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SAN EH(강산에)

강산에

한국 음악계에 머무르는 수많은 평론가와 작가들, 그중에도 특히나 저명하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엄선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수많은 창작의 홍수에서 역사에 남을 딱 100개의 명반. 그것도 2번이나 그 명예의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강씨 가문의 사내,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남자는 언제나 자신을 위해 노래했다. 시대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상징하던 그는 어느덧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베테랑 뮤지션이 되어 수많은 무대를 꾸며가고 있다. 우리가 만난 강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대중음악사의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위해 노래하고 우리를 위해 그 노래를 나누는 음악가의 본질을 지켜가는 ‘뮤지션’이었다.


Q. 누구나 알겠지만 혹여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강씨 가문의 사내, 강산에라고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이고요.아직도 곡을 만들고 있고, 이제는 음악 만드는 ‘요령’도 많이 생겨 예전보다 편하고 부담 없이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강산에 / ⓒfakemagazine

Q. 제주에 산 지 어느덧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제주에서의 삶은 어떤가.

A. 제가 제주에 처음 살게 된 게 우연히 제주에 정착한 후배를 만나러, 바람도 쐴 겸 내려왔다가 시작됐거든요. 사실 제주도는 데뷔 초창기부터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그때 다시 마주한 제주는 예전과는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이곳이라면 내가 뼈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저도 놀랐죠. 갑자기 ‘뼈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웃음) 그래서 순간적인 감정일 수도 있으니 몇 년은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11년 정도가 흘렀네요.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안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즘엔 아점 시간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기타와 커피, 간단한 다과를 챙겨 포구로 나갑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를 보며 음악도 듣고 간식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죠. 그러다 바람이 쌀쌀해지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차 안에서 기타를 띵가띵가 치며 놀고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고파질 때쯤 집으로 돌아오는 게 요즘 제 일상입니다.



Q. 한국 대중음악사에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강산에가 생각하는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A. 사실 대중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정의를 내려본 적은 없어요. 그냥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아오다 보니 어느 날 가수가 되어 있었고, 또 운 좋게 많은 분들에게 인정도 받게 된 거죠.

예술도 결국 삶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의 삶이 있고, 그것을 각자 다른 방식과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는 거잖아요. 음악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누구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단 나를 위한 음악을 했다고 들었다.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A. 직업적으로 무언가를 팔기 위해 계산해서 음악을 만들어 본 적은 없고, 그냥 제 삶을 음악이라는 도구로 표현해온 것뿐이죠. 가족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부산에서 자라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강산에라는 사람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에 대한 어떤 저항감 같은 것도 생겼던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내 청춘 돌리도” 같은 마음이었던 거죠.한참 피가 끓을 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내면이 삐딱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걸 풀어낼 곳을 찾다 보니 음악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 노래들을 들어보면, 그 시기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닌데, 제 삶이 그대로 녹아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모든 게 저의 사유였던 셈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사유하며 살아가잖아요. 저는 그 사유들이 운 좋게 시대와 상황을 만나 음악으로 받아들여진 거고요. 어떤 의미에서는 팔자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운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장발의 강산에를 기억하는 이들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라고 칭하던데 이런 호칭에 동의하고 있는지?

A. 그렇게 비춰졌나 보다 싶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저도 그렇게 보이길 원했어요.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이 있었거든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보니 우리 삶 자체가 너무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직접 눈으로 목격하거나, 먹거나, 듣지 않은 것은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종교나 사회의 여러 관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생각들이 3집 앨범에 있는 〈깨어나〉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죠. 가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보인다고 다 보는 게 아니고 들린다고 다 듣는 게 아니야. 익숙해져 버린 촌스러운 잠 때문에 나의 눈도 멀고 귀도 먹고,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촌스러운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 깨어나.”

강산에 - 깨어나 (1996년 11월 16일) / ⓒYoutube

Q. 그렇다면 외적인 요소도 하나의 표현으로 생각했던 건지.

A. 당시만 해도 외모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직업도 다양하지 않았고, 생각들도 비슷해서 삶의 모양새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러다 1989년에 여행 자율화가 되면서 운 좋게 일본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때 흑백이던 세상에서 사방이 컬러인 세상으로 넘어온 듯한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죠. 흑백의 세상에만 살면 그것이 흑백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컬러의 세상이 있어야 비로소 그게 흑백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요. 저는 그런 정해지고 길들여진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강산에는 조금 다른 스타일인 듯한데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고 있는지?

A. 제가 삐딱하게 지내던 시기에는 정작 저 자신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람들과도 잘 섞이지 못하고 말도 줄어들고, 무대에 올라가서도 잡다한 생각 속에 있었죠. 성격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변화에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센 자아만 가지고 있으니 고독하고 외로웠죠.

그러던 어느 날 저 스스로를 보는데,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같더라고요. 애초에 섞일 수 없는 존재. 다들 자존감 없이 흘러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저는 거기에 섞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차로 세 시간 반 정도 가면 있는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도 자주 갔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뭔가를 찾으러 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도망가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거기서 일종의 받아들임을 배운 것 같아요. 수용하는 법을 알게 된 거죠.

제가 스스로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그렇게 보듯이 예전에 만든 음악이나 지금 만드는 음악이나 모두 결국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제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내면적인 사유들을 정리하고 에디팅해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 음악에 대한 제 생각에 변함은 없어요.

Q. 크고 작은 무대에서 활발하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무대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있는가?

A. 이제 뭐 설렘까지는 솔직하게 아니고, 여전히 긴장은 하죠. 뮤지션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제 성격 안에 생각보다 강박적인 부분이 꽤 있더라고요. 데뷔 초창기 때는 사흘을 한숨도 안 자고 평균적으로 공연을 다섯 번씩 하기도 했어요. 특히 목소리를 쓰는 사람은 잠과도 연관이 크니까요. 또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적도 있었고요. 악순환인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어느 정도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하고 있어요.

강산에 / ⓒfakemagazine

Q. 강산에의 댓글엔 항상 다양한 세대가 함께 감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강산에의 음악이 나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A.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다 보니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음악이 만약 “20~30대에 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처럼 딱 정해진 이야기였다면 그 세대만 공감했을 텐데,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네요.



Q. 다양한 후배들이 강산에의 곡을 매체에서 선보이며 화제가 되곤 한다.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에 의해 불려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A. 강 씨 가문의 영광이죠. (웃음) 예술은 결국 어떤 아티스트가 표현한 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다른 아티스트들이 제 음악을 자기 방식대로 표현해주는 건 또 다른 감상을 만들어내는 거고, 저는 거꾸로 “이런 느낌도 있네”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너무 좋잖아요. 다양하게 해석되고 표현된다는 것 자체가 괜찮은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렇게 불려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26호 가수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싱어게인(singagain) JTBC / ⓒYoutube

Q. 강산에는 영원히 뮤지션일까.

A.
아마 제가 동력이 다하는 날까지는 뮤지션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저 나이가 되어서도 저렇게 멋지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선배들이 있으니까요.여력이 되는 순간까지는 아마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점점 귀찮아지거나 게을러지는 순간도 있고, 또 얼마나 스스로를 관리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하여튼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웃음) 그냥 편하게 쉬는 것 말고는.

강산에 / ⓒfakemagazine

Q. 강산에라는 사람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와 기능을 하는지.

A. 음악은 이제 저한테는 습관 같은 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가수라는 직업을 하면서 이런 곡도 만들고 싶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바닷가에 나가 쉬고 있다가도, 문득 “가만히 있어봐, 어떤 멜로디가 떠오르네?”, “코드가 여기서 저쪽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거든요. 그러면 뭐, 기타를 잡을 수밖에 없죠. 별 수 있나. (웃음)



Q. 마지막으로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장발의 강산에로 돌아가 지금의 청춘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는지.

A. 제 노래 가사에 있는 문장을 말하고 싶네요. “두려워 마, 아무것도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당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저 역시 데뷔 초에 겪었던 혼돈과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받아들임에 대한 깨달음도 없었을 거예요. 아마 이런 걸 배우려고 그랬었나 봐요. 그러니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고 아무것도 아니니 할 수 있습니다.

강산에 - '넌 할 수 있어' 열린 음악회(Open Concert) KBS / ⓒYoutube

Q. 'fake'의 의미를, 목적을 달성한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해 주는 행동이나 태도로 재해석해 보았다. 뮤지션 강산에에게 'fake'란 무엇인가?

A. 내가 이 강산에라는 사람을 보니까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더라고요. 자기가 자기한테 이렇게 이야기해서 좀 미안하지만… (웃음) 그리고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저만의 ‘fake’는 말하자면 ‘따뜻함’과 ‘운’으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