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넘어 스크린으로” 에디터가 영화화를 기원하는 웹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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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란 무엇인가. 에디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퀴퀴한 종이 냄새가 진동하는 만화방 방석에 몸을 파묻고 활자와 화풍을 음미하며 취향을 모험하던 시절이 있다. 한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어 구축한 특별한 세계를 엿보기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과 약간의 불편함은 지나치게 값싼 대가였다. 그 정적인 고립 속에서나 마주할 수 있었던 묵직한 서사들은 이제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손안에 들어왔고, 나아가 스크린을 통해 살아 움직이게 되며 시공간의 제약을 탈피하게 되었다.

<만화 칸을 넘어 스크린으로>
그 시발점이 된 작품은 분명하다. 바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시리즈 쌍천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쓴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죽음 이후 인간이 마주하는 심판과 속죄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한국적 사후 세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웹툰과 영화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웹툰 IP는 거대 자본을 투입할 만한 확실한 안전자산으로 격상되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작품은 <이태원 클라쓰>. 성공을 위해 15년을 버틴 남자, 박새로이의 눈물겨운 창업신화는 안방극장을 점령하며 드라마화의 성공 공식을 새로 짰고, 이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확장과 맞물려 웹툰 산업 전반의 덩치를 폭발적으로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제 자본은 검증된 독자층을 확보한 웹툰을 향해 무차별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웹툰 영상화는 콘텐츠 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주류이자 표준이 되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성장은 본질을 흐린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성장은 곧 본질을 훼손하기 마련이다. 자본은 작가가 써 내려간 기발한 설정 위에 화려한 CG와 물적 인력을 쏟아부으며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몰두한다. 하지만 균형을 잃으면 넘어지고 마는 법. 시각적 쾌감에만 집착하다 정작 중요한 캐릭터성을 놓치고 서사 전달에 실패하는 순간, 흥행 실패에 더해 기존 팬덤의 거센 비난까지.. 크나큰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화려한 캐스팅과 기술력을 쏟아붓고도 원작 고유의 철학과 깊이를 담아내지 못해 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전지적 독자 시점>의 쓰라린 상흔을 보았다.


결국 대중을 매혹하고 원작 팬덤까지 납득시키는 공식은 원작의 정수를 영리하게 포착해 낸 고증과 재해석에 있다. 군대 내 가혹행위라는 폐쇄적 공기를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살려낸 <D.P.>, 만화적 허용의 재치있는 톤을 스크린 위로 올린 <살인자ㅇ난감>의 메가 히트가 이를 방증한다. 이 작품들은 스케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원작 팬들이 기대했던 '핵심 매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영상 언어로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 원작의 외형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작품이 품고 있는 서사와 메세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제서야 이 공식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결국 대중은 본질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지금의 대중은 그 '고증해야 할 본질'로 다름 아닌 인간의 입체적인 감정과 축축한 내면을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지금,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진중하고도 참혹한 이야기들이 조명을 받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현실이 이미 거대한 만화적 서사다. 무한 경쟁의 피로감, 계층 간의 단절, 매일같이 쏟아지는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재난 속에서 현대인들의 정신적 기저에는 깊은 무력감과 불안이 깔려 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느껴질 때, 대중은 얄팍한 판타지나 뻔한 영웅을 보며 기만적인 위로를 느낀다. 오히려 나보다 더 처절하게 무너지고 부서지는 인물을 보며 자신을 대입하고, 기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다.



박정민 주연의 <당신의 과녁> 제작 소식이 유독 묵직한 화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7년의 상실이 만들어낸 지옥같은 현실, 그 타협 없는 한 남자의 외길을 가벼운 볼거리로 변개하지 않고 정면 돌파할 것이라는 신뢰와 기대가 작동한 결과다. 시대적 결핍이 만들어낸 인간적인 이야기에 물이 들어온 지금, 평범하지만 독보적인, 개개인의 심리 서사를 묘사하는 또 다른 웹툰 IP들에 주목해 보려 한다.
<서늘하고도 파괴적인 흡입력을 보여줄, 아직 영상화되지 않은 웹툰들>
1. 더 복서 - 정지훈
“허무의 끝에서 발견한 밝고도 아름다운 빛”



모든 것을 압도하는 천재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이기만 한다. 권태 가득한 심연의 눈동자를 가진 주인공 ‘유'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허무함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선 수많은 인물들.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걸 이루기로 작정한 이들은 한없이 약하다. 그러나 삶의 모든 것을 걸고 링 위로 올라온 이들의 심장소리와 빛나는 눈동자들은 어쩐지 더욱 위대해 보인다.
겉보기에는 사각의 링 위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천재 복서들의 타격감을 다룬 먼치킨 스포츠물 같지만, 그 속살은 생(生)의 본질을 다룬 실존주의 서사다. 이 작품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상대의 의지를 꺾는 압도적인 무력도, 승리의 쾌감도 아니다. 패배가 예정된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펀치를 뻗는 그 유약하고도 아름다운 저항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이 증명될 때다. 가장 차가운 공허의 끝에서 가장 뜨거운 인간성을 증명해 내는 이 아름다운 서사는, 스포츠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투영하는 문학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2. 도태교실 - 황준호
“시스템이 배설한 낙오자들의 뒤틀린 연대”



인간이 가장 무서워해야하는 존재는 바로 같은 인간이다. <인간의 숲>, <악연>, <피와 살> 등 전작에서 증명했듯, 황준호 작가는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악의와 뒤틀린 본성을 필터 없이 보여주며 결국 파멸로 치닫는 비극을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작품 <도태교실>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낙오자 ‘온유이’와 관찰자 ‘유미소’,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교실’이라는 기계의 부속품들이 맞물려 서로를 무너뜨리는 처절한 심리전을 시작한다. 다수의 시선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소년들이 마주하는 정서적 압박감, 그리고 그것이 사회를 향한 비뚤어진 적개심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감당할 ‘쓸모'라는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3. PTSD - 꼬마비
“말 그대로 헬조선의 시작”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체 안에 무겁고 어두운 인간성을 숨겨두는 것은 꼬마비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보적인 스토리텔링이다. <PTSD> 역시 동글동글한 그림체 뒤로, 우리가 평화 속에 안주하며 외면해 온 '남북 전쟁'이라는 공포적인 상황을 담아냈다.
전쟁이 발발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폭격을 피해 타국으로 흘러 들어가 난민이 되었다. 이제 기존에 알던 평범한 일상은 없어졌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살아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직접적인 포화는 피했을지언정 파괴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무수한 인간 군상, 그리고 설 곳을 잃은 나. 그 날것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 찾아오는 서글픔과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이미 영상화가 확정된 만큼, 팬덤 사이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4. 회춘 - 기안84
“무(無)에서 태어나 무(無)로 돌아간다.”



인간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세상에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한다. 이 절대불변한 삶의 순환 속에서 기안84는 우리의 가장 축복받은 능력인 '젊음'을 이야기한다. 아, 젊음이여,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단어인지 모르고 살 때가 있다. 철없이 만끽하고, 아까운 줄 모르고 살다가 어느새 나이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 귀함을 깨닫고는 한다.
기안84는 실제 부부들을 인터뷰하며 실제 에이징(Aging)의 과정을 만화에 녹여냈다. 누구나 겪었을 찬란한 순간, 그러나 맞이하게 될 이별의 순간까지. 당연하고도 평범한 인간의 삶을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되어간다지만, 천만에. 육체가 점점 마모되고 쓸모를 잃어가는 동안 우리의 뇌는 아이처럼 점점 순해질 뿐이다. 그는 이를 ‘다시 돌아온 봄, 즉 회춘(回春)이라 불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둔 부모라면, 혹은 부모님께 청춘을 돌려주고픈 자식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는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거대한 감정적 파도를 겪으며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5. 격기 3반 - 이학
“심연을 들여다본 투기장의 어린 영혼”



잦은 휴재와 독자와의 갈등 속에서도 수많은 광신도(일명 ‘대깨학’)들을 거느린 웹툰이 있다. 바로 격투기 특기생들의 뜨거운 대결을 다룬 이학 작가의 <격기 3반>이다. 물론 이 작품은 단순한 격투 학원물을 넘어서는 심오함을 가진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어두워지는 세계관, 그 속에서 무너지는 한 소년의 이야기는 소년만화의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찢기는 투기장에서, 그저 동생을 지키고 싶었던 소년이 검붉은 피와 광기로 얼룩지며 부서져 가는 과정은 서글픔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독자들은 곧 옥타곤의 관중이 되어 그의 강함을 부르짖고 타락에 동조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광기를 선택한 한 영혼이 부식되는 과정을 이토록 자비 없이 밀어붙이는 파괴적인 서사는, 감히 단언컨대 지금껏 보지못한 가장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누아르가 될 것이다.

<웹툰이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본 인간>
인간의 내면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가. 그 안에는 타인을 짓밟고서라도 생존하려는 잔혹한 본능과 스스로가 만든 죄책감의 덫이 도사리고 있지만, 동시에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뻗어내려는 유약하고도 아름다운 저항이 공존한다.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밑바닥 아래서도, 언제나 일상의 온기와 한 줄기 희망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이토록 다면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결코 타인의 심연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만화라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손쉬운 매체를 통해, 한 창작자가 치열하게 설계해 둔 세계관의 틈새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이것은 타인의 생을 대리 체험하는 일이며, 나아가 붕괴와 재건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기적같은 경험이다.
이 작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치는 공통된 본질은 하나다. 아무리 비관적인 삶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벌판에서도, 무너진 잔해 속에서도, 버틸 수 없는 불가항력 앞에서도, 마모되어 가는 육체 안에서도 인간은 결국 서로를 버팀목삼아 나아가야 한다는 잔인하고도 위대한 구원의 메시지다. 인간성의 본질을 꿰뚫는 이 장엄한 세계관들이 조그마한 만화 칸을 넘어서 수많은 대중의 심장을 관통하기를 바란다.
Editor / 정인홍(@jnginh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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