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외계인을 사랑하는 세 가지 이유
에일리언
우리는 언제나 미지의 존재, 외계인을 동경해 왔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존재할 그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입고 다닐지 예측하는 일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매력적인 취미 중 하나다. SF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을 거치며 매끄러운 둥근 투구, 기하학적인 실루엣, 혹은 기묘한 은빛 피부 등 외계인에 대한 이미지와 시각적 판타지는 끊임없이 재정의되어 왔다. 에일리언을 소재로 한 수많은 콘텐츠를 전부 나열하라면 아마 꼴딱 밤새워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외계인의 열성팬들은 따로 있다. 바로 패션 업계다. 발렌시아가, 구찌, 톰 브라운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한 번쯤 외계인이나 우주적 존재를 컬렉션의 핵심 메타포로 내세웠다. 1960년대 우주 경쟁 시대의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부터 오늘날의 아방가르드한 3D 프린팅 실루엣에 이르기까지, 패션은 오랫동안 지구 밖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옷감 위로 실현해 왔다. 심지어 실제로는 발견된 적조차 없는 외계 생명체가 런웨이를 유유히 걸어 나오는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패션은 왜 이렇게까지 외계인이라는 존재에 매료되어 온 걸까?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이유. 미래를입을수있으니까


“우주 시대(Space Age) :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주 탐사와 기술 발전의 시기”
패션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할 것. 우주 시대의 막이 오르며 사람들은 익숙한 지구를 떠나 낯선 우주에 닿고자 했다. 인류 최초로 우주에 나간 유리 가가린부터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까지. 상상만 하던 일들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1960년대는 마치 신세계와 같았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곧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이런 공상과학적 분위기에 패션 디자이너들 또한 합세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이들이 만든 외계인은 말 그대로 지구 밖 세계의 인간, 즉 '미래의 인간'이었다.

앙드레 쿠레주의 1964 ‘Moon Girl(문 걸)’ 컬렉션을 보라. 흰색을 기반으로 한 뻣뻣한 실루엣과 기하학적 패턴은 우주 비행사를 연상케 한다. 당시 그에게 우주에서 살고 있는 이들만큼 외계인과 가까운 것은 없었다. PVC와 같은 새로운 소재가 주는 광택의 질감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종아리 절반을 덮는 플랫 부츠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쿠레주의 대표 디자인 중 하나.


같은 해 공개된 피에르 가르뎅의 ‘Cosmocorps’ 컬렉션도 이와 비슷한 결을 가진다. 비닐로 만들어진 스커트와 타이즈, 로켓 모양의 뾰족한 모자는 우주에서 온 여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단순하면서도 지나치게 과장된 디자인은 기존의 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움 그 자체. 유토피아답고 기술 중심적인 그의 작품은 앙드레 쿠레주와 함께 상징적인 우주 시대의 외계인으로 남아 있다.
두번째이유. 미지의생명체에정답은없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계인과 미래 우주의 상관관계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알게 될수록 오히려 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20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UFO 목격담과 미스터리 서클, 각종 음모론이 대중문화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끄러운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외계인이 있었다. UFO를 타고 다니며, 미스터리 서클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미지의 존재. 우리는 이들의 실제 모습은커녕 뒷모습도 본 적이 없기에 정체를 상상하는 데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이러한 불확정성이 제공하는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은, 외계인을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재탄생하게끔 했다.




뮈글러의 1997 ‘Insectes' 컬렉션과 알렉산더 맥퀸의 2010 ‘Plato’s Atlantis’ 컬렉션이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 먼저 뮈글러는 곤충의 외골격과 보호막을 여성에게 입히는 파격적 콘셉트를 보여주었다. 맥퀸 또한 물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진화한 인간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파충류의 피부를 빌려왔다. 알렉산더 맥퀸 쇼를 걸어 나오는 모델의 신발을 주목해 보자. 30cm가량의 높이를 가진, 둥근 아르마딜로 부츠를 보다 보면 원래 우리의 발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의 신체를 비현실적인 형태로 재구성함으로써, 하이브리드 적 외형을 가진 외계인의 모습을 제안한다.


세번째이유. 결국인간을벗어날수있으니까
여기서 질문 하나. 외계인의 미학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이들을 탐미했다. 결국 전통적인 패션은 사람을 전제로 하지 않는가. 어깨를 덮는 상의는 허리를 따라 떨어지고, 하의는 다리의 모양에 맞게 제작된다. 하지만 지금은 2026년이다. 21세기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때까지의 모든 전제를 해체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신체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실험체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미지의 생명체, 가장 비인간적인, 에일리언인 것. 이렇게 외계인은 오늘날에도 런웨이에 호출되고 있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옷과 신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3D 프린팅과 구조적인 디자인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알루미늄,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진 깃털이 베어링을 통해 회전하는 2019년 컬렉션은 정말 외계에서 온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지기도. 그녀의 2025 F/W는 이름부터 ‘Alien Off-World Abyssal Rave’이다. 파란 물결의 독특한 그레스는 다른 차원에서 온 해양 생물을 연상시킨다.




"저는이것을에일리언빈티지라고부릅니다. 이모든의상들이원래외계인들이입었던것이고, 이제는인류를강화하기위해재활용되었다는환상이죠."
- 월터반베이렌동크
이에 한술 더 뜨는 월터 반 베이렌동크. 그는 외계인을 직접적으로 런웨이에 끌어올 정도의 외계인 덕후(?)이다. 2020 S/S 컬렉션 ‘Alien Vintage'은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독특한 색채가 가득 담겨있다. 화려한 컬러와 함께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러프, 볼륨감 있는 소매에서 엿보이는 창의력은 유쾌하고 도발적이다. 외계인에 캐릭터성을 부여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난다. 쇼에 서는 모델이 사람이 아닌 외계 생명체로 보일 정도니 말이다.
Editor / 김어현(@sonicplast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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