘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어도 '누군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개인의 내면에 감시자를 설치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통제하게 한다는 것. 오늘날 판옵티콘은 CCTV, 인터넷 데이터 수집,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감시 체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데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판옵티콘의 규칙’
- 감시탑에서는 모든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다
- 감옥에서는 감시탑 내부를 볼 수 없다
- 수감자는 같은 수감자만을 볼 수 있다
언제든 감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우리가 자신을 검열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스스로는 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의미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톰 파슨스가 가장 적합한 예시일 것 같다. 그는 당의 구호와 통제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당의 충실한 전사로 키워낸 어린 딸의 고발로 체포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잠꼬대로 "빅브라더를 타도하라"는 말을 중얼거렸다는 이유로 딸에게 신고당한 그는 고문실인 101호실로 끌려와서도 당을 원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잠재적 반역 행위를 일찍 발견해 당에 알린 딸이 대견하다며 끝까지 체제를 맹신하는 기괴한 모습을 보인다. 오웰은 이 사건을 통해 비판적 사고가 제외된 맹목적 충성이 어떻게 인간성마저 마비시키고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전체주의가 만든 사회적 ‘판옵티콘’에는 친구는 커녕 가족조차 없다. 우리는 수감자인 동시에 서로의 감시자가 되니까. 그리고 이때 감시자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겉모습이다. 내가 아무리 빅 브라더를 사랑한다 한들, 아무도 입지 않는 분홍색 옷을 입으면 규율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되는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따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이 복장이 규율 권력에 주는 힘이자 역할이다. 결국 권력은 사회적으로든 복장으로든 우리의 신체를 옥죄어버렸다. 손발이 묶여버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복종뿐이다. 그러니 소설 <1984>의 이야기를 단순한 허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역사 속 복장으로 행해진 전체주의>
수 천 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빅 브라더’가 존재했던가. 그들은 살아있었고, 언젠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를 통해 복장으로 시작하는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을 통제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조직 검은 셔츠단.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회주의자와 반파시스트들에게 테러를 일삼았다. 일반 시민들에게 검은 셔츠단은 감시자로서 인식되었다. 그들의 옷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깃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협. 당시 파시스트들은 사람을 두 분류로 판단했다. 검은 셔츠를 입었거나, 입지 않았거나. 검은 셔츠를 입지 않는 사람들에게 검은 셔츠단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히틀러, 일상의 제복화]
나치가 집권한 후 히틀러는 모든 개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권력을 행사하였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히틀러 유스’이다. 당시 청소년들은 의무적으로 이 단체에 가입해야 했으며, 조직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평상시에도 히틀러 유스 제복을 입어야 했다. 다른 옷을 입는다는 것은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히틀러 유스는 구성원의 일과를 지도자에게 보고하게끔 지시했다. 히틀러의 지배 아래에서 모든 일상을 감시당하는 것,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은 이렇게 탄생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
중국의 문화 대혁명은 위의 두 독재자가 위협과 강요를 사용한 것을 넘어, 개인이 자신을 검열하도록 사상 자체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당시 공산당은 무채색의 인민복을 ‘혁명적 인간’의 복장으로 선전했다. 그들이 말하는 혁명적 인간이란 집단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인간이었다. 공산당의 사상은 언론을 통해 퍼뜨려졌다. 만약 누군가 색이 있거나 서양식 옷을 입는다면, 그는 사치를 즐기며 본인만을 생각하는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압력 속에서 개인의 가치 판단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혁명적 인간을 자처하며 그들이 본인의 옷장을 검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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