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름을 어디서 배웠을까

여름

나는 항상 여름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푸른 하늘, 모래 운동장, 오래된 자전거, 교복, 바다, 땀에 젖은 셔츠.'

사실 난 그런 장면의 여름을 살아본 적이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장맛비에 젖은 채로 찝찝하게 걸어다니거나, 무더위에 온몸이 땀범벅이 된 적이 있어도 친구들과 끝없이 자전거를 탄다거나, 숨이 헐떡일 정도로 뛰어다니고, 방학마다 바다를 찾아갔던 기억은 많지 않다.



어쩌면 우린 계절을 경험하기도 전에 배워오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계절은 날씨보다 이미지로 먼저 기억되고 있었다. 봄은 사랑스럽고, 여름은 푸르며, 가을은 쓸쓸고, 겨울은 시리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 계절은 조금 다르다.

봄에는 꽃샘 추위가 있고, 여름에는 장마가 있으며, 가을엔 청명한 하늘과 겨울엔 눈 내리는 낭만이 있다. 난 문득 이렇게 사람마다 경험하는 계절이 다른데 왜 우린 그 계절을 생각하면 대부분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익숙해진 감각의 이미지들을 찾아보려 한다. 특히 내가 가지지 못했던 여름의 이미지를.

영화 <린다린다린다> / imdb

<여름은 먼저 이미지가 된다>

여름을 가장 선명하게 표현하는 광고는 아마도 포카리 스웨트 광고일 것이다. 포카리 스웨트를 떠올리면 음료의 맛보다 먼저 푸른 하늘과 강한 햇빛, 교복을 입고 달리는 학생들, 바람에 흔들리는 흰 셔츠가 생각난다. 포카리는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기보다 오랫동안 여름과 청춘의 이미지를 반복해왔다.

1993년 ZARD의 〈흔들리는 마음〉이 흐르던 광고에서는 바다와 설레이는 사랑을, 2018년 〈포카리 가치댄스 FES〉에서는 뜨거운 햇빛 아래 함께 춤추는 학생들을, 2023년 〈푸름이 춤추다.여름〉에서는 학교 곳곳을 달리고 노래하는 청춘의 뜨거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テレビCM】1993年 一色紗英 大塚製薬(株)「ポカリスエット」♪ZARD「揺れる想い」

시대와 연출은 달라졌지만 푸른 하늘, 강한 햇빛, 땀, 교복, 달리는 몸은 계속 반복되고있다. 그 안에서 땀은 불쾌함이 아니라 젊음의 증거가 되고, 더위는 피해야 할 날씨가 아니라 오래 기억될 순간의 배경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포카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포카리가 보여준 여름을 기억한다. 광고 속 풍경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여름조차 한번쯤 살아보고 싶게 만들고, 그렇게 생겨난 동경은 우리가 여름을 현실보다 더욱 낭만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Otsuka 大塚製薬 POCARI SWEAT CM 「青が舞う 夏」篇 60秒

<영화 속에서 여름을 먼저 살아본다>

그러나 계절은 풍경만으로 오래 남지 않는다. 그 풍경 안에서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계절은 하나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장 오래 경험하게 만드는 매체는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다 보면 아직 오지도 않은 여름을 기다리게 될 때가 있다. 이번 여름에는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고, 언젠가는 이 계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만 같다. 그 기대 역시 온전히 나의 경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수없이 많은 여름을 먼저 살아봤기 때문이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쌓이는 시간을 보여준다. 엄마를 찾아 나선 여행은 곧게 이어지지 않고, 길을 돌아가거나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꾸 옆길로 샌다. 장난과 소동, 우연한 만남으로 채워진 그 과정에서 결국 오래 남는 것은 여행의 결과가 아니라 길 위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름에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조차 언젠가 그리워할 장면이 될 것만 같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오래된 할아버지의 집에서 한 가족이 함께 보낸 여름을 바라본다. 밥을 먹고, 마당에서 바람을 쐬고, 선풍기 앞에 모여 앉는 평범한 일상 사이로 가족의 갈등과 변화, 작별의 순간이 조용히 스며든다. 그때는 별다를 것 없어 보였던 하루들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로 남는다. 어쩌면 훗날 내가 그리워할 여름도 눈에 띄는 사건이 있었던 계절보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평범한 날들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영화 《애프터썬》은 성인이 된 소피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낸 여름휴가를 기억 속에서 되짚는 영화다. 당시에는 그저 즐거운 여행처럼 지나갔던 표정과 대화가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온다. 선명하게 남은 장면과 끝내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뒤섞이며, 그 여름은 현재의 시선 속에서 계속 새롭게 해석된다. 어떤 여름은 지나가는 순간보다, 오래 뒤에 다시 떠올리는 동안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세 영화가 담아낸 여름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목적지보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하나는 평범한 일상이 한 시절로 남는 순간을, 마지막은 오래 뒤에야 다시 해석되는 기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으로 남기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그 계절을 통과하며 쌓인 시간이다.

영화는 그 풍경 속에서 하루가 흐르고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여름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벌써 지나간 계절처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여름을 먼저 살아보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언젠가 돌아보게 될 한 시절로 미리 상상하면서 말이다.


<음악은 잊혀진 여름의 감각을 불러온다>

광고가 여름을 바라보는 풍경을 만들고, 영화가 그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준다면, 음악은 지나간 계절의 감각을 다시 불러낸다. 한 곡을 듣는 순간 폭죽 소리와 한낮의 더위, 해 질 무렵의 공기처럼 오래 잊고 있던 장면이 되살아난다. 음악은 여름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소리만으로 그 계절의 온도와 분위기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여름은 실제로 겪었던 순간보다, 나중에 다시 들은 한 곡 속에서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Nujabes 〈After Hanabi〉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중 내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은 Nujabes의 〈After Hanabi〉다. 곡에는 폭죽이 연달아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뒤섞여 있다. 따로 들으면 산만하게 느껴질 법한 소리들이지만, 음악 안에서는 오히려 여름밤의 공기와 축제의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하나비’는 일본어로 불꽃놀이를 뜻한다. 여름 축제를 대표하는 불꽃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그 소리와 빛의 잔상이 한동안 남아 있는 것처럼, 이 곡을 듣고 나면 즐거움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련함이 먼저 밀려온다. 음악은 계절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소리만으로 그날의 온도와 분위기,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까지 다시 불러낸다.

Nujabes - After Hanabi
CHS 〈낮잠〉

Nujabes의 〈After Hanabi〉가 폭죽과 환호성으로 여름밤의 장면을 불러낸다면, CHS의 〈낮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여름 한낮에 가깝다. 짧은 곡 안에서 기타와 느슨한 리듬이 나른하게 이어지고, 소리는 또렷한 목적지를 향하기보다 잠과 현실 사이를 맴도는 듯 흘러간다. 더위에 지쳐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예상보다 긴 시간이 지나버린 오후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여름의 기억은 여행이나 축제 같은 특별한 장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거나, 햇빛을 피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도 계절의 일부로 남는다. 〈낮잠〉은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여백까지 여름의 풍경으로 들려준다.

𝐂𝐇𝐒 - '낮잠' 𝐎𝐟𝐟𝐢𝐜𝐢𝐚𝐥 𝐌𝐮𝐬𝐢𝐜 𝐕𝐢𝐝𝐞𝐨
Fishmans 〈Daydream〉

여름의 끝에는 Fishmans의 〈Daydream〉을 두고 싶다. 가사 속 화자는 석양 속에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반복되는 연주와 느릿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도 함께 느려지고, 눈앞의 사람이 점차 선명한 현실보다 멀리 남은 장면처럼 느껴진다. 매일이 죽을 만큼 즐거울 필요는 없으며, 차라리 어두운 얼굴로 둘이 구름을 바라보고 싶다는 노래의 마음은 여름을 언제나 찬란한 계절로만 그리지 않는다. 이 곡이 남기는 것은 축제의 절정이 아니라, 해가 저물 무렵 누군가와 말없이 함께 있던 시간이다. 그래서 〈Daydream〉은 여름을 끝내기보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계절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Daydream · Fishmans

음악은 지나간 계절을 정확히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폭죽이 터지던 밤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오후, 석양 속에 머물던 한 사람의 모습을 서로 다른 소리로 불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곡들이 모두 여름을 직접 노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그 계절의 빛과 공기, 하루가 흘러가는 속도까지 함께 되살아난다. 그때 떠오르는 것은 여름이라는 추상적인 계절만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장소와 감정, 그리고 그 시절의 나다.

사진이 한 장면을 남긴다면 음악은 그 장면에 깃든 감각을 남긴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과 함께 지나온 계절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재생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음악은 여름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왜 여름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광고와 영화, 음악은 왜 다른 계절보다 유독 여름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걸까. 여름에는 쉼이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는 계절이다. 학교를 떠나 낯선 곳으로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헤어지는 이야기가 여름을 배경으로 자주 펼쳐지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성장과 첫사랑, 여행과 이별처럼 한 시절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서사에도 여름은 잘 어울린다. 여름은 강렬하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도 이미 끝을 품고 있다. 시작의 들뜸과 끝의 아쉬움이 한 계절 안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여름은 지나가는 시간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아내기에 좋은 배경이 된다.

한석규 - 8월의 크리스마스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8년 01월 11일]

이처럼 문화는 나의 여름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푸른 하늘 아래 달리는 청춘,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 평범한 날들이 훗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 계절이 저물 무렵 찾아오는 아쉬움까지. 비슷한 장면들이 계속 쌓이면서 우리는 계절을 기대하게 되었나보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계절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미지라기보다, 광고와 영화, 음악이 오랫동안 보여준 장면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일종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그 허상 위에 각자의 하루와 기억을 하나씩 쌓아가며, 비로소 자기만의 계절을 만들어 왔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매년 나만의 여름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수없이 보아온 장면들이 이번에는 정말 나만의 기억이 되기를 기대하며.





Editor / 정세원(@312in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