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짐 자무쉬는 스케이터를 사랑했을까

스케이트

짐 자무쉬의 영화에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사람들이 등장해왔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걷는 사람,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 택시 안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 낯선 도시를 배회하는 사람. 세상은 그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바라보지만, 자무쉬는 그들의 시간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찍어왔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 사이의 시간이고,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미스터리 트레인 (1989) / ⓒimdb

그리고 최근작 《Father Mother Sister Brother》에서 그는 또 하나의 존재를 영화 속으로 불러들인다.

Skateboarding in Paris |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 Jim Jarmusch / ⓒYoutube
Skateboarding in Dublin |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 Jim Jarmusch / ⓒYoutube

영화 속 스케이터들은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아니다. 대사를 많이 하지도 않고, 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 개의 에피소드 사이를 반복해서 가로지르며 영화 전체에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자동차 사이를 미끄러지고, 도로를 가르며 지나가고, 도시를 가볍게 통과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서사를 이끌기보다 공간에 호흡을 부여한다.

흥미로운 것은 자무쉬가 이들을 단순히 '멋있는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스케이터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스케이터들의 "무정부주의적인 성향(anarchistic tendencies)" 과 "자유의 감각(sense of freedom)" 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스케이트보드 자체를 "자유의 상징(symbol of freedom)" 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스케이터였을까.

그 답은 스케이트보드 문화 자체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Skateboarding in New Jersey |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 Jim Jarmusch / ⓒYoutube

스케이터에게 도시는 이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을 사용하고, 난간은 붙잡기 위해 존재하며, 벤치는 쉬기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케이터는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 계단은 점프를 위한 오브제가 되고, 난간은 하나의 레일이 되며, 광장은 거대한 스팟으로 바뀐다. 같은 도시를 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스케이트보드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도시를 다시 읽는 문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건축가가 설계한 사용법을 잠시 잊고, 자신의 방식으로 공간을 재해석하는 일. 그것이 스케이트보드가 수십 년 동안 스트리트 컬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Anti-Skate Architecture'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벤치 가운데 금속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난간 위에 작은 돌기를 붙이고, 계단 가장자리에 별도의 구조물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목적은 단 하나다. 스케이터가 그 공간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것은 도시가 스케이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파괴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케이터는 도시를 망가뜨리기보다, 도시가 의도한 사용법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거부는 하나의 문화가 된다.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결국 공간을 둘러싼 상상력의 문제이며, 자무쉬가 매혹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을 것이다.

짐 자무쉬의 영화 속 인물들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패터슨 (2016) / ⓒimdb

《Paterson》의 버스 운전사는 매일 같은 노선을 달리지만, 그 반복 속에서 시를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출퇴근길일 뿐인 도시가 그에게는 끝없이 새로운 문장이 태어나는 장소가 된다.

천국보다 낯선 (1984) / ⓒimdb

《Stranger Than Paradise》의 인물들은 목적 없이 떠돌고, 《Night on Earth》에서는 목적지보다 택시 안에서 오가는 대화가 중요하며, 《Coffee and Cigarettes》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무쉬는 늘 효율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찍어왔다. 그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로 살아가지 않는다. 빠르게 성공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며,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바라본다. 그 틈에서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생각해 보면 스케이터 역시 목적지보다 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보드를 타는 것이 아니라, 보드를 타기 위해 거리를 찾는다. 같은 계단을 수십 번 오르고, 같은 난간에서 수백 번 실패하며, 몇 시간 동안 하나의 기술만 반복한다. 스케이트 영상 속 몇 초짜리 성공 장면 뒤에는 수백 번의 실패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실패는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핵심이다.

이 점에서 스케이터는 자무쉬 영화의 인물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목적보다 리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의 도시는 효율을 요구한다. 가장 빠른 길, 가장 짧은 동선, 가장 생산적인 시간. 우리는 늘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지만, 정작 도시를 바라볼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반면 스케이터는 도시를 소비하지 않는다. 도시와 논다.

짐 자무쉬 역시 영화를 통해 같은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사건보다 침묵을 오래 찍고, 결말보다 과정을 사랑하며, 도착보다 이동을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 도시는 관광 엽서 같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장소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속 스케이터들은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다.

Jim Jarmusch on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 ⓒYoutube

짐 자무쉬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스케이터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스케이트보드라는 도구를 좋아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사랑한다는 고백에 가깝다. 정해진 길 대신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도시를 규칙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라보며, 효율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사람들. 돌이켜 보면 자무쉬는 데뷔 이후 40년 동안 줄곧 그런 사람들을 찍어왔다. 버스 운전사도, 택시 기사도, 방랑자도, 그리고 이제는 스케이터도 모두 같은 계보 위에 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보다 자신의 리듬을 믿는 사람들.

그래서 자무쉬가 사랑한 것은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라, 세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그의 영화가 오랫동안 자유롭게 숨 쉬는 이유이기도 하다.