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통해 메세지를 전하던 작가들에게 AI가 던지는 질문
안드레아스 거스키
2011년 11월 8일 뉴욕 크리스티에서 사진 한 점이 4,338,500달러에 낙찰됐다. 1999년 뒤셀도르프 인근 라인강을 담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Rhein II〉, 이미지 속엔 살아있는 피사체가 없다. 회색 강물, 초록 둑, 흐린 하늘. 수평으로 놓인 선적인 요소들이 전부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원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전거가 지나다녔고, 공장 건물이 서 있었다. 거스키는 그것들을 전부 지워냈다. 지금이야 프롬프트 하나 슥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원하는 요소만 골라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거스키의 사진들을 좋아했기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이미지를 편집으로 전달하던 작가들의 작업은, 무엇이든 문장 하나로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도 아직 유효한가?

거스키는 1955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에게 사진을 배웠다. 급수탑과 용광로를 수십 년간 같은 구도, 같은 빛으로 찍어 나란히 늘어놓던 유형학적 사진의 선두주자이다. 감정도 해석도 빼고 유형만 남기는, 사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객관성이 그들의 목표였다.
베허 학파의 계보를 이은 거스키는 여러 장소에서 찍은 여러 장을 잇고, 지우고, 원근을 조정한다. 그는 사진 속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 조작과 편집을 인정하고 이를 표현방식으로 선택해온 거장에게, 누구나 조작할 수 있는 시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의 사진 앞에 선 사람들이 느낀 경이로운 감정 중 상당 부분은 기술적인 영역일 것이다. 어떻게 이 거대한 화면 전체가 균일하게 선명한지, 이음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대한 크기의 프레임이 주는 압도감과 희소성이라는 특수한 매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지금은 누구나 몇 초 만에 비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유사한 선례가 있다. 19세기 사진이 등장했을 때 회화는 초상과 기록이라는 일감을 통째로 빼았겼고, 그 자리에서 실제로 많은 화가의 밥줄이 끊겼다. 기술이 값싸지면 그 기술만으로 서 있던 것들은 정말로 무너진다. 이걸 부정한다면 위로는 될지언정 사실은 아니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회화 작가들이 피사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카메라 등장하자 인상적으로, 추상적으로 또는 초현실적으로 향하며 더 회화다운 움직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장에 몇천만 원에 거래되는 작품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AI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발전하고 기술력이 좋아지고 있기에 더이상 새로움과 기괴한 발상, 디테일과 규모에 있어선 신선함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거스키의 프레임 속엔 실재하는 대상이 있다. 아마존 물류창고, 증권거래소, 평양의 경기장 등 거스키는 현장에 직접 가서 눈으로 담았던 요소들을 추출해낸 후 조립해냈다. 인간의 눈에 담길 수 없는 순간이 모여 이루어진 것. 하지만 생성형 AI는 현장에 가서 담은 것이 아닌, 다녀온 수많은 누군가들의 눈에 담겼던 순간을 수렴하고 또 발산한 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조작한다. 생성된 이미지는 출발점 자체가 없는 것이다.
거스키는 1년에 평균 세 점밖에 완성하지 못한다. 그가 2025년 공개했던 연작 ‘크로노 캡슐’은 예전에 사진을 찍었던 장소로 돌아가, 사진과 사진 사이에 갇힌 시간과 변화를 기록했다.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건물은 낡고 그 속의 사람들도 바뀌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32년 후에는 이런 사람들이 살 거야’라는 추정과 추측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 실제 현실 속의 피사체는 담지 못한다. 그렇기에 거스키의 작업은 결국 인간만이 담아낼 수 있는 순간 사이의 간극이다.


사진으로 회화가 더 회화다워진 것처럼, AI로 인해 인간은 더 인간다워질 것이다. 이미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같은 제품을 사더라도 브랜드의 스토리가 담긴 물건을 사고자 하고, 조금 더 값을 치루더라도 매력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90년대 사람들이 거스키의 작품 속 규모와 디테일에 놀랐던 것처럼 당장은 AI가 생성해내는 새로움과 AI의 속도감에 경이로워하며 수많은 이미지를 생성해내겠지만, 그렇게 쏟아졌기에 생성형 이미지는 거스키가 가졌던 희소성이란 특수한 매력을 가질 수 없다. 결국 사람은 정성이 담긴 몇 없는 작품에 돈을 쓰고 싶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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