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o Bohn chang(구본창)
구본창
‘거장’. 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을 칭할 때 우린 종종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 현대 사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진작가 구본창 역시 자타공인 거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하고 있다. 정적이면서도 미묘한 미학을 풍기는 구본창의 사진은 단순히 사진이 지녀야할 시각적 쾌감 뿐만 아니라 그 순간 그리고 그 물건이 가진 향과 맛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한 사람을 거장의 반열까지 올려놓았을까. 그 모든 이야기는 그의 뒤로 가득한 책장에 있었다. 현대 사진의 선구자 구본창과의 인터뷰.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사진작가 구본창입니다. 지금 사진계에서 활동한 지는 벌써 46년? 8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46년이 맞겠네요. 꽤 오랫동안 카메라를 쥐고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Q. 최근엔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가로서 어떤 날들을 보내고 계실까요.
A. 요즘 진행하는 개인전이 몇 가지가 있어요. 얼마 전 을지로에서 전시도 마쳤고, 중국에서도 전시 진행 중입니다. 전시 준비하는 게 사실 작가한테는 큰 일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전시 준비에 몰두하고 있어요. 또 이제까지 촬영은 했지만 아직 책으로 출판 안된 것들 그런 작업들의 네거티브를 찾으면서 다음 출판할 책은 무엇일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책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게 뭘까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작가라는 직업, 특히나 순간과 느낌을 포착하는 사진작가는 일상과 일의 구분이 모호할 수 있을 것 같다.
A.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조수들 퇴근한 이후의 시간이나 주말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물론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작업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은 많긴 하죠. 신문을 들춰보기도 하고, 잡지나 아니면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볼 때도 있어요. TV 뉴스를 볼 때도 뭔가 작업에 연관이 될 만한 것들, 아니면 나한테 연관이 될 것들을 항상 관심을 두고 찾아보고 있죠. 사실 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내 일상이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다 작업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일과 삶의 경계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할 때 좀 그게 불행할 수도 있고 일만 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나한테는 그게 즐거움입니다. 그 사유의 시간들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좋은 작품이나 옛날 유물, 새롭게 발견된 물건들이 있다면, 그런 모든 정보가 나한테는 신선하게 다가와요. 그래서 꼭 사진 분야의 일들만이 아니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Q. “한국 현대사진의 지평을 연 선구자” 구본창을 가장 잘 소개하는 문구인 것 같습니다. 이런 타이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A.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긴 하죠. 사실 또 나 혼자만의 힘으로만 현대 사진이 그렇게 전개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의 촉매 역할을 한 거는 맞긴 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런 욕구들은 많이 있었겠지만 막상 판을 깔기 위해 나설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주 우연치 않게 내가 그런 일을 하게 됐어요.


Q.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기업까지 입사했다가, 모든 것을 관두고 사진을 배우려 함부르크로 떠나셨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사진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에피소드)가 있으신지.
A. 사실 꼭 사진만을 위해서 간 건 아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당시 입사했던 회사에서의 업무는 내가 그렇게까지 관심 있었던 게 아닌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무하고, 또 그런 분야에서 비효율적인 열정을 쏟고 하는 것이 내가 5~60대가 되었을 때 후회하진 않을까, 평생 이렇게 해서 올라가면 나는 뭐가 될까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방식처럼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들에 맞춰서 살자니 내가 만족을 못할 것 같았거든요. 이거 말고 다른 삶의 방법은 없는지, 다른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사는지를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멈추고 이 삶에서 뛰쳐나간 게 독일이었습니다.
당시엔 오히려 화가나 디자이너 같이 평소에 좋아했던 시각 분야에 조금 더 관심있었습니다. 사진에 대해서 많이 알지도 못했고 사진기를 접해보긴 했지만 사진을 전공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에서 학교에 진학한 후 친구들과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가까이 접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사진에 매료되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Q. 80년대 당시 한국 사진계의 주류였던 리얼리즘이 아닌 '연출 사진'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제안했다. 젊은 사진가 구본창은 어떤 생각이셨을까요.
A. 독일에 있을 때 나름 저만의 꿈이 있었습니다. 제 2차대전 이후에 독일의 사진을 부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독일 작가 ‘오토 슈타이너트 (Otto Steinert)’가 있었습니다. 그 작가를 보고 “나도 언젠가 한국 사진계에서 새로운 붐을 일으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상 한국에 돌아왔을 땐 단돈 만 원이 없어서 굉장히 고민한 적도 있었죠. 독일에서 느낀 자유로움도 없었고요.
아마 지금 인터뷰하시는 분들은 여권이 있는 세대에 태어났으니까 그런 규제를 모르지만 때는 여권이라는 게 특별히 수출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 아니면 입학허가증을 받은 사람만 해외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꿈을 펼쳐볼 수 있겠다고 해서 왔지만 한국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당시의 그런 막막함과 심리적 불안감이 더욱 사진과 제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것들이 저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나가는 출발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주류를 거스른다는 것,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때를 회상해보며, 당시 평단의 반응은 어땠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으실까요.
A. 당시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본인들도 평소에 자유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당시 교수님들은 그런 것은 사진 작품이 아니라고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나 《사진·새시좌(視座)》전 등 내가 기획한 전시를 통해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니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빠져들었죠. 이후 졸업전시회의 분위기도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교수님들이나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거부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Q. 해외에서 사진을 공부한 만큼 해외를 주무대로 활동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연출 사진을 선보였죠. 한국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1985년 당시 유학을 마치면 독일에서 비자를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모두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지요.
귀국 후 3년여간은 다시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내 초기 작업들이 굉장히 우울한 사진이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죠. 그때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을 못했고, 내가 꿈을 펼칠 수 있는게 독일인데 잘못 들어왔나 하는 자책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내가 할 일을 찾게 되었죠.
Q. 과하지 않은, 미묘하고도 정적인 아름다움. 피사체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포착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찍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지. 또 그 순간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A. 셔터를 누르게 되는 순간은 대상이 먼저 매력을 뿜어낼 때 찾아옵니다. 정물이든 사람이든 풍경이든, 그 대상만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사진가로서 사냥꾼처럼 놓치고 싶지 않게 됩니다.
사실 어떤 인물도 그 느낌과 매력을 지닌 시간은 그때 뿐입니다. 몇 달만 지나도 그 얼굴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거든요. 젊음 뿐만 아니라 나이듦 역시 오직 그 시기에만 뿜어낼 수 있는 저마다의 소중한 매력이 있죠. 그래서 늘 ‘지금이 아니면 담을 수 없다, 바로 이때가 최선이다’ 싶은 순간을 쫓습니다. 그럴 땐 카메라든 스마트폰이든 손에 잡히는 것을 들이댈 수밖에 없죠. 머릿속 기억으로만 남기기엔 아쉬우니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는 열망이 큰 편입니다.



Q. AI의 발달로 사진의 역사에 큰 변화가 일고 있는 지금입니다. 한국의 1세대 사진가로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실까요.
A. 주변에서 많이들 이야기하니 AI 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내 작업에는 쓰진 않지만, 분명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필요한 걸 훨씬 손쉽게 만들어 주니까요. 하지만 나온 결과물을 내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발표할 땐, 결국 사진가의 ‘눈’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니까요. AI가 만들었다고 무조건 따를 순 없잖아요.
포토샵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엔 정물의 먼지나 구김, 수평선 하나 맞추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지금은 보정으로 손쉽게 해결되니까요.
기술만 변했을 뿐 사람의 안목이 핵심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AI도 결국 도구일 뿐이라 바라보는 '눈'만 있다면 두려울 건 없죠. 맞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Q. 그렇다면 언젠가 AI를 활용한 구본창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지?
A. 나 역시 AI를 거부하진 않습니다. 내겐 버리지 않은 수많은 네거티브 B컷 필름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만의 광산을 하나 가진 셈이죠. 남들이 AI로 이미지를 끌어낼 때, 나는 B컷 C컷들까지 모아뒀으니 그걸 스캔해서 AI로 합성하고 만지면 또 다른 새로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비누와 백자 같은 정물 시리즈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한 사진들인데, 실제 작업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A. <비누>는 백자 작업을 위해 여행을 다닐 때 시작됐습니다. 호텔에서 쓴 하얀 비누의 주름이 꼭 백자의 표면처럼 보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작품 속 비누는 거의 다 내가 사용한 비누입니다. (웃음) 나중에 백자 사진집을 의논하러 온 일본 출판사에 비누 서랍을 보여줬더니 크게 감탄했고, 결국 비누 책과 백자 책을 함께 출판하게 됐죠.
<백자>는 외국인 곁에 놓인 조선 백자 사진을 본 게 시작이었습니다. 낯선 타향에 홀로 남겨진 모습이 참 서글퍼 보여, 언젠가 사진으로나마 고향에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죠. 그러다 2002년쯤 일본에서 조선 백자 특집이 실린 여성 잡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작 우리는 무관심한데, 일본에서는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우리 백자를 즐기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이제는 정말 백자를 제대로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사진가로서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이야기가 있는지.
A. 다닌 곳이야 끝도 없이 많지만, 횟수로는 프랑스를 제일 많이 간 듯합니다. 전시도 잦았고, 파리가 유럽 곳곳을 다니기에 지리적으로도 편리하니까요. 갈 때마다 오랜 역사를 아끼고 지켜나가는 그 도시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곤 했습니다. 내가 표현하는 정적인 작업이 그들에겐 낯설면서도 새로웠는지, 그런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내 작업을 꽤 아껴주었죠.
재미있는 기억도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한눈에 반하다’를 뜻하는 관용구 중에 ‘쿠 드 푸드르(coup de coeu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를 취재했던 한 기자가 신문 기사 제목에 내 성을 따서 ‘Koo de coeur(쿠에게 반하다)’라고 재치 있게 달아주었더군요. 내 작업을 그렇게 표현해 준 게 참 인상 깊고 뿌듯했습니다. (웃음)

Q. 사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실까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떤 방향으로든 답변 주셔도 좋습니다.
A. 사진이 시간을 담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현장에 ‘실재하는’ 대상을 찍으니까요. 아무리 AI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마주하고 남긴 것이 아니라면 사진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이든, 눈앞의 사물이든 그 현장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아 간직하잖아요. 내가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을 주머니 속에 품고 다닐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진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사진가로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는 상업적인 사진을 누군가는 예술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교수님에게 사진가로서의 성공은 어떤 기준으로 도달하게 될까요?
A. 오히려 아마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안착하면 안 되는 것 같고 항상 더 도전을 해야 된다. 저 역시 지금도 더 높이 간 사람들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또 그런 자극들에 열려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나이까지 사진을 하면서 물론 젊은 사람들한테는 당연히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아야 되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그냥 계속 갈 길이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Q. 사진을 공부하고 꿈꾸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또 스승으로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어디에 발을 딛느냐에 따라 앞날은 달라집니다. 두렵더라도 마음이 흐르는 대로 일찍 시행착오를 겪어보고, 그 안에서 나를 받아들여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하죠.
세상은 재능이 있다고 무조건 ‘어서 오십시오’ 환영해주지 않아요. 실패 속에서 태도도 바꾸고 사람 대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결국 미래는 도전하는 자에게 옵니다. 어떤 꿈이든 꾸어야만 조금이라도 거기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해 보았다. 구본창에게 'fake'란 무엇인가?
A. 남한테 친절하려고 하죠. 특히나 ‘진심’에서 나오는 친절을 베풀려고 해요. 어떤 경우에도 난 지위나 권력에 아부하지는 않아요. 다 똑같은 친절을 베풀려고 합니다. 나는 상대방한테 잘해주고 싶어요. 그 사람이 하는 일들 각자의 일들에 대한 존경인 거죠.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드는 것 같아요. 아마 이게 나의 일종의 ‘페이크’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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