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호텔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학교였다

RobertMapplethorpe

패티 스미스의 대표적인 에세이 ‘저스트 키즈(2012)’는 흔히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랑 이야기로 읽히곤 한다. 실제로도 이 책에는 연인과 친구, 가족과 동료 사이를 넘나든 둘의 관계가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조금 시선을 바꾸면 두 명의 젊은이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지를 기록한 교육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술대학이나 음악학교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서로의 작품을 바라보고, 주변 예술가의 삶을 목격하고, 누구와 어울리며 어떤 장소에 머물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을 발견했다.

ⓒHotel Chelsea

1969년,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첼시 호텔에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은 아직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패티 스미스는 시와 드로잉을 오가며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있었고, 로버트 메이플소프 역시 회화와 콜라주, 오브제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매체를 완전히 찾지 못한 상태였다. 둘에게는 돈도, 확실한 직업도, 예술계에서의 지위도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막연하지만 완강한 믿음만이 있었다.

ⓒliteraryenchanted

<교육의 중심엔 첼시 호텔이 있었다>

뉴욕 23번가에 자리한 첼시 호텔은 원래 1880년대 협동주택으로 설계된 건물이었다. 이후 호텔로 전환된 뒤 작가와 화가, 배우, 음악가를 장기 투숙객으로 받아들이며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1960년대에 이르면 노후한 시설과 저렴한 장기 임대료, 예술가에게 비교적 관대했던 운영 방식 덕분에 뉴욕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된다. 당시 지배인이었던 스탠리 바드는 형편이 어려운 예술가에게 임대료 납부를 기다려주거나 작품을 받는 방식으로 체류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물리적인 낙후가 오히려 제도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여백을 만든 셈이다.

그곳엔 밥 딜런과 레너드 코언, 재니스 조플린을 비롯한 음악가들이 머물렀고, 윌리엄 S. 버로스와 앨런 긴즈버그 같은 작가들이 오갔다. 앤디 워홀은 호텔의 거주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주변 인물들이 다수 이곳에 살았고 그가 만든 영화 ‘첼시 걸즈(1966)’를 통해 첼시 호텔의 커뮤니티를 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첼시 호텔은 특정 예술 운동이나 장르에 속해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문학과 회화, 사진과 음악, 연극과 영화가 한 건물 안에서 충돌하는 장소였다.

Chelsea Hotel 1970 / ⓒYoutube

중요한 것은 이 이름들이 당시엔 유명인 목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첼시 호텔의 의미는 거장이거나 훗날 거장이 될 사람들이 같은 주소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그곳에서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와 이미 이름을 얻은 예술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 작품보다 삶이 먼저 무너지고 있던 사람이 같은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공유했다. 누군가는 밤새 타자기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방을 스튜디오로 사용했으며, 누군가는 로비에서 공연과 전시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예술은 완성된 결과물보다 생활의 형태로 먼저 관찰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예술이 살아가는 곳>

학교가 이미 정리된 지식과 방법론을 전달하는 곳이라면, 첼시 호텔은 예술가가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였다. 그곳에서는 창작과 생계, 욕망과 실패, 자기 연출과 자기 파괴를 분리하기 어려웠다. 젊은 예술가는 다른 사람의 성공만을 본 것이 아니라, 작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순간과 임대료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 작품이 아무 반응도 얻지 못하는 시간까지 함께 목격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기술뿐 아니라 불확실한 생활을 견디는 방식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을 배우는 셈이었다.

패티 스미스에게 첼시 호텔은 자신의 글이 단순히 문장으로만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환경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작가와 음악가, 공연자등 다양한 장르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을 마주했다. 이후 세인트 마크 교회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할 때 기타 연주를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시는 점차 무대 위의 언어로 변했다. 1975년 발표된 데뷔 앨범 《Horses》가 시와 록을 분리하지 않는 형식을 갖게 된 것은 단순히 음악적 재능이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첼시에서 보았던 예술의 혼합, 문학과 음악과 이미지가 서로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방식이 그녀의 작업 안으로 들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atti Smith

로버트 메이플소프도 비슷하다. 그는 처음부터 사진가로 출발하지 않았다. 드로잉과 회화, 종교적 이미지와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을 조합하는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점차 사진을 독립적인 표현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당시 패티 스미스는 그의 모델이자 첫 번째 관객이었고, 반대로 메이플소프 역시 패티의 문학적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간 사람이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찍은 《Horses》의 패티 스미스 포상 역시 단순한 앨범 커버 사진이 아닌 둘의 오랜 협업이 압축된 결과였다.

“한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연출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인물에게서 자신이 추구하던 형태와 긴장을 발견했다.”
ⓒPatti Smith

<배움은 또 다른 가르침이 된다>

둘은 서로에게 교사였지만, 흔히 말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었다. 한 사람이 완성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함께 찾아갔다. 패티는 로버트의 작품이 변해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고, 로버트는 패티가 시인에서 공연자로, 다시 음악가로 확장되는 순간을 지켜봤다.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각자의 욕망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상대가 예술가라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 믿음은 단순한 격려와 다르다.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미래의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지만, “이미 예술가”라고 대하는 것은 현재의 작업과 생활을 하나의 실천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세상이 아직 그들을 무명 청년으로만 바라볼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대했다. 예술가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완성된 작품보다 자신의 불완전한 시도를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관객일 수 있다.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서로에게 바로 그 첫 관객이었다.

ⓒHotel Chelsea

다른 체류자들도 모두 같은 형태로 존재했다. 정규 수업도, 학점도, 졸업장도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교재가 되었다. 레너드 코언과 재니스 조플린의 이야기는 노래가 되었고, 밥 딜런의 체류는 호텔을 포크와 록 신화의 일부로 만들었다. 워홀과 그의 동료들은 호텔의 방과 거주자들을 영화의 이미지로 전환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사생활과 실패, 관계와 소문까지 문화적 생산의 재료가 되었다.

물론 이를 낭만적인 예술 공동체의 신화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첼시 호텔의 자유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불안정한 생계 위에 존재했고, 예술가들의 가난과 중독, 정신적 불안과 자기 파괴 역시 그 역사에 포함되어 있다. 『저스트 키즈』에 묘사된 패티와 로버트의 청춘도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안전한 거처를 구하지 못하며, 생계를 위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가난이 예술성을 보장한 것도 아니고, 첼시 호텔이 그들을 자동으로 예술가로 만들어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첼시가 제공한 것은 가난 자체가 아니라 고립되지 않을 가능성이었다. 불안정한 생활을 하더라도 주변에 비슷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의 작업이 아직 세상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다. 실패가 개인의 무능으로만 해석되지 않고, 창작 과정의 일부로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예술가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체는 성공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실패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Chelsea Hotel Documentary 1981 / ⓒYoutube

예술가를 가르치는 학교라기보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가능성을 보호하는 학교. 그곳에서는 완성된 정체성보다 변해가는 과정이 중요했고, 서로 다른 장르의 사람들이 가까이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저스트 키즈(2012)’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역시 자신이 무엇이 될지 알지 못했고, 오랫동안 실패와 변화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예술가로 대했고, 첼시 호텔의 사람들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하나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우리만의 첼시 호텔은 지금도 여전히 문을 연다>

오늘날 첼시 호텔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호출되는 이유도 단순히 1960년대 뉴욕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예술가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작품과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다. 작업을 공개하고 다른 예술가와 연락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도 이전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접속이 곧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완성된 결과물은 끊임없이 보지만, 작품이 실패하고 방향을 잃으며 변해가는 시간은 공유하기 어렵다. 소셜미디어에서 예술가는 언제나 무언가를 발표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창작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Hotel Chelsea

학교 역시 예술의 기술과 역사를 가르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어떤 예술가가 될 것인지를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결국 그것은 동료와의 관계, 자신이 속한 장면, 반복해서 마주하는 작품과 대화 속에서 형성된다. 누구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누구에게 미완성 작업을 보여주며, 누구의 작업이 변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는지가 한 사람의 미학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교육은 강의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강의실 밖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당신이 새로운 첼시 호텔을 만들어가는 거다. 작품이 아직 작품으로 인정받기 전의 시간을 견디게 하고, 무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먼저 발견하게 했으며, 하나의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의 가능성을 지켜보도록 만든 장소. 새로운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당신이 가는 그곳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